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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국면에서 미국은 체면을 구기고 있다. 4월22일 기준 미국 코로나19 확진자 수(82만3257명), 사망자 수(4만4805명)는 세계 1위다. 시민들은 ‘휴지 사재기’ 같은 행태를 보였고 일부 주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하라는 시위가 일어났다. 보건체계의 오랜 병폐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주지사 한 사람이 주목받았다. 공화당 출신 메릴랜드 주지사 래리 호건(64·왼쪽)이다. 4월18일 메릴랜드주는 한국에서 코로나19 진단키트 50만 회 분량을 사갔다. 이전까지 메릴랜드주는 검사를 약 7만 건 실시했다. 호건 주지사는 3월28일 이수혁 주미 대사를 통해 한국 진단키트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메릴랜드주와 한국 쪽 실무자들 사이에 거의 매일 통화가 이루어졌다. 협상 22일 만에 호건 주지사는 이전에 메릴랜드주가 검사했던 진단키트 분량의 7배 이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4월20일 브리핑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이수혁 대사, 홍석인 주미 한국 대사관 공공외교공사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 대표로 브리핑에 참석한 홍 공사를 향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 작전의 챔피언”이라고 부른 이가 있다. 자신의 아내인 유미 호건(한국명 김유미·오른쪽) 씨다. 미술을 전공한 한국계 이민자 유미 호건 씨는 2004년 호건 주지사와 결혼했다. 과거 한국 언론에서 ‘한국 사위’라는 별명을 붙이자 호건 주지사가 “매우 자랑스럽다”라고 화답한 일이 있다. 2015년 주지사 취임 후 그는 관저에 김치냉장고를 들여놓고 주 의회에서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는 등 친한(親韓) 행보를 수차례 보였다. 인천-볼티모어 직항을 추진하기도 했다.

메릴랜드는 미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민주당 지지세가 높은 지역이다. 래리 호건은 64년 만에 나온 공화당 출신 재선 주지사다. 한국계를 비롯한 이민자들의 지지가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암 투병한 이력도 있다. 코로나19 위기관리에 대한 평가도 좋다. 〈ABC뉴스〉와 입소스의 3월21일~4월1일 조사에 따르면, 래리 호건 주지사의 코로나19 대응은 메릴랜드 응답자 84%의 지지를 받았다. 같은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대응에 대한 지지 응답은 33%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호건 주지사는 한국 진단키트 구매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4월20일 코로나19 대응TF 브리핑 중 트럼프 대통령은 “호건 주지사는 펜스 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 (키트를 요청하면) 돈을 아낄 수 있었다. (…) 한국에 갈 필요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MSNBC 방송에서 호건 주지사는 “(진단키트 확보가) 주지사 책임이라고 말한 사람은 대통령이다. 우리는 그것을 완수했는데 비난을 받았다”라고 반발했다. CNN 방송에서 호건 주지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반대 시위를 옹호한 대통령을 “정부 방침과 모순”이라며 비판했다. “주지사들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다”라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두고는 “절대적인 거짓”이라고 대응했다. 특이한 서사를 가진 인물이 상식을 대변하는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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