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 전문가 100% 활용하는 법
  • 장일호 기자
  • 호수 660
  • 승인 2020.05.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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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는 인구 30만명에 불과한 도시지만 종합대학과 의과대학이 있다. 지역사회를 돕고 이해하려는 전문가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장점마을의 ‘행운’이었다.
ⓒ시사IN 이명익김세훈 박사는 2017년 금강농산에 처음 방문했다. ‘공장이 잘못 운영되고 있구나’를 직감했다.

바람이나 쐴 겸 나섰다. 김세훈 박사(전북대 환경공학과)는 2017년 2월 강공언 교수(원광보건대 보건의료학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환경문제가 발생한 지역에 같이 가보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런 일’이 일상인 사람들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수락했다. 임형택 익산시의원과 손문선 전 익산시의원(시민단체 좋은정치시민넷 대표)이 동행했다. 문제가 발생한 곳이 사유재산이라 무단침입으로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배지’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라3길 3-76. 도착한 곳은 금강농산이라는 비료공장이었다. 김 박사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공장에 잠시 들어갔는데 재료 분진이 온몸에 묻어요. ‘공장이 잘못 운영되고 있구나’를 직감했죠. 그래서 그다음 주에 또 가봤어요.” 강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환경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공장 가동 중에 들어가 봤으면 심각성을 느꼈을 거예요.” 외부 전문가들과 장점마을의 질긴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익산시는 인구 30만명에 불과한 도시지만 종합대학과 의과대학이 있었다. 지역사회를 돕고 이해하는 전문가가 가까이 있었다. 장점마을의 ‘행운’이었다.

두 달 뒤 주민대책위원회가 김세훈 박사와 강공언 교수에게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민관협의회)’에 참여해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현장을 이미 확인한 터라 거절하기 어려웠다. 민관협의회는 위원을 구성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마을 추천으로 합류한 두 사람을 익산시에서 마뜩잖아했다.  

짚이는 점은 있었다. 강 교수는 익산에서 환경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왔고, 김 박사는 당시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 연구원으로 지자체 처지에서는 싫어할 만한 연구 결과만 내놓고 있었다. 강 교수는 자신이 어디서도 환영받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환경문제 관리는 기본적으로 돈을 까먹는 일이에요. 지방일수록 지자체가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세수도 되는 사업장 유치에 사활을 걸다 보니 환경정책은 계속 퇴보하고 있죠.”

행정의 구멍과 싼 땅값, 지방이라는 폐쇄성을 이용한 소규모 공장은 이제 ‘시골’의 풍경이다. 김 박사는 지역에서 환경문제를 연구하며 그런 공장이 일으키는 문제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지자체가 관리해야 할 면적이 넓다 보니 관리·감독은 산업단지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환경문제는 지자체의 주요 관심사도 아니다 보니 행정력이 떨어지는 거죠.”

환경부가 역학조사 청원을 검토하는 동안 두 사람은 기존 자료부터 검토했다. 2009년과 2010년 전북보건환경연구원이 오염 시료를 채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전북보건환경연구원은 ‘질병 연관성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박사는 두 차례 연구가 공장의 특이성을 간과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경험으로 아는 일이었다.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은 너무 많은데 유해 분석 항목은 정해져 있거든요. 법 영역에 없는 항목을 조사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해요. 연구 사업을 해봐서 알지만 이게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기보다는 수치가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를 더 중요하게 따져요.”

ⓒ임형택 익산시의원 제공2017년 3월2일 금강농산 내 대형 회전 건조시설인 로터리 킬른이 돌아가고 있다.

역학조사 전에 예비조사를 한 이유

금강농산이 2017년 4월 폐쇄되면서 민관협의회 전문가 위원들의 마음도 바빠졌다. 공장이 가동 중일 때도 쉽지 않은 역학조사를 문 닫은 상태에서 해야 했다. 이러면 실측이 쉽지 않고 속된 표현으로 ‘뭉개고’ 갈까 봐 걱정됐다. 그해 7월 환경부가 역학조사를 수용했지만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18년 1월까지는 아직 반년이나 남은 때였다. 강공언 교수, 김세훈 박사, 임형택 시의원, 손문선 대표가 긴급 토론회를 마련했다. 두 전문가가 기초조사를 하고, 임형택 시의원이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자료로 논의를 거듭 진행했다.

이들은 민관협의회를 통해 역학조사 전 예비조사를 제안했다. 금강농산은 공장 폐쇄 이후 폐기물 및 설비를 계속 빼가고 있었다. 모두 ‘증거’인데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시료 확보가 급했다. 문제는 발암물질이 있다면 얼마나 노출됐는지, 정말 마을 주민들에게 영향을 줬는지 예비조사로 얼마만큼 확인할 수 있는가였다. “역학조사 개시일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마음은 급했는데 예비조사에서 원인자를 못 찾으면 역학조사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정말 부담됐죠.”

익산시에서 예비조사 명목으로 예산 2000만원을 어렵게 땄다. 강공언 교수가 대기를, 김세훈 박사가 폐기물을 맡았다. 토양과 지하수 전문가 김강주 교수(군산대 환경공학과)가 합류했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료를 채취하고 각 샘플을 조사기관에 보내는 절차마다 제3자를 끼웠다. 결과는 연구자들이 받아보지 않고 익산시로 바로 보내도록 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전문가 위원들을 ‘주민들을 선동해서 용역 따는 연구자’로 매도했다.

예비조사 결과 지하수, 저수지, 토양 등에서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PAHs) 16종이 확인됐다. 역학조사는 예비조사에 근거해 두 물질을 중점적으로 검증했다. 담배특이니트로사민에서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NNN(Nicotine-nitrosamine nitrosonornicotine)과 NNK (N-nitrosamine ketone)가 나왔다. 다양한 동물실험에서 폐·비강·구강·기관·식도·위·췌장·간·피부에 조직특이적인 발암성이 보고된 물질이었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 16종 중 확인된 벤조피렌 역시 1군 발암물질이었다.

건강영향평가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의 암 발병률은 모든 암에서 전국 표준인구집단 대비 약 2~25배 높은 범위에 있었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담낭 및 담도암은 2008년, 피부암은 2012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집단적 발병으로 파악됐다. 1인당 의료비용 지출 역시 인접 지역의 123.2%로 높게 나타났다.

ⓒ시사IN 이명익강공언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환경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왔다.

환경부는 역학조사 결과를 소극적으로 해석하기 바빴다. 2018년 12월 역학조사를 마치고도 최종 결과를 발표하기까지는 1년 가까이 시간이 더 필요했다. 환경부와 전문가 위원들 사이에 반박과 재반박이 오가며 힘겨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역학자인 오경재 교수(원광대 예방의학교실)가 합류하면서 겨우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받았다.

예비조사에서 지하수와 토양을 담당한 김강주 교수는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외국의 경우 형사상 문제는 직접적 증거를 요구하지만 환경문제는 사회문제로 인식해 증거의 우세성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면 의심받는 쪽(기업)에서 아니라고 증명해야 해요. 장점마을 역학조사가 그런 결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진짜 획기적인 사건이에요.” 김강주 교수는 역학조사 이후 ‘익산 장점마을 환경오염 사후관리’ 용역을 맡았다. 정화작업을 위한 조사로 앞으로 어떤 식으로 토지를 이용할 수 있을지 알아본다. 연구기간은 2020년 12월까지다.

‘사전예방의 원칙’ 사실상 처음 적용

장점마을은 환경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자가 아니라 수용자의 관점으로 문제를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다리를 놓았다. 김 교수는 그동안 환경학자들이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사전예방의 원칙’이 사실상 처음으로 작동했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사전예방의 원칙이 굉장히 사치스러운 개념이었어요. ‘문제도 안 터졌잖아? 법도 없잖아? 그냥 법대로 해.’ 그렇게 하면 대부분 업체가 이깁니다. 법이 완벽하지 않거든요. 최소한의 요건이 법이에요. 그 빈곳을 행정이 못 메웠어요. 마을 주민들보다는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요.”

불행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 노력한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금강농산과 싸운 17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김세훈 박사는 장점마을이 이 과정을 통해 동네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장점마을은 ‘집단 암’이라는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기 마을의 가치를 봤어요. 암의 대명사가 됐지만 공동체가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했죠.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나중에는 암을 치료하러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장점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의 암을 치료하기 위해 먹거리와 생활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새로운 사람들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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