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민생 타격이 본격화되자 정치권에서 떠오른 주제가 재난기본소득이다. 처음에는 몇몇 지자체 단체장의 정치적 제안 정도로 여겨졌건만 정부·여당도 보편 지급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조만간 온 국민이 받는 재난지원금이 구현될 전망이다.
논의 진전이 빠르다. 총선 국면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선별 방식은 긴급성이 떨어지고 피해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보편 지급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를 두고 누구는 비로소 국가의 존재 이유를 확인했다 하고, 또 누구는 이제 ‘기본소득’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질문은 남는다.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 지금 재난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괜찮아지는 건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재난이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재난에 대한 대응력은 계층별로 확연히 다르다. 당장 하루 이틀 생계가 막막한 사람도 있고, 다음 달이 불안한 사람도 있고, 당분간 견딜 만한 사람도 있다. 물론 아예 재난에 개의치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보편적으로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더라도 사실상 생계가 끊긴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방과후 강사, 학습지 노동자, 공연예술인 등 일감이 거의 사라진 개인사업자, 매출이 급감한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받더라도 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정부안처럼 4인 가구에 100만원을 지급하면 1인당 25만원에 불과하고, 혹여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더라도 한 번에 50조원이 소요되는 일이라 반복 시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난에 대응하는 소득 지원은 두 대책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는 상당수 국민에게 긴급히 일정한 금액을 지원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주도한 대책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향으로 갈 듯하다. 보편적으로 지급하고 연말정산에서 일부 환수하는 방식이면 적절할 것이다.
또 하나는 피해가 집중된 자영업자,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다. 노동시장에서 이러한 과제에 대응하는 제도가 고용보험이다. 실업을 당하면 실업급여를 제공하고(월 약 180만원), 휴업으로 휴직을 당하면 평균임금의 70%를 휴업수당으로 지급한다. 그런데 모두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건 아니다. 현재 경제활동인구 약 2800만명 중에서 고용보험 가입자는 약 1400만명에 불과하다. 거의 절반이 고용보험 밖에 있는 셈이다. 이들은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 노동자, 시간제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우리 사회 불안정 영세 취업자들이다.
지금까지 전체 국민 대상의 재난기본소득 논의가 강하게 부상하면서 정작 재난 피해 대상을 위한 맞춤형(선별) 대책 논의는 부차화돼버렸다. 정부가 뒤늦게 불안정 노동자, 영세 사업장 지원 대책을 마련했으나 여전히 빈약하다. 소규모 사업장의 무급휴직 12만명, 특수고용 노동자 14만명에게 월 최대 50만원씩 2개월간 지급하는 방안으로 소요 예산이 총 2346억원에 불과하다.
취약계층에게 월 100만원 ‘실업부조’ 지급하자
이제 재난지원금 논의는 정리되는 국면이니, 앞으로는 피해 계층 지원에 온 힘을 쏟자. 생업이 끊겨 사실상 실업 상태이지만 고용보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개인사업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등에게 최소 월 100만원의 ‘실업부조’를 지급하자. 매출이 크게 준 자영업자, 5인 미만 사업장이라 휴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영세기업 노동자에게는 ‘재난보전수당’을 제공하자. 매출 및 수입 감소 자료만 간략히 제시하면 신속히 지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위해선 최종 안전판도 필요하다. 현재 소득과 재산을 따지는 긴급복지지원제도를 당분간 ‘긴급생계119’로 운영하자. 일단 도움을 신청하면 간단한 상담 과정만 거친 후 조건 없이 생계비를 지원하고 사후 심사하는 거다. 119 앰뷸런스가 출동할 때 조건을 따지지 않듯이 말이다.
보편적 재난지원금 논의가 마무리되는 만큼 이제는 피해 대상 맞춤형 선별 대책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 가장 곤경에 처한 사람부터 구하는 건 재난 구제의 상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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