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4월6일 코로나19 백악관 태스크포스의 언론 브리핑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4월9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43만여 명이고, 사망자는 1만4000명을 넘어섰다. 연방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4월 말까지 연장되었다. 동부의 바이러스 확산 중심지인 뉴욕시 등 미국 전역에서 일일 확진자 증가세가 주춤하는 형국이긴 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핵심 참모들의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언행이 계속되면서, 연방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에 맞서 ‘전시 대통령’임을 자처했다. 객관적 사실보다는 직감 위주의 언행을 일삼으면서 영웅적인 전시 대통령은커녕 쓴소리만 듣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본격 확산 이전에는 “단지 유행성 독감일 뿐”이라며 “잘 통제되고 있고,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확진자가 급증하자 “말라리아 치료제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라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는 낭설을 퍼뜨렸다. 하루 사망자가 1997명을 기록한 4월8일에도 그는 터무니없는 희망사항을 피력했다. “터널 끝에 빛이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서도 혼란을 자초했다. 당초 그는 부활절인 4월12일 전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도록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면 사망자가 20만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보건 당국이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며칠 만에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4월2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코로나19 TF 조정관인 데보라 벅스 박사와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벅스 박사가 “너무 많은 미국인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우려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대뜸 면박을 준 것이다. “미국에서도 여러 주에서 확진세가 완전히 주춤해진 건 왜 언급하지 않나?”

보건 당국의 지시 무시하는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또 코로나19의 최고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과 충돌하기도 했다. 파우치 소장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해왔다. 현재 30여 개 주에서 시행 중인 자택대기 조치를 50개 주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뉴욕·캘리포니아·미시간 등 일부 주에서만 확진자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인다며 연방 차원의 자택대기 조치를 거부했다. 그러다 보니 플로리다주의 경우 확진자가 5000명에 이른 뒤 나흘마다 2배씩 늘어나는 상황이다.

마스크 사용과 관련한 지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실언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3일 전 국민이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외출 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새로운 지침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권장사항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 자신은 쓰지 않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CDC 지침이 발표된 뒤에도 대통령을 비롯해 텔레비전에 비친 주요 각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보건 당국의 지침을 대통령부터 무시하다 보니 일반 국민에게 먹혀들 리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까지 혼란을 부추겼다. 뉴욕주 등 미국 여러 주의 병원들은 의료용 마스크, 인공호흡기 등 의료장비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다. 연방정부의 비축분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근거가 있다. 연방 보건부의 웹사이트에 “긴급상황 시 주정부 요청을 받아들여 의약품과 의료장비를 충분히 공급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쿠슈너 선임고문은 “연방정부 비축분은 주정부의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욱 황당한 일은, 보건부가 웹사이트의 관련 문구를 그의 발언에 맞춰 수정해버린 것이다.

이런 정부를 시민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힘들다. CNN이 4월8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52%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대처 능력에 부정 반응을 나타냈다(3월 초 조사보다 4%포인트 부정 응답이 늘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전반의 대처 능력에 대해서도 55%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한 달 전보다 무려 12%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수전 라이스는 4월7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요한 지난 두 달을 고스란히 허비했다. 본인 스스로 자임한 ‘전시 대통령’으로서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건 당국자들의 말을 뒤집어 미국 전역에 자택대기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의료인력과 장비의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19 앞에서 스스로 방어해야 하는 척박한 정글 상태로 접어들었다.”

최근 언론의 관심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간헐적으로 던지는 ‘경제활동 재개’ 관련 메시지다. 대통령 선거가 오는 11월에 치러진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시민들의 경제활동이 재개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개인적 희망사항일 뿐인 메시지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제시하고 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피크가 오고, 이후 감염자 수가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6월1일까지는 모든 상황이 아주 좋아질 거다.” 대통령이 ‘6월1일’이라는 구체적 시일까지 지정한 만큼 미국 행정부가 무리한 조치를 강행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맞장구를 쳤다. “앞으로 4~8주 안에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 백악관은 일단 피해가 크지 않은 각 주의 소규모 도시와 마을부터 경제활동을 재개한다는 구체적 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CDC 당국자들은 최근 전국적으로 확진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재발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신속한 경제활동 재개 방침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코로나19 TF 핵심 멤버인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폭스뉴스〉에 “4월8일 저녁 늦게 백악관에서 경제활동 재개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시기상조이며 경계심을 늦출 때가 아니라는 게 나의 견해이다”라고 밝혔다. 경제활동 재개 문제로 백악관과 주기적으로 소통한다는 보수 성향 경제학자인 스티븐 무어 역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사항에 대해 비판적 의사를 밝혔다.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최악은 5월부터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것이다. 그 경우 다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미국 경제 전반의 셧다운이 불가피하게 될 수도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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