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인 제10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 달 뒤 영화의 주인공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굳이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탈상을 하셔야죠.” 누군가 말했다. ‘내 선에서 접으면 그를 기록했다는 의미가 없겠구나.’ 지혜원 감독(51)의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미누〉가 5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무 살에 한국에 와 식당, 봉제공장 등에서 일했고 스탑크랙다운이라는 밴드의 보컬이기도 했던 1세대 이주노동자, 18년을 보낸 한국에서 11년 전 추방당한 미누 씨의 이야기다.

지 감독은 2017년 미누 씨를 처음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이민자 정책을 쏟아낼 때였다.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되었다. 인생의 황금기인 20~30대를 한국에 쏟아내고 간 그가 있었다. 네팔로 찾아간 지 감독을 미누 씨가 굉장히 반겼다. “무대에 섰던 사람이라 잊힌다는 것에 대해, 그것도 끔찍이 아끼던 한국에서 잊히고 있다는 사실을 가슴 아파했다.”

네팔 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 그를 만나며 든 생각이다. 국적이 다른데 경계가 없었다.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불렀고 봉제공장에서 일할 때 사람들의 눈썹에 섬유 먼지가 눈처럼 내려앉은 풍경에 대해 말했다. 학원이나 책에서 배운 언어가 아니어서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어느 날 동영상을 편집하던 그가 지 감독에게 말했다. “저 헛살지 않았다고요.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 종종 그런 말을 뱉었다. “사람이 태어나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면 본인의 90%를 한국에 쏟고 간 사람이다. 그가 할 일도, 친구도 모두 한국에 있었다. 그 기억을 가지고 네팔에 갔는데 한국에서의 인권·문화 운동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지난 삶에 대해 회의하며 방황하는 시간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는 미누 씨는 마치 실향민 같다. 영화를 찍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렵게 한국 비자를 받았지만 인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한국과 자기의 인연은 왜 이렇게 모진지 모르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돌아갔다. 2018년 〈안녕, 미누〉가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2박3일의 체류가 허락됐다. “죽어도 좋아.” 한국을 방문한 그가 말했다. 네팔에 돌아간 뒤에는 지인들에게 이제 힘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기 일주일 전 지 감독과 통화를 했다. 고맙다며 앞으로 네팔의 불가촉천민이 계승하는 고유의 음악을 알릴 계획이라고 했다. 영화는 영화제 당시와 많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기록을 추가했다. 한국 이주노동자의 역사가 30년이 넘었고 미누 씨는 그 1세대다. 그동안 작은 그릇에만 가둬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하면 작품에 대한 평가 뿐 아니라 실제 주인공에 대한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지 감독은 사람들이 미누 씨와 그의 인생에 생채기를 내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사람이 우리 옆에 살았는데 내쫓았다. 그럼 우리는 누구랑 살아야 하나. 대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같이 살 수 있을까 질문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개봉 날인 5월20일은 ‘세계인의 날’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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