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였던 고 문중원씨의 아버지 문군옥씨가 1월7일 아들의 상여 앞에 앉아 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조교사 김 아무개씨(44)가 3월30일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지난해 11월29일 같은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 문중원씨(40)가 숨진 지 3개월여 만이다. 공기업인 한국마사회는 서울과 제주, 부산경남 3곳에서 경마장을 운영한다. 2005년 개장한 이곳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8명이 목숨을 끊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마사회는 경마에 등장하는 모든 말의 소유주였다. 말을 타는 ‘기수’, 기수를 감독하는 ‘조교사’, 말을 훈련시키고 관리하는 ‘마필관리사’ 모두 마사회 직원이었다. 1993년 마사회가 ‘개인 마주제’를 시행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말의 소유권이 개인인 ‘마주’에게 넘어갔다. 마주는 개인사업자 신분인 조교사에게 말 관리를 위탁하게 되었다. 기수 역시 조교사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로 전환되었다. 마필관리사는 조교사 개개인에게 고용될 처지가 되었다. 고용 불안정이 뻔했다.

1993년 당시 마필관리사들이 소속된 노동조합(현 한국노총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은 조교사 개개인에게 고용되길 거부했다. 마사회 직원으로 남길 원했다. 그래서 마사회가 고육지책으로 낸 안이 ‘집단고용’이었다. 과천 서울경마장에 조교사협회를 구성해 마필관리사들의 고용을 협회에 이전시켰다. 그러면서 마사회와 노조는 ‘마필관리사들에게 마사회 기능직에 준하는 대우를 한다’는 제도 전환 합의서를 작성했다. 개인사업자인 기수들도 협회를 구성했다(초기에는 조교사와 기수가 한 협회였다). 이로써 서울경마장 기수들과 마필관리사들은 경주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일종의 기본급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를 ‘부가순위상금’이라고 한다.

ⓒ시사IN 신선영문중원씨는 지난해 11월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2005년 개장 이후 8명 목숨 끊어

2004년 부분 개장, 2005년 전면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은 달랐다. 마사회는 ‘선진 경마 시스템’을 도입한다며 서울에서 실패한 ‘조교사의 마필관리사 개별고용’을 부산에서 관철했다. 기본급인 부가순위상금도 적용하지 않았다. 다들 경쟁성 상금으로 먹고사는 구조가 되었다. 신동원 한국노총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은 기본적인 생계비는 협회에서 뒷받침하는데 부산은 그런 틀 없이 시작했다. 집단고용 체계도 없는 삭막한 직장 문화에서 마필관리사, 기수, 조교사 모두가 무한경쟁에 놓였다.”

이 구조에서 가장 먼저 목숨을 끊은 것은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기수였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이 전면 개장도 하기 전인 2005년 3월, 이명화 기수(26)가 숨졌다. 〈경마문화〉 기사에 따르면, 고인은 “체중을 더 줄여야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해도 내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질책뿐이었다”라고 유서에 썼다. 경마기수는 48㎏ 이하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체중 관리에 실패하면 출전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다.

2010년 3월에는 박진희 기수(28)가 숨졌다. 2008년 16승을 올린 그는 2009년 3승에 그치며 출주 기회가 크게 줄었다. 박진희 기수는 부산경남경마공원의 현실을 고발하는 장문의 유서를 남겼다. “부산경마장은 기수들이 최고 힘들고 불쌍해. 서울·제주만큼 대접도 못 받고. …경쟁이 심한 부산경마장인 만큼 여자 기수로서 견뎌내기가 이제 힘에 부친다.” 감독인 조교사의 폭언도 그를 힘들게 한 것으로 보인다. “혼자 견뎌내고 있는 나를 왜 ‘또라이 같은 X’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건지 모르겠어.”

2011년 11월에는 다단계 고용의 맨 아래에 있는 마필관리사가 숨졌다. 석 장짜리 유서에서 박용석 마필관리사(35)는 열악한 근무 환경을 폭로했다. “(2004년) 입사 이래 5번의 골절, 한 번의 뇌진탕, 수많은 상처들,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하는 관리사 불쌍하지 않습니까?” “…한 달에 많이 서면 12번 당직을 섭니다. 이게 어찌 사람 사는 일입니까. 제 생활은 전혀 없고 어디 교도소에서 사역하는 기분입니다.” 조교사 개인에게 고용된 부산 마필관리사의 임금은 조교사 마음대로였다. 성적이 좋지 않아 조교사가 관리하는 말 수가 줄어들면 마필관리사도 언제든 잘릴 수 있었다. 박용석 마필관리사가 유서에서 희망을 비친 대목이 있다. “관리사 노조원 여러분 힘내십시오. 그래도 이 자그만 목숨 하나하나 바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2008년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에 가입했고 2012년부터 5년간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한 박경근 마필관리사(39)도 2017년 5월 숨졌다. 사망 전날 그가 관리하던 말이 경주 때 앞발을 드는 사고가 일어나 조교사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다. “X 같은 마사회.” 세 줄짜리 유서에서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필관리사 이현준씨(36)도 박경근씨가 숨진 지 두 달 뒤에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없었다.

마필관리사 3명이 숨지고 나서야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2019년부터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들도 조교사 개인이 아닌 ‘협회’에 고용될 수 있었다. 마필관리사 노조가 둘로 쪼개지면서 마필관리사 280명 중 일부(170명)만 협회에 고용되어 있다. 협회 운영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성적이 상위권인 조교사 일부는 협회 가입을 거부했다. 이런 가운데 부산경남경마공원 조성곤 기수가 2019년 7월 숨졌다. 2005년 데뷔 이래 874회 우승, 726회 준우승을 기록해 2018년 부산경남경마공원 ‘영예의 기수’에 오른 그였다.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공개되지 않았다.

“조교사가 되는 것은 모든 마필관리사와 기수들의 꿈이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는 282명, 기수는 34명, 조교사는 32명이다(2019년 12월 기준). 개인사업자인 조교사는 경마라는 스포츠의 감독이다. 마주와 위탁계약을 맺어 말을 데려오고, 마필관리사를 고용해 이 말을 관리하고 훈련시킨다. 말을 탈 선수인 기수와 기승 계약을 체결해 작전 지시를 내린다. 경마장의 ‘소사장’이다. 기수 역시 개인사업자 신분이지만, 감독인 조교사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 일종의 ‘특수고용 노동자’다. 마필관리사와 기수가 각각 8년과 5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 조교사가 되는 것은, 비유하자면 법인택시 기사가 개인택시 면허를 따는 것과 비슷하다. 40세가 넘으면 활동이 쉽지 않은 기수와 달리 조교사는 63세까지 할 수 있다.

면허 딴 지 5년 되도록 마방 받지 못한 이유

2004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기수 일을 시작한 문중원 기수도 조교사를 꿈꿨다. 기수라는 직업에 한계를 느꼈다. 일부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가 이어졌다. 부정 경마나 마주의 요구 등 여러 이유로 경주에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가 내려진다고, 그의 동료들은 말한다. 그게 싫어서 마음대로 말을 타버리면 다음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위험한 말인 줄 알아도 목숨 걸고 타다 보니 몸도 성한 곳이 없었다. 문중원 기수는 2015년 시험을 봐서 조교사 면허를 땄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조교사로 개업하려면 마사회로부터 마방(마구간)을 임대받아야 하는데, 별도로 마사회의 개업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문 기수는 면허를 딴 지 5년이 되어가도록 마방을 받지 못했다.

2019년 마방 개업심사 결과는 문 기수에게 특히 절망을 안긴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조교사 면허를 딴 이가 통과했다. 2017년 면허를 획득한 또 다른 이는 ‘예비 발탁’이라는 전에 없던 제도의 대상이 되었다. 문 기수가 보기에 두 사람은 특정 마사회 간부와 친분이 있는 이들이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는 2012년 조교사 면허를 땄는데도 마방을 받지 못한 마필관리사가 있다. 그보다 먼저 갓 면허를 딴 이들이 심사를 통과한 것에 문 기수는 분노했다. 문 기수는 지난해 11월29일 숨진 채 발견되었다. 석 장짜리 유서에서 그는 “그저 마사회에 밉보이고 높으신 양반하고 친분이 없으면 안 되는 거지 같은 경우”라고 썼다. 문 기수 자신이 ‘마사회에 밉보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다. 그는 2018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경마기수지부에 가입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선 ‘민주노총에 있는 한 마방은 받기 어렵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다.

문 기수의 유족은 고인이 제기한 의혹을 규명하고 기수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며 장례를 미루고 싸웠다. 장례는 사망 102일 만인 3월9일에야 치러졌다. 마사회와 마방 개업심사 제도개선 등 합의를 이룬 뒤였다. 경찰은 마방 개업심사 비리의혹을 조사했다. 문 기수보다 먼저 심사를 통과한 조교사 4명이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었는데, 이 중 한 명인 조교사 김 아무개씨가 3월26일 경찰 조사를 받은 지 4일 만인 3월30일 숨졌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숨진 김 아무개씨는 2015년 조교사 면허를 따고 2018년 마방 개업심사를 통과했다. 지난해 40승을 거둘 만큼 성적이 좋았다. 1998년 제주경마공원에 마필관리사로 입사했고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에 맞춰 이곳으로 왔다. 줄곧 조교사가 꿈이었다. 20년간 마필관리사로 일한 그는 조교사로 빛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3명이 있다. 문중원 기수 역시 조교사가 되려고 “죽기 살기로 준비”하고 “오랜 시간 노력”했던 사람이다. 영국에서 조교사 트레이닝 코스를 이수하고 일본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아홉 살 딸과 일곱 살 아들을 남겼다. 마필관리사로, 기수로 일하며 경마장의 정점인 조교사를 목표로 뛰어온 두 사람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씨는 숨진 김씨에 대해 “너무나 부지런하고 열심히 한 조교사였는데, 저희 애가 죽은 지 6개월도 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어가지고 너무 안타깝고 뭐라 표현을 해야 할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구조적으로 마사회가 그렇게 만든 타살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공기업인 마사회가 너무하지 않나요. 정부에서 감독을 2중, 3중으로 하지 않으면 계속 죽는다고 제가 촛불집회 때도 항상 얘기했습니다. 지금도 유서 써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5, 6명이나 있습니다.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또 죽어요.”

마사회 관계자는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당시에는 좋은 성적을 내야 더 많은 상금을 받도록 설계한 것이 사실이지만, 단계적으로 부산도 서울처럼 경쟁성을 낮추고 있다. 현재 서울과 부산의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필관리사 수입 중 경쟁성 상금의 비율은 서울이 10~15%인 데 비해 부산은 30~ 40%대로 여전히 높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의 한 관계자는 “같은 마방이어도 7~8년 일한 마필관리사가 월 300만원 받는 동안 11년 일한 마필관리사는 월 2500만원을 받는 식이다. 조교사가 임금을 마음대로 주무르니 상대적 박탈감이 크고 모두 웃음을 잃었다”라고 말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의 한 마필관리사는 “서울은 호봉제지만 우리는 그런 것도 없다. 마흔 살이 넘으면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며 임금을 상당히 떨어뜨린다”라고 말했다. 기수의 경우도 출전하지 못하거나 성적이 하위권이면 여전히 소득이 불안정하다.

“자기들과 관계없다는 한국마사회”

마사회는 관리사 급여체계의 경우 조교사 또는 조교사협회가 정하므로 관여하지 않으며, 기수는 개인사업자라는 입장이다. 마사회는 마주뿐 아니라 조교사와 기수, 마필관리사에게 배분할 상금의 비율을 정한다. 기수와 조교사의 면허를 마사회가 교부하고 갱신하며, 조교사에게 마방을 줄지 말지도 마사회 권한이다. 조교사 면허를 땄는데도 마방 개업심사가 따로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마사회 관계자는 “교사자격증이 있다고 임용고시를 안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의 경쟁성이 높아 사람이 죽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살이란 여러 원인이 복합되어 일어난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성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마는 순위가 확실히 나오는데, 일반 사무직처럼 경쟁성 없이 가고 싶다는 요구는 맞지 않다.”

최근 5년 내 경영 실적이 가장 저조하다는 마사회의 2018년 매출은 7조5754억원(영업이익 1411억원, 당기순이익 1828억원)이다. 2018년 결산 기준 마사회 일반 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9209만원에 달한다(평균 근속연수 17.17년). 이들은 기수와 마필관리사, 조교사만큼의 임금 경쟁과 고용불안에 노출되어본 적이 없다. 마사회는 제도를 개선해왔다지만, 오히려 부산경남경마공원의 시스템을 서울과 제주에도 확산시키려 시도해왔다.

경마장에서 일어난 연이은 죽음은 일견 특수해 보인다. 김혜진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문제가 보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건 특수고용 문제다. 아무리 전문적인 직업이라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을 때 어떤 식으로 권리가 박탈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기수들의 죽음이다. 또, 폐쇄적인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문제다. 마사회가 정유라에게 마방을 빌려준 조직이다. 그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자살 문제다. 노동자들이 죽는 것은 개인이 마사회에 맞서 싸울 힘이 없을 뿐 아니라 문제 해결 통로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기수들의 종속성을 문제 삼으며 노동조합 설립신고필증 교부를 미루고 있다. 기수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기수와 조교사의 면허 발부와 갱신, 마방 임대 등 구성원의 생사여탈권을 마사회가 전부 쥐고 있는데, 여기에 사회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

ⓒ시사IN 신선영부산경남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들이 경주마를 훈련시키는 모습.

4월8일 ‘마사회 적폐 청산을 위한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씨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질 때마다 마사회 관계자들은 법적 책임이 확인되지 않았고 자기들과 관계없는 개인사업자라 하며 숨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국가 공기업 한국마사회는 권력을 분산하고, 사회적 감시·개입 구조를 받아들이고 마사회 관련 말단 종사자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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