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nhua4월3일 캐나다 토론토의 한 코스트코 매장 앞에 시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캐나다에서 보기에는 그랬다. 한국 언론이 코로나19 확진자의 숫자와 동선 등을 다급하게 전할 때만 해도 이 감염병은 말 그대로 먼 나라 남의 일인 것 같았다. 중국 우한이 봉쇄되고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도 코로나19가 이렇게 무서운 병인 줄은 몰랐다. 캐나다가 느긋해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줄 알았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중국 바깥에서는 가장 많은 사망자(44명)가 발생한 나라여서 이런 종류의 감염병을 잘 알고 대비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방역 당국에서는 “마스크를 낄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4월8일 현재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는데 구하기가 어렵다). 손 씻기로도 예방은 가능하다고 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감염은 쉽게 될지 몰라도 목숨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오히려 공포가 퍼져 사회적 패닉이 벌어지는 것이 감염병 자체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고 걱정했다.

춘절에 고향을 다녀온 중국 사람들이 2주 동안 자가격리를 자발적으로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저럴 필요까지 있나’ 하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캐나다에 병을 옮기지 않겠다는 의지는 본국에서 본 위험한 상황 때문에 생긴 것 같았다. 3월 초까지 모국을 다녀온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한결같이 말했다. “토론토 공항에서 제대로 검사도 하지 않는다. 이거 뭔가 좀 수상하다.”

한국에서 마스크 대란이 벌어져 약국 앞에서 몇 시간이고 줄을 서는 풍경을 보면서도 호들갑 떠는 줄로만 알았다. 중국 우한이 봉쇄되거나 말거나, 한국 대구에서 신천지가 터지거나 말거나 캐나다의 일상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와 이란에서 확진자가 급증해도 생활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 같은 자영업자들의 가게 매출이 떨어지기는 했어도 사회적으로 크게 긴장하거나 조심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마치 대형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 3월11일(현지 시각)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모든 것이 삽시간에 달라졌다. 초중고교의 일주일 봄방학은 3주로 연장되었다(지금은 온라인 수업 중이다). 유럽이 전쟁터로 변하고 미국에서 지옥의 문이 열리자 캐나다에도 확진자가 느닷없이 폭증했다. 하루 수십 명을 넘어 이제는 수백 명씩 확진자가 늘어났다. 어느새 1만명을 넘어섰다(4월8일 현재 캐나다 확진자는 1만7900여 명). 순식간에 한국을 앞질렀다.

팬데믹이 선언된 지 일주일 만에 캐나다 시민들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고열이 나는 사람을 얼음물에 풍덩 빠뜨린 느낌이랄까. 지금 기분이 바로 그렇다. 하루아침에 도시 자체가 록다운 되었다. 식료품점과 약국 등 꼭 필요한 곳만 빼고 나머지 모든 가게는 문을 닫게 했다. 직장인들도 가능하면 집에서 일을 하라고 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토론토시는 하루가 다르게 강도 높은 조처를 경쟁하듯이 내놓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시민들을 향해 “제발 집에 있으라”고 명령조로 호소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만큼 환자가 폭증해 의료체계가 무너지면 유럽이나 미국처럼 걷잡을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가버렸으며 공항을 통한 외국인 입국도 원천 봉쇄했다.

시민들한테는 주말뿐 아니라 주중에도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약국이나 은행, 식품점에 간다 해도 2m 거리를 두고 줄을 서야 한다. 록다운의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화되었다. 4월8일 현재 토론토 시민들은 유럽 같은 정도는 아니어도 거의 감금 상태에 있다고 보면 된다. 산책 정도만 허용할 뿐이다. 5명 이상이 만나는 모임 금지, 한집에 사는 가족 아닌 사람과 만날 때는 2m 거리 유지 등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규제가 쏟아져 나온다. 4월 첫 주말 토론토 옆 도시 미시사가에서는 경찰이 집중단속을 펼쳐 316건에 대해 범칙금을 물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1인당 750캐나다달러(약 66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었다. 이런 위반은 봐주는 일이 없다. 가차 없이 벌금을 매긴다.

ⓒAFP PHOTO4월5일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는 트뤼도 캐나다 총리.

4개월 동안 매월 175만원 지원

도시를 말 그대로 잠가버리다 보니, 실업자가 속출하고 나 같은 자영업자들도 벌이가 전혀 없다. 2주 전 트뤼도 총리는 “지원을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약속한 지 2주일 만에 연방정부는 긴급지원 프로그램(CERB)을 발표하고 4월6일부터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 5000캐나다달러(약 440만원) 이상의 근로소득자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벌이가 없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실직자든 자영업자든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4개월 동안 한 달에 2000캐나다달러(약 175만원)를 지원해준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자격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고 모든 신청자에게 일단 지급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은 나중에 가려내 돌려받겠다고 했다. 자격요건 따지다가 타이밍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신속성. 발표 2주 만에 시행되었다. 그사이에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얼마나 발 빠르게 움직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 번째는 신청의 용이함. 연방정부에 전화해서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SIN 번호와 생년만 넣으면 끝난다.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파격적인 지원에다 신청하기도 쉽다 보니, 첫날 신청자만 80만명에 달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이 밖에도 소소한 것들이 여럿이다. 은행에서 받은 주택 대출금(모기지)도 신청을 하면 심사해서 6개월 뒤에 갚아나갈 수 있도록 했고 재산세와 공과금 또한 납부를 연기해주었다. 자동차보험이나 자동차 할부금도 경우에 따라 납부를 유예할 수 있다. 시민들을 감금하는 강력한 강공책을 펴는 동시에, 정부로서 할 수 있는 지원책을 찾아 최대한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경제활동은커녕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집콕 생활’을 한 달 가까이 하는 중이다. 애초에 가졌던 불안감은 많이 해소되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는 있지만 정부 차원의 발 빠른 대처로 ‘굶지는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갖는 정도가 되었다. 병원비가 무료라는 것도 든든하고, 일단 최대한 빠르게 지원하는 정부 정책에 심리적으로 큰 위안을 받는다.

평소 캐나다는 모든 것이 느려서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캐나다의 전광석화 같은 신속함이 빛을 발한다. 지원 대상이나 규모를 두고 정쟁을 벌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연방의회는 연방총리가 권한을 더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전격적으로 법을 개정했다. 행정부를 지원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힘을 합쳐도 이겨내기가 힘겨운 싸움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토론토·성우제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sungwo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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