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4월15일 JTBC의 예측조사가 김부겸 후보(가운데)의 승리로 나오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4월15일 밤 9시55분께, 붉게 상기된 얼굴로 캠프 사무소에 도착한 김부겸 후보(더불어민주당)가 말했다. “농부는 자기가 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갈밭은 자갈밭대로, 모래밭은 모래밭대로 그에 맞게 땀을 흘리고 거름을 주고 그렇게 일을 해야 반드시 땅은 보답을 한다고 합니다.” 젊은 비서들과 몇몇 지지자들은 울고 있었다. 김 후보가 “집으로 돌아가달라”고 했다. 지지자들은 “안 끝났습니다!” “끝까지 봅시다!”라고 답했다. 그는 말을 좀 더듬었다. “여러분 이번 저를 한번 마지막으로, 저를 울게 하지 마시고. 저를 이렇게… 제 감정을 가라앉히고 여러분께 호소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우리 함께, 또 내일 새로 시작할 수 있게끔 오늘은 여기서 인정하고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자꾸 우시면 저도 울고 싶잖아요.” 모인 사람 하나하나와 포옹하고 인사를 나눈 뒤 김 후보는 자리를 떴다. 기자에게 김 후보는 “그래 수고 많았다. 뭐 우야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웃지 않았지만 특유의 웃는 상을 일그러뜨리지도 않았다.

〈시사IN〉은 4월8일부터 15일까지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부겸 후보를 동행 취재했다. 경기 군포에서 3선을 한 김부겸 후보는 2011년께부터 대구 출마를 준비한다. 2015년 나온 대담집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에 당시 심경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나를 움직인 것은 ‘부채의식’입니다. 아무튼 나는 국회의원도 했고 정치인으로 살아남았지만 꿈을 접고 응어리를 풀지 못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묵직한 돌덩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 나를 움직이게 한 겁니다.”

50대 주부 “대구를 포기하지 마세요”

부인 이유미씨는 대구행을 말렸다. 김 후보와 1980년대 말부터 연을 이어온 이진수 전 보좌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사모님도 대구 사람이다. 대구를 안다. 얼굴이 노래지셨다. (김부겸 전) 장관은 목사님에게 설득을 부탁했다. 목사님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사모님에게 ‘이건 십자가의 길이다. 보통 사람은 이해 못해도 신앙인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과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내리 낙선한 김 후보는 2016년, 마침내 소선거구제 도입 후 28년 만에 민주당계 대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시사IN 이명익4월15일 밤 김부겸 후보가 선거사무소에서 울먹이는 지지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유세 방식은 매일 같았다. 캠프는 ‘벽치기’라고 부른다. 후보가 직접 유세 트럭에 올라 아파트 단지를 향해 연설한다. 후보 본인의 아이디어로 2012년 시작했다. 차를 세우는 위치, 방향을 지시하는 것도 후보 본인이다. 풍향을 중시했다.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야 최대한 멀리 간다는 것이다. ‘바람 방향’에 따라 차를 멈추고 돌리는데 동선이 일정할 수 없다. 쫓아가는 수행비서 차량은 유세차를 놓치기 일쑤였다.

캠프는 이 유세 방식이 효율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판단했다. “따로 청중을 모아봐야 지지자만 듣는다. 벽치기 유세는 겉보기에는 반응이 없어 보이지만 집 안에서 다 듣는다”는 것이다. 김 후보와 보좌진은 벽치기 유세를 “때린다”라고 표현한다. 선거운동 기간 수성갑 각 지점을 2~3번씩 때렸다. 연설을 시작하면 아파트 창문이 하나둘 열렸다. 텅 비어 있던 거리에 마스크를 낀 청중이 어디선가 모여들었다. 길면 10분쯤 되는 김부겸 후보의 연설을 다 들은 뒤 이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지나는 차들은 경적을 울렸다. 운전자들은 창문을 열고 인사했다. 김 후보의 연설은 자꾸 중단됐다. 문장 사이사이 시민들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연설이 끝나면 사람들이 달려왔다. 머리가 젖은 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달려온 모녀도 있었다. 이들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연설 소리를 듣고 아파트에서 내려왔다. 아까 유세하시던 곳에서도 봤는데 아쉽게 사진을 못 찍었다”라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횡단보도를 건너와 후보에게 말을 건 노인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명함이나 야구공을 들고 와서 사인을 요청했다. 수성갑 전역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김부겸 후보에게 지지자들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그동안 얼마나 억눌렸겠노. 주변 목소리 큰 사람들은 전부 저쪽 당 지지자였으니까”라고 말했다. 차 안에는 검은콩두유, 홍삼젤리 등 주민들이 건넨 건강보조식품이 쌓여 있었다.

4년 전에 비해 유리할 게 없는 선거였다. 대구는 코로나19 피해가 압도적으로 큰 지역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도 몹시 박하다. 문재인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 이력은 득보다 실이 컸다. 김 후보는 “선거 초반에는 별소리를 다 들었다”라고 말했다.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3월24일 밤에는 캠프 사무실에 날달걀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문재인 폐렴, 대구 초토화, 민주당 OUT” “신적폐 국정농단, 혁명, 문재인을 가두자”라는 문구가 붙었다. 범인이 체포되자 김 후보는 페이스북에 “개인의 우발적 행동이었다면 그분의 처벌을 원치 않습니다. (…) 아군과 적군으로 편을 갈라, 내 편은 무조건 선이고 상대편은 악이라는 식의 정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썼다.

ⓒ시사IN 이명익시사IN 2020.4.2825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의 선거유세원(가운데)과 미래통합당 주호영 후보의 선거유세원이 4월12일 같은 장소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달걀을 치운 뒤 사무소 문에 편지와 꽃을 붙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70대 할미’라고 밝힌 이는 “이곳에서 출마하시려는 의원님을 보면 얼마나 힘이 드실지 가슴 먹먹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라고 썼다. ‘절박한 대구 시민’이라고 쓴 사람은 “이 험지에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끈기 있게 문을 두드려주신 것에 뒤늦게라도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다. 김 후보가 기자에게 보여준 문자메시지에도 비슷한 정서가 배어 있었다. ‘50대 주부’라고 밝힌 한 사람은 “힘드시겠지만 대구를 포기하지 마세요. (…) 이렇게 문자로밖에 응원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라고 썼다. 후보는 비슷한 문자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분위기만으로 선거를 이길 수는 없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 때 김 후보 캠프의 좌장 구실을 한 김태일 교수(영남대)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 당선됐다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된다. 2014년, 2016년의 메인 슬로건은 ‘일하고 싶습니다’였다. 지금은 자연히 ‘그래서 뭐 했노?’라는 질문이 나온다.” ‘대구·경북 몫 추경 1조원 증액’을 이끌어냈다고 내세웠다. 여기에 더한 게 대권 도전 선언이었다.

대권 도전 선언에 유권자들의 호응은 컸다. 김 후보의 연설이 “여러분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 선거에 당당히 도전하겠습니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시민들은 팔짱과 뒷짐을 풀고 손뼉을 쳤다. 캠프는 ‘큰 인물론’을 캠페인의 중심으로 활용했다. 시내 곳곳에 “대구도 대권 주자를 키워야 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선거 공보에는 “대구는 나라를 운영했던 도시입니다. 동네 정치나 하던 도시가 아닙니다”라고 적었다. 4월10일에는 선거사무소 건물의 대형 걸개사진을 교체했다. “일하고 싶습니다”를 “대구에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로 바꿨다.

김부겸 후보 본인에게 대선 출마 선언이 효과를 봤는지 물었다. “그렇지. 대구 사람들 자존심 많이 상했거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구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자부심’이 훼손됐다는 의미였다. 캠프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코로나19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대구 사람들에게 박근혜의 탄핵은 수치다.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80%가 표를 준 대통령이 물러났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직격으로 맞았다. 지하철에서 기침을 해 옆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승객처럼, 대구 주민은 민폐 끼치는 존재가 됐다.” 온라인 공간에는 TK(대구·경북)를 싸잡아 비난하는 글이 넘쳐났다. 이 지역 사람들은 수십 년간 겪어보지 못한 소수자의 처지가 됐다.

김부겸 후보는 유세에서 “대구가 다시 대한민국의 기둥이 되도록” “대구가 정하면 대한민국이 동의하는” “대구의 가치가 대한민국의 가치가 되도록” 등의 변을 밝혔다. ‘대구를 다시 위대하게’ 대구 시민을 주류로 만들어주겠다는 내용처럼 보인다. 연설을 마친 김부겸 후보에게 ‘대구의 가치’가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김 후보는 뾰족한 답을 주지 않았다. 유세 내용을 살피면 김 후보는, 대구 시민들이 좇는 가치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치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보는 듯했다. 선거 기간 그는 대통령이 되면 “여러분이 원하시는 세 가지, 싸움박질 안 하고 일하는 정치, 원칙이 바로서는 국가 운영의 틀, 우리 아이들의 먹거리를 위한 4차 산업혁명 대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TK 출신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지역 특유의 정서에 호소하는 듯한 대목도 없었다. 유세에서 그가 제시한 ‘비전’은 좋게 말해 무던했고, 나쁘게 말해 밋밋했다.

ⓒ연합뉴스2016년 4월13일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운데)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을 비판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시장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이런 대목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권영진 시장님이 긴급생계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신청하시길 바랍니다.” 경쟁 상대인 주호영 후보(미래통합당)의 이름은 유세 내내 꺼내지 않았다. ‘미래통합당’을 직접 언급한 적도 없다. 다만 “여러분이 30년 넘게 듬뿍 사랑해주셨던 그 당은 이번 코로나 위기 때 뭘 했습니까? 공천 때문에 여러분 곁에 없었잖아요?”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된 까닭은 “물이 고이면 썩기 때문입니다. 경쟁을 시키면 정치는 일을 합니다”라고 했다. 김 후보는 ‘미래통합당이 특별히 더 악한 세력이 아니라, 경쟁이 없는 게 문제’라는 논조를 유지했다. 군포에서부터 그를 보좌해온 한 참모는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다. 이 정도도 굉장히 센 축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이진수 전 보좌관은 김부겸 후보가 아닌 ‘갈등 지휘형 후보’가 대구에 출마했다면 캠페인 내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부겸은 ‘순댕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다르다. 전선을 긋고 갈등을 진두지휘하는 선봉장이 아니라 양쪽을 중재하고 통합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각을 세워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전략을 김 후보는 거부해왔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저지른 실책을 더 강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데 김부겸은 ‘말 타고 강 건너는 사람의 투구를 벗기거나 말을 바꾸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대구시장의) 문제 해결을 돕는다. 지지자를 열광시키지 못하지만 그게 우리 스타일이다.”

김태일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캠프는 ‘갈라치기’ 전략을 썼다. 두 세력을 명확하게 가려 부딪치는 방식이다. 2014년 대구 지방선거에서 우리 전략은 ‘끌어안기’였다. 전선을 흐리는 전략이다.” 당시 김부겸 후보는 당선을 위해 ‘박정희·박근혜 마케팅’을 한다고 비판받았다.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을 공약하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나란히 웃고 있는 사진을 공보물에 실었다(〈시사IN〉 제353호 ‘대구를 그렇게 보면 안 되구 말구’ 기사 참조).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에서 김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나하고 같지 않다고 해서 사라져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 ‘상생’과 ‘공존’의 정치는 나의 일관된 철학이고 요구입니다. 혹자는 ‘저 사람이 대구에서 표 좀 얻겠다고 별짓을 다 하는구나’, 이렇게 말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소신을 접을 수는 없습니다.” 대구라서 쓴 책략이 아니라, 신념의 발로라는 것이다.

ⓒ시사IN 이명익김부겸 후보가 수성구 신매동에서 열린 집중유세 때 한 초등학생과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부겸이 대통령감이긴 한데…”

김부겸 후보가 좇는 상생과 공존의 장애물이 지역주의만은 아니다. 투표 전날인 4월14일 밤 마지막 유세에서 김부겸 후보는 이렇게 연설했다. “가난하고 외롭고 힘든 분들에게 목소리 찾아주겠다는 정치, 지역별로 갈라져서 나라 아작 내는 지역주의 정치 끝내는 것, 무엇보다 진영으로 갈라져서 나라의 장래에는 관심이 없고 맨날 싸움질만 해대는 이 정치를 끝내야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에 내일 김부겸을 당선시켜주십시오.” 그는 지역주의가 진영 정치의 일종이라고 봤다. 김 후보는 지역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진영 정치를 종식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렇게 하는 것이 헌법과 민주주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세대와 세대 간, 계층과 계층 간, 지역과 지역 간 그리고 여당과 야당이 함께 책임진다는 합의가 없습니다. 이러니 공화국 공동체로서의 의미가 없는 겁니다. 공동의 과제와 책임에서 운 좋은 사람은 빠져나가고 운 나쁜 사람은 짐을 져야 한다? 그래서는 공동체가 하나의 헌법으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내가 겪은 비극이 아니니 난 괜찮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 중).”

이것은 요즘 정치 문화에서 인기 있는 깃발이 아니다. 지금은 ‘갈등 지휘형 정치가’가 더 각광받는 시대다. 김부겸 후보는 대구라는 험지에서 싸움을 하는 동시에, ‘상생과 공존과 타협’의 깃발을 들고 양극화된 정치 문화에 싸움을 걸었다. 두 개의 전선에서 불리한 쪽만 골라 섰다.

부채의식 때문에 대구로 왔다는 그는, 이제 그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그렇게 마음의 빚을 쌓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대구’에서 쌓고, 또 누군가는 ‘공존’에서 쌓는다. 김 후보의 대학 후배이자 대구 출신인 전상훈씨는 1000원 지폐 2장을 들고 연단에 올라 김 후보와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돈이 없던 대학 시절 (김부겸) 형님이 ‘야 상훈아, 니 밥은 묵고 다니나?’라며 제 주머니에 1000원짜리 2개를 찔러준 적이 있다. 서울대 광장을 호령하던 그 위대한 전사가 후배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우리 내외가 김부겸 걱정 때문에 밤잠을 못 잤다. 말 보탬이라도 하려고 내려왔다. 정치하는 데 편을 가르고 자기 편 아닌 사람들은 없는 일 갖고도 몰아붙인다. 김부겸은 그게 없다”라고 했다. 부산 동명대의 김동규 교수는 “대구는 내 고향이다. 왜 김부겸이 편안한 자리 마다하고 왔겠나? 일신 안위, 명예를 위해 그랬을까? 대구를 살리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부겸 후보의 마지막 연설이 끝나고 광장 옆 길가에 서 있던 택시를 탔다. 차 밖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연설을 지켜본 기사에게 생각을 묻자 “복잡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어진 그의 말은 마음의 혼란을 반영하는 듯했다. “저 사람 말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온건하고 하는 말이 맞다. 사견으로는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한다. 지역감정이 바뀌긴 해야 되는데…. 사실 대구는 박근혜씨한테 속았잖아? 그런데 김부겸씨는 당을 잘못 타서…. 근데 왜 대구에서 계속 저렇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깝깝하고 안타깝고 그렇다. 복잡하다.”

지난해 말 펴낸 책 〈정치야 일하자〉에서 김부겸 후보는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인용했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을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또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4월15일 밤, 패배를 받아들고 그는 지지자들에게 짧은 연설을 했다. 불과 4분 동안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다섯 번 했다.

기자명 대구·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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