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박경은 올해로 데뷔 9년 차가 된 가수이자, 아이돌이자, 프로듀서이자, 예능인이다. 그에게는 ‘뇌섹남’이라는 별명이 있다. tvN의 퀴즈쇼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 출연하는 동안 멘사 테스트에 도전해 IQ 점수 156을 받으며 회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발랄한 아이돌 래퍼였던 그에게 ‘똑똑하다’ ‘머리 좋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작년 말이었다. 그의 이름이 별안간 뉴스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개인 SNS를 통해 몇몇 아티스트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이 ‘사재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본래 사재기는 물건을 잔뜩 사들여 쟁이는 행위를 말하지만, 이 경우에는 음원 사이트에서 기술적인 조작, 일명 어뷰징으로 이득을 취하는 일을 말한다. 구분을 위해 ‘음원 사재기’라 칭하기도 한다.

이런 음원 사재기 의혹은 201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나왔다. 대중음악 인기의 지표를 보여주는 차트가 디지털 음원으로 옮겨오면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순위 조작을 시도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2013년에는 대형 기획사들이 이런 사재기 브로커를 잡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뾰족한 처벌이 없자, 시간이 지날수록 어뷰징 수법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2019년 11월, 박경의 SNS 포스팅은 여태껏 있었던 아티스트 당사자들의 고발 중 가장 큰 파문을 일으켰다. 실명이 거론된 아티스트들은 그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댓글난은 그의 행동이 똑똑했다, 혹은 경솔했다는 평으로 나뉘었다. 장기화된 문제를 정조준한 용기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번에도 증거 불충분이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박경의 처신이 똑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하는 이도 있었다. 이 맥락에서 말하는 ‘똑똑함’이란 이후의 불이익을 피해 가는 처세적 요령을 뜻할 것이다.

그의 초강수 덕분인지, 이번에는 정부 차원에서 보다 진지한 접근을 하는 것이 눈에 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용역을 맡긴 연구보고서가 이번 달 안에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음원 사재기를 근절할 정책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박경은 이후 경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에 임했다. 2020년 3월 공개된 유튜브 채널 ‘1theK’의 〈본인등판〉 영상에서는 다음과 같이 심경을 밝혔다. “이슈가 생각보다 빨리 희미해져가는 것 같아서 속상해요. 그와 달리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들은 더 또렷해지고 있어요.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기지 마시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의 선택이 똑똑한지, 그가 ‘열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박경이 아이돌 가수라는 자기 직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10년 넘게 진척 없이 악화되어오기만 한 한국 대중음악 산업계의 차트 조작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음원 차트는 인기의 척도이자 당대 음악산업 홍보의 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중문화의 사료(史料)이기도 하다. 이젠 대중문화 취향이 꽤 많이 파편화되었다고는 하나, 어뷰징으로 의심받은 곡들의 데이터는 파편화 경향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 추이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만일 이들이 정말 부끄러운 과정으로 순위를 얻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끄러움은 더해질 것이다. 차트는 역사에 남기 때문이다. 박경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까?

기자명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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