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노동자들이 죽는다. 깔려 죽고, 끼어 죽고, 부딪혀 죽는다. 추락해 죽고, 매몰돼 죽고, 질식해 죽는다. ‘위험의 외주화(위험하고 유해한 작업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적으로 전가되는 현상)’를 방지하기 위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새 산업안전보건법, 소위 ‘김용균법’이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죽음을 알리는 소식은 그치지 않는다.

세계 1위 조선소 현대중공업에서만 김용균법 시행 후 희생자가 3명이나 나왔다. 아들의 결혼을 앞둔 하청 노동자는 채 고정되지 않은 합판을 밟아 15m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선체 내부를 수리하러 갔던 또 다른 하청 노동자는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다른 노동자는 잠수함 어뢰발사관 유압도어에 머리가 끼어 의식불명이 되었다. 코로나19 뉴스가 온 세상을 잠식하고 있을 때, 이름 없는 노동자의 참혹한 죽음은 또 다른 죽음으로 묻혔다.

이렇게 희생되는 이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 이주노동자, 청년 노동자다. 노동시장 맨 밑바닥에서 국가경제를 지탱하고 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평생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운이 나쁘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왜 죽는가? 직접적 원인은 안전설비 미흡이고, 구조적 원인으로는 인력 감축과 공정 압박이 지적된다. 진짜 이유를 모두가 안다.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들이는 비용보다 노동자의 죽음에 치르는 대가가 더 적기 때문이다. 산재사고가 노동시장 밑바닥의 ‘값싼’ 하층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배경이다.

노동자들의 생명에 값이 달리 매겨진다는 사실은 코로나19 확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소재 보험사 콜센터는 보험사(원청)가 대행업체(하청)에 콜센터 운영을 맡기는 전형적인 원·하청 하도급 구조다. 외주화된 콜센터의 하청 노동자들은 원·하청 어디에서도 콜센터라는 밀폐된 업무 공간에서의 코로나19 전파 위험성과 그 방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마스크 등 업무상 필요한 방역물자도 지급받지 못했다. 정부가 권고하는 재택근무, 자가격리와 치료, 유급휴일은 언감생심이었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어도 이를 악물고 일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국과 함께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칭송받던 싱가포르에서 지난 한 달 새 확진자가 200여 명에서 1만명 이상으로 폭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싱가포르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수십만 이주노동자가 기숙사 등 열악하고 밀집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정부나 회사 차원에서 코로나19로부터의 적절한 보호가 제공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싱가포르 시민사회는 ‘예견된 사태’였다고 입을 모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

편익 계산을 벗어나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국가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법과 제도에 공식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편입하는 것만이 이들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일환으로 마련된 김용균법은 시행 전부터 ‘위험의 외주화’ 관련 규제의 범위나 강도, 그 실효성 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그 비판이 유효한 것임이 어제와 오늘 연이은 노동자의 죽음으로 증명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실질적 책임이 있는 경영자 등을 처벌하는 법)’의 제정 등을 통한 책임자 처벌 강화를 외친다.

5월1일 노동절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4월28일은 세계 최대 노동단체인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이 정한 ‘국제 산업재해 사망·부상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이 지면을 빌려 산재로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을 애도한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임박하고, 대규모 해고와 실업의 광풍이 불어오기 시작한 가운데, 먼저 스러져간 노동자들의 생명 앞에서 ‘국가란 왜 존재하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기자명 노주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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