2019년 6월 어느 날,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뜸 책을 하나 안겨주더니 특유의 단문으로 말했다. “번역했어. 읽어봐. 재밌을 거야.”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원제는 ‘민주당 다수파의 탄생, 1928~36년’이다. 미국 정치학자 크리스티 앤더슨이 1979년에 내놓았다. 선거 때마다 골골대던 민주당이 1930년대 이후 다수파로 떠오른 과정을 추적했다.

본격 연구서다. 재미있게 읽힌다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정치를 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재미 하나는 압권이다. 이 책이 다루는 ‘뉴딜 체제’는 미국 정치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뉴딜 체제’에 대한 미국 정치학계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정치에서 다수파란 무엇인가, 어떻게 소수파가 다수파로 바뀌는가, 다수파가 되려는 정치세력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정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건조한 전개를 참아가며 읽을 가치가 있다.

책은 정치 지형이 바뀌는 경로를 크게 둘로 구분한다. ‘전향’은 어느 당 지지자들이 다른 당으로 넘어가는 경로다. ‘동원’은 투표하지 않던 사람들이 새롭게 어느 당 투표자로 진입하는 경로다.

이 책은 주로 ‘전향’에 집중하던 기존 논의에 맞서서, ‘동원’이 지형변화의 근본 동력이라고 역설한다. 기존 정치에서 소외받고 눈에 보이지 않고 투표하지 않던 ‘그림자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타나도록 만들어내는 순간, 정치는 진정으로 심대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말이 쉽지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이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 고개를 넘지 않으면 한 세대를 가는 안정된 다수파를 만들 수 없고, 결국 세상을 바꿀 수도 없다. 현직 국회의원이 이 책을 꼭 번역하고 싶었다는 이유도 이 핵심 메시지에 공명해서였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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