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수빈은 걸그룹 달샤벳의 멤버였고, 벌써 만 4년째 솔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피아노를 주된 악기로 풍성한 화성을 구사하는 가운데, 화려하기보다 진지하게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팝송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의 곡들은 〈K팝스타〉 출전자들처럼 심사위원의 눈빛에 하트를 띄울 법한 노래와는 결이 확연히 다르다. 피아노를 치는 왼손은 날카로운 저음으로 침잠하며 긴장을 자아내고 오른손은 방황하듯 유영한다. 격정을 건반 위로 쓸어내리며 쓰라린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이질적이다. 달샤벳이 한껏 시끌벅적하고 섹시한 느낌으로 들떠 있는 이미지였음을 생각하면 말이다. 단아한 그의 얼굴은 정색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목소리도 특유의 의미심장한 중저음을 본색처럼 자주 들려준다. 그렇다고 억지로 무게를 잡으며 진지한 아티스트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은유와 말장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이를 발음의 음악성, 악기 편성에도 유기적으로 연결하곤 한다. ‘동그라미의 꿈’은 둥근 모습과 둥근 성격, 굴러가는 듯한 발음과 멜로디를 연결 지어 노래한다. ‘Katchup’은 ‘따라잡다’는 뜻의 ‘catch up’을 케첩과 병치하고는 일부러 가볍고 맥 빠진 듯한 말투로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가사와 편성에 따라 분위기가 깔끔하게 전환되는 특유의 음악적 호흡도 일품이다.
‘달수빈’이란 참 묘한 이름이다. ‘달샤벳 수빈’의 줄임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귀염성이 있다고도 할 법하다. 영문 표기인 ‘DALsooobin’의 번거로움까지 보자면 조금 묘한 인디 느낌도 드는데, 아무튼 ‘아이돌 느낌’이 아니란 것은 잘 알겠다. 달샤벳의 영문 표기가 (여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지만) ‘Moon Sherbet’이 아니라 ‘Dal☆Shabet’이었던 걸 생각하면 어떤 브랜딩의 연관성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같다.
동시에 도발적인 이름이다. 여성 아이돌의 음악적 자기표현을 바라보려고 하면 꼭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같은 뻔한 수식이 붙어야만 하지 않겠나. 이 이름은 그런 통념에 일단 선을 긋고 본다. ‘달샤벳 수빈’과 ‘달수빈’은 다른 인간이 아니라고, 아이돌을 ‘졸업’해야만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그의 경력을 생각하면 더 쉽게 수긍할 만한 이야기다. 그는 달샤벳 시절에도 자신의 솔로 곡을 직접 썼고, 타이틀곡을 포함한 미니앨범 전곡을 공동 작곡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조커(Joker)’라는 노래가 수빈의 곡이었다. 다만 여성 아이돌의 자작곡은 쉽사리 홍보거리가 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업계 사정으로 덜 알려졌을 따름이다. 어쩌면 그가 쓴 달샤벳의 곡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의도처럼 들리기도 한다.
냉정히 말해 달샤벳은 탄탄하게 기획되고 세련되게 운용되며 최고의 히트만 기록한 걸그룹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일원인 수빈의 활동과 그 시간이 낳은 달수빈이란 아티스트를 가볍게 볼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달수빈의 새로운 음악세계가 깊어질수록 이 이름은 더 반가워질 것이다. 웃고 즐길 히트곡이라고 하기에는 귀와 마음이 조금 무겁지만, 그만큼 꼼꼼한 세공과 사유를 담은 곡들이기도 하다. 이 도전적이고 우아한 음악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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