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4월6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준비하고 있다.

병동은 열었지만 인력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환자실 간호사가 부족했다. 대구 지역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중증 환자가 속출하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급한 대로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이 예정에 없던 확진자 중환자실을 마련했다. 전국에 간호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3월3일 간호사 10명을 파견했다. 그중 중환자실 간호사는 한 명에 불과했다. 국내 대형 종합병원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빅5’ 병원도 중환자실 인력만은 여유가 없었다. “대구 올 때 동기들한테 정말 미안했어요. 제 듀티(근무)를 다 뒤집어써줬거든요.” 중환자실 간호사 5년 차인 김수련씨(28)는 중간 연차다. 연차가 높은 ‘시니어’의 감독을 받으며 3년 차 미만 ‘신규’ 간호사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뒤를 봐주는 핵심이다. 정작 김씨 같은 중간 연차는 많지 않다. 대부분 신규 때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김씨와 함께 입사했던 동기 10명 중 7명이 떠났다.

응급상황이 일어났을 때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중간 연차가 많지 않다 보니, 단 한 명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다른 간호사 업무는 두 배가 아니라 네 배가 된다. 한 사람 업무뿐만 아니라 그가 뒤를 봐주던 신규 간호사까지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간호사 1명이 환자 2명을 본다면, 신규 간호사 2명을 돌봐주는 중간 연차는 환자 6명을 동시에 봐야 한다. 김씨가 ‘대신 한다’는 수준을 넘어 ‘뒤집어쓴다’라고 표현한 이유다.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을 뒤로하고 대구동산병원에 도착한 그가 무겁고 숨 차는 방호복 속에서 느낀 감정은 ‘무기력함’이었다. 무슨 수를 써도 환자 10명을 제대로 간호할 수가 없었다. 중환자의 상태를 읽을 수 있고 중환자실 설비를 다룰 수 있는 간호사는 턱없이 모자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간호사들이 A조와 B조로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들어가기도 했다. 규칙대로라면 A조가 일하는 동안 B조는 방호복을 벗고 두 시간 동안 쉬어야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대신 한 명씩 돌아가며 30분 쉬고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원래 예정된 파견 기간은 2주였지만, 김수련씨는 2주 더 요청해 한 달을 채웠다. 자기 몫을 ‘뒤집어쓰고’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했지만 이대로 떠나면 여기 있는 환자들이 죽을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이 컸다.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 병동도 사정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북 지역 한 대학병원의 코로나19 일반 병동에서 근무하는 7년 차 간호사 김지수씨(29·가명)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방호복 입는 법을 배워야 했다. “방호복을 입고 벗는 건 제 목숨과도 직결되는 일인데, 병원에서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만든 영상을 볼 수 있는 부스 하나 설치해준 게 다였어요. 당장 다음 날부터 환자 받아야 된다고, 이거 보고 배우라고.”

ⓒ시사IN 이명익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교대 근무를 마친 의료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미 넘쳐나는 간호사의 장롱면허

인력이 부족해지자 다른 병동 간호사들이 징발됐다. 마취회복실 간호사가 하루아침에 일반 병동 간호사가 되는 식이었다. 그래도 인력이 부족하자 신규 간호사들이 투입됐다. 2개월 동안 수습 교육을 받고 막 ‘독립(선배 도움 없이 혼자서 환자를 볼 수 있게 됨)’한 간호사들이었다. 그래도 공백이 메워지지 않자 2개월이 아닌 2주 교육을 받은 신규 간호사들이 들어와 전체 인력의 약 30%를 채웠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보내줄 거면 필요 없다고, 들어가서 가르칠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도 병원은 막무가내더라고요. 어쨌든 ‘머릿수 채워줬으니까 해내라’는 식이었어요.”

현장 간호사 인력 부족은 코로나19 때문에 갑자기 터진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지적돼왔던 만성적인 문제다. 1990년대 초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했던 최정화씨(52)는 당시에도 간호사들이 주로 요구했던 사항이 ‘적정 인력 확보’였다고 말했다. “간호사 3명이 중환자 10명을 돌봤어요. 응급상황이 터지면 간호사 2명이 그 환자에게 매달리고 혼자 나머지 환자를 전부 돌봐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지금 사람을 죽이고 있는 건지 살리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엄청났어요.” 1년 반 만에 병원을 그만둔 최정화씨는 2014년부터 다시 지방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20년 전보다 상황이 훨씬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라서 환자 수도, 중증 환자도 많아졌는데 인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부족하다.

2019년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39만4627명이다. 실제 병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는 이 중 43.9%(17만3469명)에 그친다. 면허는 있지만 활동하지 않는 ‘장롱면허’가 훨씬 많은 셈이다. 인구 1000명당 면허 소지 간호 인력은 6.9명인데, 이는 OECD 평균 9.0명에 비해 낮은 수치다. 면허 소지자가 아닌 실제 활동하는 간호사로 범위를 좁히면 인구 1000명당 간호사 3.5명으로 떨어지는데, 역시 OECD 평균인 7.2명에 미치지 못한다. 최정화씨는 정부가 간호사들이 말하는 ‘인력 부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간호대 졸업생을 늘리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장롱면허는 이미 많아요. 간호대생 많이 양성해봤자 버티기 힘든 병원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예요.”

인력 부족은 문제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이미 일손이 부족한 병원에 입사한 신규 간호사는 2~3개월 안에 독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일대일로 각자 능력껏 신규 간호사를 교육해야 하는 중간 연차 간호사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선배는 후배를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환자 처치법이나 의료기기 사용법 등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 기간에도 여전히 똑같은 환자 수를 담당해야 한다. 선배 처지에서는 순전히 가욋일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빴던 업무에 신규 교육이라는 추가 업무까지 더해진 선배는 후배가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화를 내기 쉽다. 지나치면 직장 내 괴롭힘인 ‘태움’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관리직인 수간호사가 이들의 방어막이 되어주는 경우는 드물다. 퇴사할 확률이 높은 신규 간호사의 편이 되어주기보다 병원 쪽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신규 간호사가 퇴사하면 병원 인력 충원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 빈자리를 메워 새로 들어오는 신규 간호사도 비슷한 과정을 반복한다. 보건의료노조가 2018년 한 해 동안 36개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직률은 15.55%였다. 이는 간호사를 제외한 병원 내 다른 직군 이직률 6.67%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직자의 연차를 보면 1년 차 37.15%, 2년 차 16.96%, 3년 차 12.42%다.

병원은 언제든 ‘장롱면허 간호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아쉬울 게 없다. 오히려 연봉이 높은 간호사를 고용 유지하는 것보다 낮은 연봉을 받으며 최저 수준으로 간호를 제공할 수 있는 신규 간호사를 그때그때 채용하는 게 이익이다. 신규 간호사는 전문성을 쌓고 인정받는 의료인으로 성장하기보다 1년짜리 소모품으로 인식된다. 최정화씨는 이윤을 내야 하는 사립병원이 자율적으로 간호사 적정 인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며 ‘간호등급제’ 같은 인센티브를 주기보다는 강제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호등급제란 환자 대비 간호사 수가 많을수록 정부가 병원에 입원료를 더 많이 지급해주는 제도다. 만약 병원이 간호등급제로 받는 ‘수익’보다 간호사를 유지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판단할 경우 안 지켜도 된다. 최정화씨는 장기적으로 공공병원을 늘리는 것이 간호사 적정 인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공공병원부터 간호사 적정 인력을 확보하고, 공공병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구조 자체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대병원 음압병동에서 일했던 간호사 이혜옥씨(42)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현장에 있는 동료 간호사들의 모습에서 5년 전 자신을 본다. 제대로 된 교육 한번 없이 간호사들끼리 부딪쳐가며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고, 인력이 부족해 석 달 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당시 갑작스럽게 엄마와 떨어지게 된 이씨의 어린 세 자녀는 심한 분리불안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이씨 역시 ‘내가 무엇을 위해 자식까지 내팽개쳐가면서 일했나’ 하는 죄책감으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이씨는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을 그만뒀다. 당시 감염병동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10여 명 중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간호사도 모두 다른 부서로 배치를 신청했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처음 코로나19 뉴스를 접했을 때 동료들이 제일 먼저 걱정되었어요. 남아 있는 동료와 후배들이 그때의 저처럼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뉴스를 보면서 남편한테 ‘혹시 사태가 안 좋아지면 나도 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더니 온 가족이 말렸어요. 그래서 못 갔어요. 아마 저처럼 메르스 때 상처받고 현장을 떠난 간호사들도 비슷할 거예요. 본인은 가고 싶어도 주변에서 말리거든요.”

“앞으로는 정말 이렇게 할 수 없다”

중간 연차 간호사들은 ‘커버 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신규나 연차가 낮은 간호사가 실수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의료사고를 막아내거나 상황이 어려운 환자를 수습한다는 뜻이다. 경력 높은 간호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환자가 안전해질 확률도 높아진다. 서울대병원 응급실 간호사 장은영씨(32)는 “멀쩡해 보이는 환자가 응급실로 걸어 들어왔는데, 전화로 부부싸움을 하길래 다들 급한 환자가 아닌 줄 알았죠. 그런데 9년 차 선생님(간호사)이 환자한테 가까이 다가가더니 ‘이 환자 뭔가 이상하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10분 후에 심폐소생술 들어갔어요. 알고 보니 엄청나게 많은 혈변을 보고 있었더라고요. 그 선생님 커버가 아니었으면 골든타임을 놓쳤겠죠”라고 말했다.

석 달 넘게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간호사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데 아낌없었다. 간호 인력의 희생 위에서 가까스로 유지되는 시스템에는 미래가 없다. 메르스의 교훈을 잊은 자리를 또 한 번 메운 건 간호사들의 희생이다. 이들이 품은 소명을 볼모 삼아 겨우 헤쳐나가고 있다. 모두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뉴노멀’을 세우자고 한다. 간호사들 노동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는 정말 이렇게 할 수 없다”라는 간호사들의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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