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제목이다. ‘퓨처 노스탤지어(Future Nostalgia).’ 흔할 말로 하면 ‘뉴트로’, 우리 식으로 바꿔 표현하면 ‘오래된 미래’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퓨처 노스탤지어〉에서 두아 리파가 겨냥하는 장르 과녁은 명확하다. 디스코다. 선공개되어 이미 크게 히트 친 ‘돈트 스타트 나우(Don’t Start Now)’만 들어봐도 이 앨범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이상향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뭐로 보나 근사한 앨범이다. 디스코를 질료 삼아 미래 지향적인 뉘앙스를 선명하게 길어냈다. 이런 측면에서 〈퓨처 노스탤지어〉는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2013년 걸작 〈랜덤 액세스 메모리즈(Random Access Memories)〉 이후 최고 수준의 ‘디스코 소환작’이라 결론지을 만하다. 흔한 수식으로 세련미가 ‘끝장’난다.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처진다거나 구린 순간이라고는 없다. 전곡에 걸쳐 ‘엣지’와 ‘쿨’을 제대로 살렸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소포모어 징크스를 걱정하게 한 거냐고 두아 리파에게 되묻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첫 곡인 ‘퓨처 노스탤지어’부터 자신감이 넘친다. 디스코 리듬을 타고 활강하듯 다음의 가사를 노래하는데,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너는 시대를 초월한 노래를 원하지/ 내가 바로 게임 체인저가 될 거야/ 존 로트너가 디자인한 건축물처럼/ 이 비트를 좋아할 거라는 거 알아/ 볼륨을 키우고 싶겠지/ 내 이름은 퓨처 노스탤지어.”
이후에는 러닝타임을 봐야 한다. 4분이 넘는 곡이라고는 ‘러브 어게인(Love Again)’ 딱 하나뿐이다. 이를테면 디스코의 최적화다. 기실 과거의 디스코는 대개 러닝타임이 길었다. 단순 반복하는 비트가 생명이었던 까닭이다. ‘퓨처 노스탤지어’에서 선언한 것처럼 두아 리파는 이걸 현대적으로 맵시 있게 다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뭐랄까. 역설이지만 ‘화려하게 간소한’ 작품이다. 미니멀을 지향하는데 만듦새는 쾌적하고 입체적이라고 할까. 디스코로 번쩍거리는 와중에도 전곡의 핵심이 가득 차 있다. 정확하게 충만하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걸고 쓴 노래”
별로인 곡이 하나도 없다. 흠결을 찾아내려 세 번을 반복해 감상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돈트 스타트 나우(Don’t Start Now)’ ‘쿨(Cool)’ ‘피지컬 (Physical)’, 세 곡이 연이어 빼어난 나머지 “이젠 좀 빠지는 곡 나오겠지” 싶었는데 ‘레비테이팅(Levitating)’으로 기어를 쭉 다시 올린다. 곡 주인공은 사랑에 빠져 공중 부양한다는데, 듣는 내가 황홀함에 빠져 공중에 뜰 것 같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두아 리파는 디스코를 장르적으로 착취한 게 아니다. 그는 뇌관을 제거한 노스탤지어라는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 다름 아닌 메시지가 이를 증명한다. 두아 리파는 1집 수록곡, 예를 들면 ‘IDGAF’에서 “나는 너 1도 신경 안 써”라며 독립적인 자아를 선포한 바 있다. 여성의 연대를 독려하는 노랫말로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뉴 룰스(New Rules)’도 마찬가지다.
2집에서도 이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대미를 장식하는 ‘보이즈 윌 비 보이즈(Boys Will Be Boys)’가 대표한다. 가사 해석은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두아 리파의 인터뷰로 대신한다. “정류장에서 집까지 3분에 불과한 그 길이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중략)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쓴 게 아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걸고 쓴 노래다. 이 곡이 대화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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