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월25일 역학조사관들이 신천지예수교회 부속기관에 대한 강제 역학조사를 실시하려 하고 있다.

틈만 나면 코로나19 관련 속보를 듣다 보니 귀에 익은 말이 많다. ‘역학조사’라는 말도 그중의 하나일 거다. 이 역학(疫學)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역학(力學)과는 완전히 다른 의학의 한 분야로, 전염병의 원인과 전염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야. 역학조사는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특정 질병이나 전염병의 발생 양상, 전파 경로, 원인 등을 밝히는 것을 말하지. 누군가 전염병이 걸렸을 때 누구에게 옮았는지, 어떤 행동을 통해 감염됐는지, 어느 지역에서 발생했는지를 검토해서 병의 원인과 성격, 예방법을 규명하는 작업이야.

3월25일자 〈조선일보〉는 “신종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역학조사 분석 시간이 종전 24시간에서 10분 이내로 줄어들 전망이다. 역학조사관의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위치정보와 신용카드 사용내역 파악 업무가 자동화 시스템으로 통합되는 데 따른 것이다”라고 보도했어. 이런 신속한 역학조사는 병을 물리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오늘은 이 역학조사의 개척자로 인류와 전염병의 전쟁사에서 중대한 기여를 한 공로자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그는 존 스노(1813~1858)라는 영국인이야.

존 스노가 살았던 19세기는 가히 ‘영국의 시대’였단다. 그가 두 살 때 워털루 전투가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 영국을 위협하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완전히 몰락했어. 이후 영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했지. 영국 국기 유니언잭은 여섯 대륙 모두에서 거침없이 휘날렸다. 그 영광의 깃발에 슬쩍 올라타고 ‘세계화’에 나선 반갑잖은 존재가 있었어. 바로 무서운 전염병, 콜레라였지.

콜레라는 원래 인도 지역의 풍토병이었어. 즉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 공포의 질병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지. 콜레라는 ‘세계 제국’ 영국의 군대와 민간인들의 발걸음을 따라 인도를 벗어났고, 지금껏 이런 종류의 병을 듣도 보도 못했던 이들을 인정사정없이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콜레라의 증상은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어.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폭포수 같은 설사를 하고 몸의 수분을 깡그리 배출해 푸르딩딩해진 얼굴로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렸으니 그야말로 괴질(怪疾)이었지.

콜레라는 유럽에 상륙하기 전 뱃길로 중국에 먼저 들어왔다가 1821년 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휩쓸게 돼. 순조 21년 8월13일 실록에 쓰인 평안 감사의 보고에는 콜레라를 처음 목도한 사람들의 공포가 선연히 묻어 있다. “평양부(平壤府)의 성 안팎에 지난달 그믐 사이에 갑자기 괴질이 유행하여 토사(구토와 설사)와 관격(근육이 비틀어짐)을 앓아 잠깐 사이에 사망한 사람이 10일 동안에 자그마치 100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몇 년 뒤 콜레라는 러시아부터 영국까지 유럽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되는데 당시 영국 신문의 묘사는 일종의 괴기 문학으로 읽힌다. “생명의 메커니즘이 갑자기 억제되고, 장액이 급속하게 빠져나간 육체는 축축하게 시든 살덩어리로 바뀌는데 (···) 그 안의 마음은 손상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빛내며 기묘하게 밖을 내다보고, 꺼지지 않는 생생한 빛을 내며, 영혼은 시체 속에 갇힌 채 공포에 질려 밖을 본다(스티븐 존슨, 〈감염지도〉).”

ⓒWikipedia콜레라가 물을 통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영국의 마취과 의사 존 스노.

미신이 아닌 과학으로 전염병 확산 막아

존 스노는 1813년생이야. 그가 십 대의 수련의였던 1831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콜레라가 발생했다. 콜레라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쓰러뜨린 뒤 홀연 사라졌다가 불쑥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어. 그때마다 존 스노는 콜레라의 발병과 확산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았지. 그 결과 그는 당시의 상식, 즉 유기체 같은 것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나쁜 공기(miasma)’ 때문에 콜레라가 발생한다는 생각에 의구심을 품게 돼. ‘나쁜 공기’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콜레라로 쓰러졌단 말이지.

콜레라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별도로 그는 유명한 마취 전문가였어. 막 개발되기 시작한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사용해 환자를 마취시키는 독보적인 기술로 다산(多産)으로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의 무통(無痛)분만을 성공시킨 영국 최고의 마취과 의사였다. 그는 마취 연구를 위해 클로로포름에 코를 대고 살면서도 항상 콜레라를 생각했어. “나쁜 공기 때문에 콜레라가 발생한다고? 나쁜 공기라면 폐나 혈관이 문제지 왜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기냐고.”

1848년의 영국인 수만 명을 천국으로 보낸 콜레라 2차 유행 때, 존 스노는 열정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태도로 콜레라 환자들을 추적했고 첫 번째 희생자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어. 이른바 역학조사의 시초였다고나 할까. 누가 병에 걸렸는가? 그가 병에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병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존 스노가 지녔던 의문은 바로 오늘날 우리 질병관리본부가 진행하고 있는 역학조사의 얼개와 같단다. 그가 세운 가설은 “공기가 아닌 위생의 문제이고 주로 물을 통해 전염이 확대된다”였어. 그는 마치 범인을 잡는 셜록 홈스처럼 낮에는 마취과 의사로 일하고 밤에는 런던의 빈민가를 누비면서 콜레라 환자들을 추적하게 된다. 1854년 3차 콜레라 대유행이 런던을 덮쳤을 때 존 스노는 최초 발병자의 집 정화조가 한 펌프의 저수조와 맞닿아 있고, 이 물을 마신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쓰러졌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돼. 존 스노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마침내 그 펌프를 폐쇄했어. 1854년 9월8일의 일이었지.

1854년 런던 콜레라 대유행을 배경으로 한, 데보라 홉킨슨의 실화소설 〈살아남은 여름 1854〉에는 이 역사적인 날, 존 스노 박사가 자신을 도운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날을 꼭 기억하거라. 미신이 아닌 과학으로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는 역사적인 날이 될 테니까. 우리 살아생전에 못 볼 수도 있고 그때쯤엔 내 이름 같은 것도 잊히겠지만 콜레라라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옛날이야기가 될 날이 꼭 올 거다.” 자신을 도왔던 화이트헤드 목사 등과 함께 펌프를 폐쇄하던 날 존 스노는 실제로 위와 같이 말했을 것 같구나.

비록 그 뒤로도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존 스노의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콜레라 세균이 발견된 뒤에도 세균 배양액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세균 같은 건 없어!”라고 부르짖었던 페텐코퍼 같은 과학자도 있었지(신기하게도 그는 무사했다). 존 스노의 수십 년 노력은 콜레라와 인류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는 영국 최고의 마취과 의사로서 여왕의 시의(侍醫)까지 역임한 사람이었어. 위생에 취약한 하층계급을 특히 위협했던 콜레라에 매달려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었지. 그러나 당시의 다른 의사들과 달리 노동자의 아들로 자란 그는 자신의 이웃이라 할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가는 모습을 외면하지 못했던 거야. 스노의 친구였던 벤저민 리처드슨의 증언. “그가 어떤 비용을 치르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와 친밀한 사람이 아니면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감염지도〉).”

소설 〈살아남은 여름 1854〉에서 존 스노는 자신의 이름이 잊히더라도 상관없다고 얘기했지만 그럴 리는 없을 거야. 2013년 3월 미국 의학협회가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이런 헌사를 바치거든. “당신이 태어난 지 200년입니다만 당신은 여전히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인명을 구한 당신께 모두가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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