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대출 기간 15일. 어느새 기한이 돌아온다. 그제야 허둥지둥 책장을 넘겨봐야 이미 늦었다.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책을 끌어안고 반납하러 간다. 쿵, 반납기 안으로 책이 떨어질 때 덩달아 쿵, 이런 생각에 마음을 찧는다. 진작 안 읽고 뭐 했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시간이 많은 줄 알았어?

청춘 혹은 젊음이라 부르는 시간도 그렇게 놓쳐버린 나다. 마냥 내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빌려 쓴 시간이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만기일은 다가왔고, 몇 페이지 넘겨보지도 못한 생의 한철을 반납기에 넣고 돌아섰다. 재대출 금지. 다시는 손에 쥘 수 없는 그때. 이제 다른 사람 차지가 된 그 시간을 곁눈질한다. 청춘의 이야기에 자꾸 눈길이 간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딱 3편의 영화를 볼 짬이 났을 때, 이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를 가장 먼저 고른 이유다.

“나는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9월이 돼도 10월이 돼도 다음 계절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혼잣말하는 주인공 나(에모토 다스쿠)의 뒷모습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오늘도 어제처럼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 밤거리를 건들건들 걸어가는 그에게도 아직 청춘의 기한은 멀게만 느껴진다.

방치해둔 여름의 첫 장이 갑자기 넘어간 건 어느 밤, 직장 동료 사치코(이사바시 시즈카)가 스쳐 지나가면서다. 퇴근길에 자신의 손등을 나의 팔꿈치에 살짝 댔다 떼고 사라진 여자. 어? 방금 그거 뭐지? 의아해하며 잠시 서성이던 남자는 혼자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여자를 기다리는 건 처음이었다. 내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 120을 셀 때까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거칠고 솔직하고 세련된

115, 116, 117… 거기까지 셌을 때 여자가 뛰어온다. 그리고 말한다. “다행이다. 마음이 통했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연애. 나의 룸메이트 시즈오(소메타니 쇼타)가 합세하면서 2인3각 달리기처럼 즐겁게, 싱그럽게, 하지만 불안하게 질주하는 세 사람의 여름. 마냥 예쁘게만 포장된 여느 일본 청춘영화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이 영화. 거칠고 솔직하고 세련됐다. 나는 감히 “일본 영화의 미래를 보았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토리 세대의 〈몽상가들〉’이라고 불러도 될까? 1968년의 해방감은 없이, 돈 많은 부모도 없이, 파트타임 일자리로 비싼 집세를 감당하며 버티는 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쿵, 청춘의 모서리에 마음을 찧는 순간들의 빌어먹을 아름다움. 그걸 연기해내는 모든 배우가 반짝이는 106분.

좋은 영화는,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을 통해 ‘내가 겪어봤던 삶의 한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재대출 금지. 다시는 손에 쥘 수 없는 그때를 잠시나마 손끝으로 만져보게 해준다. 바로 이 영화처럼. 영화 속 그해 여름처럼.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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