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씻으라!” 위대한 진리의 발견
  • 김형민(SBS CNBC PD)
  • 호수 656
  • 승인 2020.04.1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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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년 전만 해도 손 씻기가 위생에 좋다는 건 상식이 아니었다. 손 씻기를 선구적으로 주장했던 의사 제멜바이스는 산욕열 증상을 살펴보다가 손 씻기의 중요성을 발견했지만, 의사들의 비난 속에 그는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AFP PHOTO산과 의사였던 제멜바이스는 1800년대에 손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멈출 줄을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31일 이탈리아는 전국에 조기를 게양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고 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산타 마르첼로 알 코르소 성당을 방문해 기도를 올렸다. 1522년 이탈리아 곳곳에 역병이 창궐했을 때 도시를 순회하면서 역병을 퇴치했다는 ‘기적의 십자가’가 전해지는 곳이지. 간만에 찾아온 행성의 위기라 할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인류는 조상들을 덮쳤던 질병의 역사와 투쟁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어.

병(病)이란 생명이 겪어야 할 필연적인 고통이야. 인간의 문명은 직립보행으로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시작했다고 이야기되지. 그러나 두 다리로만 체중을 지탱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퇴행성관절염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직립보행으로 모든 내장의 압력이 항문에 집중되기에 치질의 고통(인간만이 걸리는 병이야)을 감수해야 했단다. 장구한 시간에 걸쳐서 대자연이 골탕이라도 먹이듯 툭툭 내미는 기기묘묘한 질병에 짓눌렸지만, 인류는 엄청난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끝내 질병의 비밀에 접근하고 치료법을 개발해냈어. 오늘날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먹는 약 한 알, 누구나 다 아는 의학 상식 하나하나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단다.

간단한 예로 이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 귀가 닳도록 들은 주의사항을 기억해보자. 먼저 마스크 쓰기. 이건 1918년 전 세계를 강타하고 수천만 명을 죽였던 스페인 독감이라 불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1N1) 대유행 때 얻은 교훈이야. 그 이전 마스크는 대개 변장이나 방한의 용도로나 쓰였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대유행하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보호하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상식이 생겨났던 거야.

두 번째는 뭐지? 바로 손 씻기다. 의사들 말을 들어보니 코로나19 유행 후 다른 독감 환자는 확연히 줄었고 일반 감기 환자나 배탈 환자도 예년보다 적다고 해. 워낙 많은 사람들이 ‘손이 퉁퉁 붓도록’ 수시로 씻어대니 코로나19뿐 아니라 다른 병까지도 예방이 된다는 거야. 사람은 무의식중에 얼굴을 시간당 23회 정도 만진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손 씻기는 질병의 접근을 차단하는 가장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인 셈이야. 게을러서 덜 했을 뿐이지 오늘날 사람들은 손 씻기가 보건위생의 시작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어. 160년쯤 전만 해도 ‘손 씻기가 위생에 좋다’는 건 상식이 아니었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손 씻기를 선구적으로 주장했던 사람은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1818~1865)였어.

그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주로 일하던 산과(産科) 의사였어. 이때만 해도 출산을 담당하는 산과와 여성들의 생식기 질병을 보는 부인과가 분리돼 있었지. 즉 임신부들의 출산을 돕고 그 와중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멜바이스의 주 임무였어. 요즘에는 출산 중 산모나 아이가 죽었다는 얘기가 드물게 들리지만 과거에는 출산이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어.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아이를 낳다가 죽은 왕비들이 적지 않았잖니. 왕비가 그 지경인데 일반인은 오죽했을까. 사정은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임신부들이 출산의 고통을 겪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는 일이 흔했지. 특히 출산 과정에서 산모들을 고열에 빠뜨리고 종종 생명도 앗아갔던 병 ‘산욕열’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제멜바이스가 근무하던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제멜바이스는 한 가지 특이한 현상에 주목하게 돼.

병원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

빈 병원에는 제1산과병원과 제2산과병원이 있었다. 1산과는 의대 교수들과 학생들이 주로 담당했고, 2산과는 조산부들, 즉 의사를 도와 출산 과정을 보호하고 산모와 신생아를 돕는 전문 인력들이 배치돼 있었어. 이상하게도 1산과 쪽에서 더 많은 산욕열이 발생한 거야. 제멜바이스는 일단 그 수를 꼼꼼히 세어보았어. “1841년부터 1846년까지 6년 동안 제1산과에서 10%에 가까운 산모가 사망할 동안 제2산과에서는 3.4%만이 사망”(제멜바이스, 〈산욕열의 원인, 이해, 예방(Die Atiologie, Der Begriff und die Prophylaxis des Kindbettfiebers)〉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건 분명히 1산과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드러내는 수치였지만 제멜바이스도 이유를 알 수 없었지. 그의 말이야.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그저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것뿐이었다.”

오늘날 산욕열은 출산 과정에서 난 상처에 세균이 들어가 감염을 일으켜 생기는 병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어. 제멜바이스 시대의 의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폭소를 터뜨렸을 거야. 당시 의료진은 ‘안 좋은 공기(miasma)’에 의해 병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을 뿐, 세균의 존재도 몰랐고 무슨 탈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어. 제멜바이스는 그 ‘상식’을 의심했지.

1847년 제멜바이스의 절친한 친구인 의사 야코브 콜레슈카가 산욕열로 죽은 산모를 해부하다가 메스에 찔렸는데 그만 그 상처가 덧나 죽고 말았어. 제멜바이스는 슬픔 가운데에서도 친구의 몸에 난 염증이 산욕열 환자들이 겪었던 증상과 비슷함을 발견한다. “시체에서 나온 뭔가가 콜레슈카를 죽인 게 아닌가.” 제멜바이스는 이를 시체 입자라고 불렀다. 당시 의사들은 시신을 해부하다가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출산에 투입되기 일쑤였는데 제멜바이스는 그 점을 주목했어. 시신의 냄새를 염소가 없애준다는 데 착안해 1산과에 이런 공고문을 내걸었어. “오늘부터 영안실에서 분만실로 가는 모든 의사와 의대생은 문에 놓인 염소수로 손을 씻으시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REUTERS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27일 비탄에 빠진 인류를 위해 기도하고자 성베드로 광장 연단에 오르고 있다.

효과는 놀라웠어. 1846년 기준 10%를 넘었던 1산과의 산욕열 발생률이 단번에 1%대로 내려간 거야. “상처를 돌보는 의사들은 손을 씻어라!” 이 간단하지만 위대한 진리가 자명하게 드러나버린 것이지. 그럼에도 제멜바이스는 되레 엄청난 공격에 시달리게 된단다. 당시 의사들에게 환자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옷과 손은 일종의 ‘가오’였어.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식이랄까. 그런데 의학적으로 증명도 안 된 ‘시체 입자’ 때문에 손을 일일이 씻어야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고, 산욕열의 원인을 자신들이 제공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 제멜바이스는 동료 의사들의 혹독한 비판 속에 뜻을 펴지 못한단다. 그는 직장을 잃은 채 오스트리아 빈에서 밀려나 헝가리에서 의사 생활을 해야 했고 슬픔과 분노 속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의사들을 ‘살인자’로 부르거나 모든 화제를 손 씻기와 연결시키는 이상행동을 보이지.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된 제멜바이스는 입원 14일 만에 세상을 떠났어.

의학의 발달로 100세 인생을 바라본다는 21세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일대 홍역을 치르고 있듯, 아직도 인류에게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이를 위해 일생을 걸고 분투하고 있으며, 그 노력이 언젠가는 인류의 미래를 구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방편이 되리라는 사실이겠지. 비록 본인의 발견 때문에 불행의 나락에 던져졌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상식의 단초를 마련한 제멜바이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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