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Mosimann스위스 연방하원 의사당에 걸려 있는 ‘연방의 요람’.

스위스에는 ‘공식적인 그림’에 장난을 치는 전통이 있다. 스위스 베른에 있는 연방하원에 1902년부터 걸린 거대한 그림이 대표적이다. 루체른 호수 내 우르너제를 묘사한 그림은 스위스 화가 샤를 지롱이 그렸다. 그림의 제목은 ‘연방의 요람’인데, 그림이 스위스·헬베티카 연방의 탄생지(슈비츠 및 뤼틀리)를 묘사하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왼쪽 암벽 사이에 완전한 크기의 송어 한 마리가 ‘뜬금없이’ 그려져 있다. 국회의사당 개장을 4월1일에 했기 때문인데, 프랑스어권에서는 만우절을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이라 하여 물고기 그림을 사람 등에 몰래 붙이는 풍습이 있다. 샤를 지롱은 스위스 내 프랑스어권 출신이어서 만우절 농담으로 국회의사당에 걸릴 그림에 송어를 그려넣은 셈이다.

연방지도청 지도에 거미·물고기·마멋 그려넣어

스위스 연방지도청(Swisstopo)의 지도를 보자. 연방지도청은 역사가 거의 200년 된 스위스에서 제일 오래된 연방 관청이다. 나폴레옹이 물러난 직후 스위스 연방 분열을 군사적으로 해결했던 기욤 앙리 뒤푸르 장군이 1838년 설립했는데, 군사용으로 사용할 정확한 지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후에 제1회 노벨평화상을 받은 앙리 뒤낭과 함께 적십자를 만드는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스위스 연방지도청이 편찬하는 지도는 정확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국가가 예산을 들여서 제작한 이 지도에도 장난기 어린 숨은 그림이 들어 있다. 지도를 만들 때 군사시설처럼 공개하기 어려운 곳은 그냥 일반적인 창고 건물로 그린다든지, 아니면 그냥 허허벌판으로 만들곤 한다. 그런데 연방지도청에서 만드는 지도에는 거미나 사람 얼굴, 벌거벗은 여자, 등산객, 물고기, 마멋과 같은 숨은 그림이 들어가 있다.

물론 지도 안에서 이런 숨은 그림을 찾기란 거의 ‘월리를 찾아라’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더 어렵다. 얼핏 보면 지도의 등고선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제작자가 장난삼아 지도에다 그려넣은 지 한참 후에 발견되곤 한다. 즉, 실제 지도에 장난을 친 제작자가 은퇴한 다음에나 발견되기에 공개적으로 질책을 받거나 해고당하지 않는다. 숨은 그림이 발견되면 지도를 업데이트하면서 사라진다.

가장 먼저 알려진 사례는 거미였다. 1981년 제작된 지도에서 아이거 정상에 거미가 놓여 있었다. 이 거미를 그려넣은 이는 오스마 비스였는데, 거미는 발견된 후 지도에서 사라졌다. 1997년에는 지도에서 등산객 그림이 발견됐다. 이 등산객이 들어간 부분은 스위스 땅이 아니라 인접한 이탈리아 지역인데, 이탈리아로부터 협조를 많이 받지 못해 정보가 부족하자 그 여백에 등산객을 그려넣었다. 1980년대 초 제자고딘 지도에는 물고기가 그려지기도 했다. 제작자 베르너 로이엔베르거에 따르면 호수에는 물고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려넣었다고 한다. 발견된 이후 1989년판 지도에는 사라졌다.

최근 발견된 숨은 그림은 마멋이었다. 알프스 지도에 숨어 있다가 2016년, 한 취리히 공대 교수가 발견해 소셜 미디어에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이 마멋은 연방지도청 내 암석 지대 전문 지도 제작자인 파울 에를리히가 그렸다고 한다. 연방지도청은 2011년 은퇴한 그를 찾아가서 물었다. 그는 “그 위치야말로 마멋이 들어가기에 딱 알맞는 장소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연방지도청은 그에게 지도에다가 또 다른 장난을 친 것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실험해봤지만 마멋이 제일 뛰어났다’라고 답했다. 뭔가 또 있다는 뉘앙스였다. 마멋이 들어간 지도는 지금도 연방지도청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기자명 위민복 (외교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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