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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연장 제작공이었다. 어머니는 간호사였지만 젊은 시절부터 중증 자가면역질환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임종 직전, 병상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네 아버지도 ‘민간병원’으로는 모시지 않도록 해.” 4월4일, 영국 노동당 대표 경선에서 56.2%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키어 스타머(58)의 어머니는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총선에서 스타머가 하원의원으로 첫 선출된 직후였다. 그의 부모는 둘 다 강고한 노동당원이다. 영국의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인 국가보건시스템(NHS)을 자랑스러워했다. 비록 아들이 성공한 법조인에 정치인이었지만, 부자들이나 가는, NHS 체계 밖의 민간병원에는 생명을 맡기려 들지 않았다.

키어라는 이름은, 노동당이 처음으로 배출한 의원인 키어 하디(1856~1915)로부터 따왔다. 그는 10대 학생 시절부터 지역의 ‘젊은 사회주의자’ 그룹을 주도했다. 법률대학원을 졸업한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마거릿 대처 시대에는 ‘운동권 변호사’이자 월간 〈사회주의 대안〉의 편집자로 활동했다. 투쟁 현장에 ‘법조계의 십자군’으로 불리던 그가 있었다. 글로벌 미디어 거물인 루퍼트 머독과 영국 인쇄노동자들의 충돌, 대처의 무자비한 광산노조 탄압, 영국 첩보기관인 MI5 내부고발자 사건 등이다. 스타머가 맥도널드로부터 고소당한 환경운동가들을 변론하는 과정은 영화감독 켄 로치에 의해 다큐멘터리 〈맥리벨:McLibel〉로 기록되었다.

과격한 운동권 변호사는 2000년대 중반 제도권으로 들어간다. 유력 시사지 〈뉴스테이츠먼〉에 따르면, 북아일랜드의 경찰위원회 자문관으로 일하면서 “(사회변혁에서) 국가에 대항해 싸우기보다 국가와 함께 일하는 것의 가치를 배웠다”. 노동당 고든 브라운 총리 당시인 2008년에는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면서 이전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법규와 어긋난 집회·시위를 처벌하고, 과잉 진압으로 인명을 해친 경찰관은 기소하지 않았다. 스타머는 ‘사회주의적 법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노동당에 흔한, 출세한 계급 배신자’라는 비난도 듣는다.

2013년, 검찰총장에서 퇴임한 그를 에드 밀리밴드 당시 노동당 대표가 발탁했다. 세상을 아는 ‘온건 좌파’라는 점이 매력이었을 터이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노동당의 참패로 제러미 코빈 당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자 스타머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스타머는 블레어파(시장자유주의를 중시하는 ‘제3의 길’ 노선)와 중도 좌파는 물론이고 코빈파(급진 좌파)의 지지까지 얻어냈다. 코빈에 대한 충성심과 그 핵심 정책(주요 인프라 국유화, 공공투자, 긴축 반대 등)의 유지를 표명했다. 단지 선거용으로 사회주의자 행세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스타머는 “나는 사회주의자다. 나를 추동하는 것은, 소득·부·건강·영향력 등 모든 측면에서 이 나라에 깊숙이 뿌리내린 불평등”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보리스 존슨 정부의 파격적 재정정책에도 그의 압박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스타머의 슬로건은 “또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였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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