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저 피를 내 몸에 넣어주시오”
  • 김형민(SBS CNBC PD)
  • 호수 658
  • 승인 2020.05.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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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다니엘 카리온은 1885년 고질병인 ‘페루 사마귀병’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환자의 혈액을 자기 몸에 주입했다. 그 결과 그는 39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희생은 ‘페루 사마귀병’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Wikipedia‘페루 사마귀병’(아래)은 환자의 피부에 무화과 같은 사마귀를 돋게 하고 엄청난 고통을 준다.

중국의 고대 신화에는 삼황오제(三皇五帝)라는 여덟 명의 제왕이 등장한다. 세 명의 황과 다섯 명의 제. 이 여덟 제왕 가운데 염제 신농씨가 있어. 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지녔던 그는 농사와 의약의 선구자였어. 신농은 먹을 수 있는 식물과 약이 되는 식물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종류의 풀을 뜯어 먹어보았다고 해. 그러다가 단장초(斷腸草), 즉 먹으면 창자가 끊어지는 독초를 먹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지.

어떻게 하면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야.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몸과 몸을 괴롭히는 질병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왔어. 동서고금에 걸쳐 수많은 염제 신농씨들, 즉 자신의 몸을 던져 병을 규명하고 인류를 구원한 의사·과학자들이 출현했던 과정이기도 하지.

〈세상을 살린 10명의 용기 있는 과학자들〉(레슬리 덴디·멜 보링 지음)이라는 책에는 인간의 소화능력을 실험하기 위해 짐승의 뼛조각을 통째로 삼킨 이탈리아의 라차로 스팔란차니,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비행기 안에서 인체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시속 1000㎞의 로켓 썰매를 단 1초 만에 세우는 엄청난 실험을 감행했던 존 폴스텝 등 상상을 초월하는 용자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그중 오늘 네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은 저 멀리 남아메리카 페루의 다니엘 카리온(1857~1885)이라는 사람이야. 생몰 연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불과 스물여덟의 나이로 죽었는데 사망 당시 의과대학 학생이었어.

페루는 잉카문명의 중심지였던 곳이야.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나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등이 페루에 있지.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던 잉카제국은 1532년 스페인의 돼지치기 출신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끈 스페인군 168명에 의해 멸망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안데스 고산지대를 행군해서 잉카제국으로 들어왔는데, 그 일행은 행군 와중에 듣도 보도 못한 병에 시달리게 돼. “온몸과 얼굴에 뭔가 돋아났다. 처음에는 사마귀처럼 보였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것은 점점 커져 무화과같이 변했다. 크기도 모양도 꼭 무화과 같았다. 피부에 매달려 흔들거렸고, 피와 체액을 분비하였다. 촉감이 아주 민감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다(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의 기록).” 피부에 무화과 같은 사마귀가 돋아나고 거기서 피가 쏟아지고 엄청난 고통을 겪다가 죽어가는 이 병은 ‘페루 사마귀병’이라고 불리면서 수백 년 동안 페루 사람들을 괴롭혔단다.

다니엘 카리온이 살던 시절의 페루는 안팎으로 형편이 매우 좋지 않았어. 아타카마 사막의 초석(비료와 화약의 원료가 됨)을 둘러싸고 칠레와 전쟁을 벌였지만 완패하고 수도 리마까지 함락되는 치욕을 겪었거든. 또 안데스산맥을 가로지르는 철도 건설 과정에서 노동자들 수천 명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열병으로 쓰러져 죽는 괴변도 있었어. 이 철도의 목적지가 ‘라 오로야’였기에 사람들은 이 병을 ‘오로야 열병’이라고 불렀다.

다니엘 카리온은 칠레와의 전쟁에서 페루 군대의 군의관으로 참전했고 4년의 전쟁을 꼬박 치른 뒤 다시 의과대학으로 돌아왔어. 그의 관심은 페루 사마귀병에 집중돼 있었지. 그의 열의는 1885년 페루 자유의학아카데미가 페루 사마귀병의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는 이에게 상을 주겠다고 공표한 뒤 더욱 뜨거워졌어. “페루 사람들의 병은 페루 사람들이 고쳐야 한다.” 페루 사마귀병은 잠복기가 길었고 잠복기의 증상은 곧잘 말라리아나 다른 병과 비슷해 쉽게 오인되곤 했기에 좀처럼 사람들의 추적에 잡히지 않았지.

유의미한 결과 얻은 카리온의 인체 실험

병의 원인부터 오리무중이었어. 나쁜 공기나 물, 심지어 독개구리에서 옮는다는 주장까지 나왔으니까. 다니엘 카리온은 세균을 통해 병이 전파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지. “건강한 사람에게 환자의 사마귀에서 나온 분비물을 접종해볼 필요가 있다.” 맞는 말이지만 도대체 누가 목숨을 걸고 환자의 사마귀에서 뽑은 피를 제 몸 안에 넣는단 말이냐. 카리온은 이 위험천만한 실험에 손을 들었어. “누가 내 몸에 그걸 넣어주세요.” 기절초풍한 동료와 교수들은 극력 만류에 나섰지만 그는 막무가내였어.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야.”

ⓒWikipedia다니엘 카리온(위)은 페루 사마귀병과 오로야 열병의 원인이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연히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 스스로 메스를 들고 환자의 사마귀에서 난 피를 자신의 몸에 넣으려고 자기 몸을 헤집는 카리온을 보다 못한 의사 하나가 나섰지. “내가 주사를 놔주겠네.” 1885년 8월27일 페루 사마귀병 환자의 혈액을 자기 몸에 주입한 의대생 다니엘 카리온은 예후 증상을 꼼꼼히 기록하며 경과를 살피기 시작했어.

3주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점차 이상 증상이 나타났어. 발목 관절에 통증이 나타나고 위장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로부터 이틀 뒤에는 고열이 발생하고 피가 섞인 소변이 나왔다. 20일쯤 지났을 때 팔과 어깨 통증으로 필기가 어려울 지경이 됐지.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어. 병의 초기 증상이 지나가고 사마귀가 돋으면 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보았으니까. 하지만 10월1일 그는 탄식하고 말았어. “짧은 기간에 이렇게 몸이 쇠약해질 수 있단 말인가!”

계속되는 구토와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그는 자신의 병을 진단했다. “오늘까지도 나는 내 증세가 페루 사마귀병이라고 생각했어. 페루 사마귀병 환자의 혈액을 주사했으니 당연했던 거고. 그런데 아니야. 이건 오로야 열병 증상이야. 오로야 열병과 페루 사마귀병이 같은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게 명백해진 거야.” 현격히 다른 증상을 보이므로 이름조차 달랐던 두 병이 사실은 한 원인에 의해 발병하며, 같은 병의 서로 다른 단계였음을 카리온은 스스로의 몸으로 입증해낸 거야. 며칠 뒤인 10월5일 카리온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친구들에게 짤막한 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이제 끝났어.”

젊은 다니엘 카리온의 삶은 그렇게 끝났다. 페루 사마귀병의 치료법을 알아내지도 못했고, 이겨내지도 못했고, 알아낸 것이라고는 오로야 열병과 페루 사마귀병의 원인이 같다는 것뿐이었지만 그의 끝맺음은 지대한 의미의 시작이었어. 카리온의 죽음에 자극받은 페루 의사와 학자들은 이 병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그 비밀을 드러내는 시간을 단축시켰거든. 카리온의 인체실험 자체가 유의미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지. 페루 사마귀병은 인간과 일부 원숭이들만 걸리는 병이어서 쥐나 돼지는 원천적으로 실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거야. 카리온 사망 20년 뒤 페루의 미생물학자 알베르토 바르톤은 환자의 적혈구에서 활동하는 박테리아를 발견했어. 바르토넬라균(Bartonella bacilliformis)이라고 명명된 이 세균은 바로 수백 년 동안 안데스 지역 사람들을 괴롭힌 페루 사마귀병의 원흉이었어.

또 얼마 후에는 타운센드라는 과학자가 이 병을 사람들에게 옮기는 매개체로 포유류의 피를 빠는 모래파리를 지목했어. 이 가설은 자신이 모래파리에게 물려보겠노라고 자원했던 한 영국인 선원 덕분에 사실로 입증됐다고 해. 지금도 안데스 지역에는 페루 사마귀병이 남아 있지만, 사람들은 방충망을 치고 살충제를 뿌리고 항생제를 복용함으로써 전통적인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지. 이 해결책의 시작은 스물여덟 살 젊은이의 목숨을 건 결단이었단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넘어 “내 이웃을 위해 내 몸을 바치겠다”라고 나섰던 한 젊은 의학도, 대학생 다니엘 카리온의 이름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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