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마다가스카르 현지에서 코로나19 발열검사를 실시하는 모습.

코로나19는 아프리카 대륙 남동쪽 인도양에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도 지나치지 않았다. 3월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마다가스카르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120여 명까지 늘어났다(4월28일 기준). 바이러스는 국경을 무력화한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와 우리를 연결시킨다. 2018년 1월 마다가스카르에 초대 대사로 부임한 임상우 대사가 현지 상황을 전해왔다. 이 기고문은 임 대사의 개인 입장에서 쓴 것이다.

 

 

마다가스카르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바오바브나무와 여우원숭이 같은 신기한 동식물일 것이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이곳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프리카가 아닌 인도네시아로부터 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말레이족과 가까워 ‘말라가시인’이라고 한다. 수도 안타나나리보에 도착해 말라가시인들을 처음 만나면 마치 동남아시아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아래에 좌우로 논밭이 펼쳐진다. 모내기하거나 타작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의 옛 시골 풍경이다. 마다가스카르 식생활과 풍습도 한국과 매우 흡사하다. 쌀이 주식이고, 식사 후 입가심으로 숭늉을 마신다. 연장자를 경외하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문화도 비슷하다.

정겨운 모습에서 조금 눈을 돌리면 참혹한 현실이 드러난다. 마다가스카르는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이다. 마다가스카르는 1인당 GDP가 470달러(약 58만원)밖에 되지 않으며 인구의 약 77%가 빈곤선(하루 1.9달러) 이하에서 생활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수년째 가뭄이 지속된 남부 지역에는 약 100만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특히 마다가스카르의 5세 이하 아동 절반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의료 환경이 가장 낙후된 곳이다. 인구가 2700만명임에도 10만명당 의사는 18명에 불과하다. 의료 인력과 시설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인구의 60% 이상이 거주하는 지방에는 보건소조차 없는 곳이 많다.

이렇게 열악한 마다가스카르에도 코로나19가 찾아오고야 말았다. 지난 3월2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든 항공기 운항 중지, 불요불급한 외출 금지 등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도 확진자는 늘어나고 있다. 수도를 넘어 동부 지역 제1의 항구도시인 토아마시나(타마타브)와 바오바브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남부 지역의 무룬다바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외부 유입이 아닌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주마다가스카르 한국대사관 제공4월20일 임상우 대사(오른쪽)와 마다가스카르 외교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진단키트 증정식이 열렸다.

세계보건기구(WHO) 마다가스카르 사무소는,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마다가스카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200만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가 마다가스카르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의료적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마다가스카르 전역에 호흡기 질환 전문의는 4명뿐이며, 중환자용 인공호흡기는 전국에 12개밖에 없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 안타나나리보 대학 부속병원에는 방호복이 단 한 벌도 없다. 그나마 말라가시인들이 흑사병(매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유행)과 말라리아 등 온갖 질병과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면역력이 비교적 강한 것으로 보이고, 20세 미만이 인구의 53%를 차지한다는 점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믿을 구석이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굶주림

그런데 마다가스카르에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적이 있다. 바로 굶주림이다. 마다가스카르 인구의 88%가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일용직으로 추산되는데, 외출금지령이 장기화할 경우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걸려 죽느냐 굶어 죽느냐 하는 비극적인 선택에 내몰리지 않으려면 코로나19의 전국적인 확산을 초기 단계에서 최대한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확진자를 찾아내 격리시킬 무기인 진단키트이다.

4월 중순까지 마다가스카르가 보유한 진단키트는 1만4000명분 정도였다. 한국에서 하루에 시행하는 진단검사 횟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통적으로 마다가스카르에서 개발협력을 주도해온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현재 자국 내 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마다가스카르에 진단키트 등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4월20일, 마다가스카르에 단비 같은 물자가 도착했다. 한국에서 5000명분량의 진단키트와 핵산추출기, 진단시약 등을 보낸 것이다. 5월 중에는 1만명 분량의 진단키트와 기타 장비를 추가로 마다가스카르에 지원할 예정이다. 이 또한 당초 마다가스카르에 올해 집행하기로 배정되어 있는 국제기구협력사업 예산의 일부를 코로나19 대응으로 변경해서 가능해졌다.

마다가스카르에는 현재 수도에 프랑스계 진단센터가 딱 하나 있다. 필자는 이번에 한국에서 여러 방역장비 지원을 발판으로 마다가스카르 자체 진단센터를 최초로 설립하는 방안을 마다가스카르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물론 이 진단센터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장비와 인력, 그리고 훈련 등이 필요하다. 며칠 전 마다가스카르 보건장관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는 한국 지원 덕분에 마다가스카르가 자체적인 진단센터를 설립해 아프리카에서 코로나19를 극복한 제2의 한국이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고 말했다.

필자는 요즘 마다가스카르 외교장관과도 거의 매일 통화하며 마다가스카르의 코로나19 대응 역량 강화 방안에 협의하고 있다. 교민 이송과 관련해서는 도움도 받았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주요 국가들은 자국민을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작전에 돌입했다. 주마다가스카르 대사관에서도 우리 교민들 대상으로 귀국 희망 예비조사를 실시했고, 약 80명이 귀국을 희망했다. 이에 대사관은 임시 항공편을 백방으로 알아봤다. 다행히 에티오피아 항공을 통해 10만 달러(약 1억2000만원)에 102인용 항공기를 임차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마다가스카르-에티오피아 구간 임시 항공편을 확보하고 에티오피아-한국 구간은 에티오피아 항공에서 기존 정기노선 항공권을 예매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국을 포기하는 교민들이 발생했다. 최종적으로 아동 동반 가족과 고령자 등 26명만 귀국을 희망했다. 그런데 26명이 102인용 항공편 임차비를 부담하려면 1인당 지불해야 하는 돈이 거의 500만원에 육박했다. 우리 교민들의 귀국 작전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때 미국 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이 임시 항공편을 편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시 좌석이 남으면 자국민들을 같이 태워줄 수 있느냐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과거 아프리카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해 교민들이 대피해야 할 경우, 프랑스 또는 미국 등 우방국이 파견하는 전세기의 잔여 좌석에 탑승해서 귀국할 수 있도록 부탁하는 방식으로 지원했다. 이번 코로나19 대응에서는 한국이 주도했다. 미국 대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마다가스카르 내 다른 대사들에게 연락을 했다. 결국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노르웨이 등 총 6개국 국민 71명이 우리 교민 26명과 함께 한국 대사관이 주도해 마련한 임시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교민들의 1인당 부담액도 120만원대로 내려갔다.

ⓒ주마다가스카르 한국대사관 제공마다가스카르의 풍경은 한국의 옛 시골 풍경과 닮았다. 위는 벼타작을 하고 있는 말라가시인의 모습.

한국이 신청한 항공편 이틀 만에 전격 허가

가장 중요한 고비는 마다가스카르 정부로부터 임시 항공편에 대한 예외적 운항 허가를 받는 것이었다. 우리가 특별운항 허가를 신청하기 직전에, 상당히 비중 있는 국가 두 곳이 자국민 귀국을 위해 신청한 특별운항 허가가 불허됐다. 전세기 운항은 전적으로 마다가스카르 정부 결정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마련한 임시 항공편은 신청한 지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허가가 나왔다. 마다가스카르 주재 다른 나라 대사들이 한결같이 놀랐다. 우리 임시 항공편은 예정대로 3월31일 마다가스카르를 출발했고, 미국 등 대사들은 자국민 대피를 도와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4월17일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아프리카에서 코로나19로 인해 330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 한국이 앞으로도 아프리카에 진단키트 등 방역장비를 지원해주면 수많은 고귀한 목숨을 살리고, 이는 결국 우리의 목숨도 살리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에 마다가스카르에 선제적으로 진단키트 등의 지원을 통해 우리의 방역 모델을 정착시키면, 중장기적으로 미래 고성장 산업인 바이오 분야에서 마다가스카르뿐만 아니라 인근 모리셔스, 세이셸, 코모로 등 인도양 아프리카 지역 전체에 뻗어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도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잘 알고 있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직격탄을 맞았고,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멀기만 한 아프리카의 코로나19 대응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추가적인 재원 투입 없이 기존 국제개발협력사업을 재편하고 민관이 함께 노력해가면 실질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에 16개국이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그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티오피아도 있다. 참전한 16개국을 우리 국민들이 지금도 특별하게 각인하듯, 만일 한국이 코로나19 위기에 놓인 아프리카 국가들에 도움을 주면 이들 국가도 큰 위기에 있을 때 유일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한국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기자명 안타나나리보·임상우 (주마다가스카르 대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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