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코로나19 상처와 경험, 연대의 기억으로 남을까
  • 변진경 기자
  • 호수 655
  • 승인 2020.04.0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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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 코로나19’의 주제는 ‘대구’다. 혐오와 배제, 연대와 휴머니즘의 한가운데에 대구가 있었다. 애증의 실체를 풀어보기 위해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를 초대했다.
ⓒ시사IN 신선영3월25일 저녁 임승관 안성병원장,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왼쪽부터)이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 시대를 상징하는 혐오와 배제, 연대와 휴머니즘 한가운데에 대구가 있었다. 수도권 병원 문 앞에 ‘대구 경북 출신·방문자 출입금지’ 문구가 붙었다. 서울 자녀 집에 왔다가 확진된 대구 출신 감염자 뉴스에는 수천 개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 “손절”이니 “투표의 결과”니, 여러 지역감정과 정치적 쟁투의 말이 코로나19에 얻어맞은 대구와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에 또 한번 깊은 상처를 냈다.

동시에 사람들은 대구를 사랑했다. 텔레비전 속 캄캄한 풍경을 보고 눈물짓고 편지를 쓰고 선물을 포장해 대구로 보냈다. 많은 의료인이 대구행 기차를 타고 가 병원 안팎에서 숱한 날밤을 보냈다. 그들을 보고 감동받아 타지 시민들이 손을 보태고 그 손길에 또 감동받아 대구 사람들이 보답하기를 반복했다. 이 이해하기 힘든 애증의 용광로는 대체 무엇일까. 이것이 끓고 난 다음 대구와 대한민국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주간 코로나19’의 주제로 ‘대구’는 꼭 한 번은 다뤄야 했다. 고정 멤버인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 전문의),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감염내과 전문의·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과 더불어 현장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김동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그 역할을 맡았다.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기획국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본업인 이비인후과 진료를 이어가면서 대구동산병원과 달서구 선별진료소 등에서 코로나19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3월25일 네 건의 수술을 마치고 서울행 저녁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한 칸에 두 명이 앉은 텅텅 빈 기차였다. 밤 11시 대구행 막차가 출발하기 30분 전까지 〈시사IN〉 편집국 회의실에서 핸드크림에서 메디시티까지, 마들렌 쿠키와 최대집 사이 종횡무진 넓고 깊은 대화가 오갔다.

지난 한 주 어떻게 보냈나?

김명희:시골에 가서 콩과 감자를 심었다. 아는 분에게 밭을 얻어 농사 기술을 익히려고 했는데 2주를 미루다가 지난 주말에 갔다. 시골에 사람도 안 다니니 마스크도 안 써도 되고 날씨도 봄날이고 너무 좋더라. 지금 미국에서는 총이 엄청 팔리고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식량난이나, 자기 걸 지켜야 한다는 불안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총을 사재기하지만 나는 한 줄기 감자와 콩을 심었다.

김동은:강원도지사가 파는 감자 말고 김명희 선생님이 키운 감자를 사야겠다(웃음).

임승관:해외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많이 돌아왔다. 한국이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을 우리 국민들도 하고 외부에서도 듣는데, 실제 개인사에 접해지기도 했다.

김동은:일주일에 세 번 외래진료, 두 번 수술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대구동산병원 코로나19 병동과 달서구 선별진료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대구·경북 인의협에서 3월2일부터 선별진료소 4군데를 만들어 의사 1명, 간호사 3명씩 팀을 이뤄 드라이브 스루(차량에 탑승한 채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방식) 검체 채취를 하고 있다. 거기서 내가 주로 맡은 역할은 전국 각지에서 온 의료인들 순서를 짜고, 또 국민들이 보내준 선물을 병원과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배달하는 일이다. 어제는 대전에서 연잎밥 200개를 새벽부터 만들어 트럭으로 보내왔는데 모락모락 김이 나더라. 교대 때 따뜻하게 드시라고 군 장병, 공무원, 의사, 간호사들 하나씩 갖다드렸다.

화요일, 토요일, 일요일은 코로나19 전담병원인 대구동산병원에 가서 간호사 역할로 일하고 있다. 격리병동이다 보니 간호사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 배식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형편이다. 간호사 일을 의사가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혈관 잡는 거라든지 그런 일은 의사가 잘 못한다. 대신 환자들에게 배식은 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일이다. 상식(常食)과 연식(軟食), 즉 밥과 죽으로 나뉜다. 죽을 드려야 하는데 밥을 드리면 큰일 난다. 또 환자들이 답답하니까 자꾸 병실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그럴 때 방호복을 입고 쫙 째려보면 다시 들어가신다. 그렇게 병동의 질서 유지 역할도 맡았다.

현지에서 느낀 대구의 분위기는 어떤가?

김동은:3·28 대구 운동이라는 게 있다. 1960년 2·28 민주운동에 빗대 대구시에서 제안한 운동이다. 3월28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고, 손 잘 씻자고 온 거리에 현수막으로 도배를 해놨다. 이제 나흘 남았는데 3월29일부터는 어떡할 건지? 현수막 만들 돈으로 차라리 쪽방촌에 마스크와 손세정제부터 구해주면 좋겠다. 긴급 생계자금도 4월 총선 이후 주겠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 오늘 시의회에서 한 시의원이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하니까 권영진 대구시장이 그냥 나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구 사람들은 여전히 딱 두 사람을 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신천지 교주 이만희다. 중국인 입국을 안 막았다고도 비난한다. 대구가 보수의 성지라고 한다. 보수라는 건 뭘 지킨다는 것인데 사실 뭘 지키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이념적 보수가 아니라 특정 정파 지지에 머무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시사IN 신선영3월11일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새벽 근무를 마치고 교대하고 있다.

김명희:대구에서 확진자가 많이 생겼을 때 ‘이게 광주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혐오와 차별이 더 걷잡을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많은 국민들이 중국인을 혐오하다가 유럽에서 아시아인 전체가 테러당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닌가 보다’ 생각했듯, 대구·경북 시민들도 ‘내가 당해보니 이거 문제구나, 서럽구나’ 이렇게 역지사지해보는 기회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임승관: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말하길, “우리가 볼 수 있는 지옥이 있다면 네이버 댓글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벌어지는 일들과 그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보면서 불운하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운이 없어도 어떻게 이렇게 없지? 일본에서 감염된 사람이 한국에 들어왔는데 하필 중국 국적이었고, 대규모 감염이 번졌는데 하필 그 지역이 대구였고, 또 신천지 교인이었고…. 한 사례, 한 사례가 모두 혐오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불운한 일들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여기에 또 정쟁이 개입될까’ ‘한국 사회가 설마 이 정도일까’ 했는데 바닥을 한 번 더 확인한 느낌이었다. 중앙정부와 다른 지자체에서 대구를 돕느냐 마느냐, 환자 치료나 의료서비스를 얼마나 어떻게 제공하느냐 하는 문제가 정쟁 속에서 변질되는 과정을 봤다. 보건학적으로 맞는 이야기를 해도 정치로 해석되거나 평가되는 일들이 무섭고 안타까웠다.

폐렴 증상으로 사망한 고등학생의 사망을 두고도 정치적 처지에 따라 견해가 갈렸다.

김동은:모두가 음성이냐, 양성이냐에 올인했는데 논란의 핵심은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코로나19가 아닌 환자들이 이렇게 죽어도 되는가?’여야 한다. 대구시의사회가 (영남대병원의 진단검사 오류를 지적한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발끈하며 “5700명 대구 의사들이 좌시하지 않겠다”라는 성명서를 냈다. 나도 그 5700명 중 하나인데…. 그 학생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 문제를 얘기해야 하는데, 왜 자꾸 의사들의 명예 실추 이런 식으로 연결하는지 모르겠다.

김명희:자꾸 공격하니 정부도 ‘음성이었다’ ‘코로나19 아니다’를 강조해서 발표하더라.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문제는 여전한데.

임승관:PCR처럼 아주 민감한 검사를 하다 보면 위양성(가짜 양성), 위음성(가짜 음성) 이런 미결정 상태가 나타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검사에 오류가 나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방역 당국이 브리핑을 잘못한 면도 있다. “검사에 오류가 있어서 검사실을 폐쇄한다”보다 “검사의 신뢰도라는 것은 항상 100%가 아니다. 그에 대해 조사하고 조치하겠다”라고 했어야 했다.

대구 의료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 대구는 진짜 의료체계가 마비되었나?

김동은:2월25일 진료를 보고 있는데 ‘5700명 대구시 의사들 궐기하라’는 문자가 왔다. 대구시의사회에서 발표한 호소문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녀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경제는 마비되고 도심은 점점 텅 빈 유령도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응급실과 보건소 선별진료소에는 우리의 선후배 동료들이 업무에 지쳐 쓰러지거나 치료 과정에 환자와 접촉하여 하나둘씩 격리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심각성을 환기시킨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상당히 과장되고 감정적이었다. 의료가 붕괴되고 의사들이 쓰러지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불안을 줬다. 그걸 보고 광주의 한 의사한테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환자 볼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출발할까요?” 대구시 의사회 회원들이 다양한 자원 봉사 활동에 나서 큰 역할을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자원봉사자를 모을 때 봉사할 자리를 먼저 만든 뒤 호소해도 늦지 않았다. “퇴근 후 진료소로 달려와달라” 해서 많은 개원의들이 봉사하러 왔지만 야간에 연 선별진료소는 대구의료원 2곳뿐이고 거기에도 공보의가 있었다. 거점병원에도 대부분 경증 환자들이라 파견된 의사들의 역할이 애매했다.

대구의 의료체계는 마비된 적이 없다. 대구는 대학병원도 많고 병상 수만 보면 전국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도시이다. 다만 응급실 폐쇄는 문제가 있었다. 어떤 날은 오후 3시쯤 한 병원이 시작되더니 3개 병원이 연달아 폐쇄했다. 칠곡경북대병원 하나 빼고 다 폐쇄된 상태였다. 그럴 때 심근경색, 뇌졸중 등 골든타임을 다투는 환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분명 위기는 맞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다.

ⓒ김동은 제공2월26일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들이 쪽방촌에 코로나19 후원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132명이 사망했고(3월26일 기준) 대구·경북에서 그중 다수를 차지한 점은 분명 뼈아프다. 지금 되돌아봤을 때 무엇이 달랐다면 그 숫자가 줄어들 수 있었을까?

임승관:대구시에 생각할 시간을 줬어야 했다. 지금 상황을 예상했고 내가 만약 중앙방역대책본부 처지에 있었다면 그 첫 며칠 동안 대구 환자를 외부로 빼줬을 것이다. 대구 확산 초기 무렵 국가 지정 입원치료병상 가동률이 30% 정도 됐다. 한 100명쯤은 훈련된 곳에서 환자를 나눠 받을 수 있었다. 재난이 일어나면, 그 재난이 일어난 현장의 대응 체계는 외부에서 온 구조대와 분리되어야 한다. 도와주러 온 구조대원들은 단순한 작업, 환자를 받아서 치료하는 일을 하고, 그 재난이 발생한 지역이 할 일은 빨리 지역 거버넌스를 만들어 자발적인 체계를 수립하는 일이다. 전문가, 교수도 많고 헌신적인 활동가도 많은데 스스로 극복할 자기 안의 체계를 만들 시간을 줬다면 그 이후 결과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숨을 돌리게 하고 작전을 짤 수 있는 시간을 줬다면.

김동은:대구에 병상은 많았지만 공공병상은 매우 적다. 그걸 미리 간파하고 준비하지 못했던 게 아쉽다. 2월18일 대구에서 첫 환자가 나왔고 2월20일 목요일 밤 11시에 긴급교수회의 개최에 관한 문자가 왔다. 방역 당국과 지자체가 그때쯤 심각한 상황 인식을 공유한 것 같다. 2월21일 아침에 대구동산병원과 대구의료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하겠다고 통보하고 환자 소개령을 내렸다.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기 이전, 2~3주 전부터 다른 지역에서 환자가 발생해왔다. 그사이에 뭘 했어야 했을까.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했을 때 어떻게 입원시킬지 준비를 미리 했어야 하는데, 역학조사관이 단 한 명이고 공공의료 인프라도 부족한 상태에서 전혀 계획이 없었다.

다행히 동산병원은 신축한 새 병원이 있어서 기존 환자를 그리로 옮기면 됐지만 대구의료원 환자들은 각자도생이었다. 여기서 또 어려운 질문이 ‘코로나19 경증 환자가 위중한가, 기존 중증 환자가 위중한가’이다. 이때부터 대구·경북 인의협에서는 코로나19 경증 환자들을 입원시키지 말고 수련원 같은 곳에 보내자고 성명서를 냈다. 사실 지금도 경증 입원 환자들 보면 해줄 게 없다. 두 번 음성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사람들이 먼저 와 입원해 있으니 그 뒤에 생긴 위중한 사람들이 입원을 못하는 문제가 가장 컸다. 최대 2300명까지 밀려서 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전체 사망자 23%가 입원을 못하고 있다가 돌아가셨다.

김명희: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아직 여기까지 환자가 안 왔지만 만약 서지(Surge, 의료 수요 급등)가 생기면 어떻게 할지 만들어뒀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놀라운 부분이고, 지금 미국 정부가 욕먹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시아에서 두 달 전에 이미 터져 난리가 났는데 뭐 하고 있었느냐와 비슷한 상황 같다.

김동은:1월29일 대구시에서 관계 대책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내놨는데 거기에 병상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예방 홍보전단지 제작·배포’ 이런 것들만 있었다. 첫 환자 발생 2주 전인 2월4일 권영진 대구시장이 직원 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구시는 메르스 확진자가 나왔을 때 대응이 가장 모범적이었다. 다른 시도의 방역대책본부에서도 그때 우리가 만든 메르스 백서를 기본으로 삼고 있고 중앙정부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병상 계획을 짰어야 했다.

김명희:이번에 코로나19 유행이 지나가면 대구 시민사회에서 대안적 백서를 반드시 내는 게 중요하겠다.

임승관:대구를 보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가, 과연 나머지 16개 시도는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단지 운이 좋아서 혹은 운이 나빠서 확률적으로 발생한 일들이고, 다른 데서 대구 같은 일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더 나아가면,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왜 우리에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김동은 제공3월14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은화, 다윤의 어머니가 대구 의료진에게 보낸 핸드크림과 편지.

코로나19 유행으로 많은 국민들이 공공의료를 경험했다. 코로나19 검사, 진단, 치료 등 모든 것이 공공의료 영역에서 이루어졌는데 국민들이 의료 공공성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김동은:하나 있던 진주의료원마저 문을 닫은 경남 지역에서 대구 같은 확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공공병원을 없애고 의료 인력을 줄여 사망자가 속출하는 이탈리아 상황이 우리하고 전혀 별개의 문제일까? 이명박 정부 때 공공병원에 했던 일들이 경영평가를 하고, 수익을 많이 내면 돈을 주고 수익 못 내면 지원하지 않는 거였다. 사람들이 이탈리아 문제는 이탈리아 얘기고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구 취약계층 의료를 담당해온 적십자병원이 2010년 폐원할 때 대구시나 시의회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김명희:KTX 타고 대구에 가면 늘 ‘메디시티’ 광고를 본다. 의료기관 자체는 굉장히 많다. 적십자병원이 폐원한다고 했을 때 시민들은 ‘저긴 가난한 사람이나 가는 곳이니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조용히 닫히고 말았다.

김동은:KTX가 생기면서 환자들을 서울로 많이 빼앗길 것 같으니 지역 병원장과 당시 시장이 짜낸 아이디어가 메디시티였다. 대구 의료 인프라는 훌륭한데 홍보를 못한다는 용역 결과를 보고 메디시티라는 용어를 만들어 홍보했다. 대구 시민들로서는 ‘그래 여기는 의료에선 지역에서 최고구나’ 했는데 이번에 보니 허상이었다.

공공의료에 관해, 차라리 ‘공공의료 강화’라고 얘기하지 말고 ‘제2 대구의료원, 제2 공공병원을 만들자’라고 얘기하는 게 시민들이 이해하기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왔다. 시민들이 공공의료의 정의를 잘 모른다.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보건소 아시죠? 대구의료원 아시죠?”라고 얘기를 시작한다. 사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우리 병원보다도 대구의료원에 맞춰져야 하는 게 맞다. 대구에 병상을 많이 가진 큰 국립대학 병원이 두 개나 있는데, 법인화되기도 했고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번 국면에서 좀 더 역할을 했어야 하지 않나 아쉬움도 남는다.

임승관:국립대학교 병원은 공공의료기관일까. 과거에는 아니라는 쪽의 의견이 많았지만 지금 정부는 점점 국립대학 의료기관에 여러 혜택과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당장 지역마다 800~1000병상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 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국립대학 병원들이 공공의료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많이 고민되고 세련되게 정책이 집행되어야 한다. 그런 곳들에 감염병 관련 기능을 붙여주는 게 가장 가까운 대안이 아닐까.

지금 대구 코로나19 병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환경과 처우는 어떤가?

김동은:처음에 많은 간호사들이 영안실 옆에서 잠을 잤다. 지금 그나마 개선된 게 6인실, 8인실 도미토리의 2층 침대이다. 병원 옆에 괜찮은 호텔이 있는데 빌려서 잠이라도 편하게 자게 했으면 좋겠다. 후원물품과 후원금이 엄청나게 들어오는데 어떻게 배분될 건지 잘 모르겠다. 의사, 간호사 말고 폐기물 처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걱정이다. 그분들 쉬는 방을 한번 들여다봤는데 마음이 안 좋았다.

김명희:지난번 메르스 때 간호사들 숙소가 마련되지 않아 자기 차에서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나마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김동은:소를 여러 번 잃었는데 외양간은 제대로 못 고쳤다. 차에서 자는 사람들이 영안실 옆에서 자는 사람이 됐다. 그게 좋아진 걸까? 방호복이나 여러 안전 문제에 대해 현장에서 목소리가 나오는데 대부분 의사들이 낸다. 필요한 이야기지만 의사가 제일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간호사는 10분의 1 정도, 비정규직 청소 직원은 어디 얘기할 데도 없다. 이런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이라도 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대구 취약계층이 겪은 코로나19는 어땠을까?

김동은:대구·경북 인의협에서 원래 쪽방촌 주민들과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를 운영해왔는데, 확산 초기에 중국 출신 이주민들이 집 밖에 잘 나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료소 문을 닫고 대신 원격진료를 했다. 대구역 뒤쪽 무료급식소도 일찌감치 문이 닫혔다. 쪽방촌을 다녀보니 먹을 게 가장 필요했다. 도시락, 컵라면 등 전국 각지에서 후원물품이 많이 왔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걸 나눠줄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힘들었다.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장애인 단체나 시설도 어려움을 겪었다. 선별진료소를 차리고 나서 장애인 단체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다. 1339나 보건소에 전화해도 연결이 잘 안 되어 답답하니 나에게 따로 전화가 많이 왔다. 장애인 의심환자나 확진자가 생기면 그들뿐 아니라 돌보는 분들도 다 격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시설 내 확산이 매우 우려된다. 이분들을 먼저 검사해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당시 특정 종교인부터 먼저 검사를 해결해야 하는 대구시 정책이 있으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문제가 있었다.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 검사하러 모시고 나오는 것부터 힘들다. 장애인 확진자가 생기면 어딘가에 입원을 시켜야 하는데 병상이 부족해서 다른 지역까지 멀리 보내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또 도와주실 분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한 개 병동 정도는 장애인 입원 시설로 사용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연합뉴스2월24일 코로나19 심각 단계 기자회견에서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그래도 가장 많은 격려와 위로를 주고받은 곳이 대구였다.

김동은:아마 우리 병원에 3년은 마실 수 있는 생수가 쌓였을 거다. 모두 국민들이 보내준 것이다. 힘내라는 동영상도 찍어서 핸드폰으로 보내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은화, 다윤이 어머니가 핸드크림을 보내왔고 간호사들 나눠주라고 마들렌 쿠키를 구워서 보내주시는 분도 있었다. 군 장병들 잘 먹어야 한다며 한 의사분이 삼계탕을 쏘자, 한 장병 부모님이 다음 날 갈비탕을 보내왔다. 한 어르신은 선별진료소에서 진료를 마치고 가시면서 “우리보다는 여기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들이 마스크 부족하면 안 되잖아”라며 마스크 20여 장을 건네려고 해서 겨우 말려 돌려보냈다.

임승관:경기도 공공의료원 중 한 곳인 우리 안성병원에서도 처음에는 긴장도가 높다가, 언론이 주목할 때 뿌듯해하다가, 무엇보다 진료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감사의 메시지를 전할 때 가장 기운을 받는다. 지난 두 달 사이 병원 직원들의 자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우리처럼 아주 급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런 감동이 일어나는데, 대구 의료인들은 더더욱 자기 일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발견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김명희:한국 사람들 아주 열정이 많다. 따뜻하고, 찡하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라는 단체 이름에 사실 어폐가 있다. 의사는 당연히 인도주의자여야 하지 않나?

김동은:〈중앙일보〉가 최근 회원 수 500명밖에 안 되는 인의협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최전선에 있었던 좌파 단체라고 무슨 칼럼을 썼다. 우리가 그 대단한 일을?(웃음) 대한의사협회(의협) 13만 회원 수와 비교하던데 그 13만명에 나도 속해 있다. 13만 의사들이 모두 최대집 의협 회장과 생각이 같을까? 최대집 회장이 최근 정부에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원봉사 나선 의사들을 철수시키겠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자원봉사 활동에 나선 사람으로서 정말 화가 나고 명예훼손으로 고발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와 의사들은 최 회장이 시켜서 자원봉사를 한 게 아니다. 자기가 무슨 권한으로 자원봉사단 다 빼겠다고 얘기하는지 어이가 없다.

의협의 행보를 포함해, 그동안 의사들이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친 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노력하는 의사들을 염려해주고 걱정해주는 국민들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조금만 잘하면 의사들이 충분히 사랑받을 텐데. 나는 의사들과 국민들 간 관계가 끊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차피 아무도 우리를 존경하지 않으니 차라리 이익단체로 가서 우리 이익이나 철저히 챙기자’ 하는 단체가 있고, 거기에 또 일부 젊은 의사들이 동조했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이 의사들이 의사다운 일을 할 때 염려해주고 걱정해주는 걸 보고 자기반성을 엄청 했다. 그렇게 실망을 끼쳐드렸는데도 불구하고….

김명희:시민건강연구소에서 국제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한국 상황을 알리는 성명서를 쓰는데 의협에 대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원래 의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보수적인 편이지만 우리나라 의협을 설명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임승관:휴머니즘이 사회를 바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회를 지키는 데는 본질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국면이 그래도 의료의 본질이 휴머니즘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계기였으면 좋겠다.

김명희: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레지던트 하던 1990년대 후반에는 그래도 기본에 대한 생각은 있었다. 평소에 술 먹고 돌아다니던 친구들도 ‘데모 하러 가자’ 하면 안 오지만 ‘이주노동자 진료하러 가자’ 하면 ‘시간만 맞으면 가지 뭐’ 이런 게 있었다. 의사라는 직종의 특수성도 있다. 사회 엘리트 계층이고 지식과 권력과 부를 갖고 있으면서 그 어떤 다른 사회 엘리트보다 사회 취약계층을 많이 만난다. 교수, 재벌 기업가, 펀드매니저가 아프고 가난하고 손 곱은 사람들을 얼마나 만나겠나? 의사들은 아픈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전문적 옹호자가 될 기회가 상당히 많다. 토대가 있지만 제대로 전환하는 무언가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이번에 의사들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사실 간호사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조명이 잘 안 된다. 간호사는 전문성과 노동자 정체성 두 가지가 충돌하고 있는 와중에 간호협회 등 단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노동자 관점을 금기시한다. 노동자 이야기를 하면 큰일 나는 줄 한다. 노조 탄압하는 게 대부분 수간호사들이다. 간호사의 사회적 전문성을 획득하는 길을 간호와 관련된 내부 엘리트들이 가로막고 있다. 사실 의사는 환자들 직접 많이 안 본다. 직접 환자를 돌보고 밥을 가져다주고 머리 감겨주고 이런 일을 간호사들이 하고 있다. 의사 그림자에 가려지는 부분들, 이런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이번 기회에 좀 더 조명받으면 좋겠다.

김동은:처음에 인의협 선별진료소를 차리기로 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글을 올릴 때 약간 걱정이 됐다. 한 명도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데 하루 만에 20명 넘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오겠다고 했다. 인턴을 마친 1년 차 새내기부터 백도명(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선생님까지 달려왔다. 다 표정이 밝고 서로 먼저 하려고 한다. 직업의 원래 소명,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번 주에 온 한 의사 후배는 2005년도에 학교를 졸업한 친구인데, 알고 보니 내 수업을 들은 제자였다. 아무리 의사 인성교육, 의료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수업 시간에 학생들 다 잔다. 강의 시간에 가르치는 것보다 이렇게 선배 의사들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게 강의나 시험보다 훨씬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대구의 상처와 경험을 연대의 기억으로 남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김명희:앞서 대안적인 백서 얘기를 했는데, 어떤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정의나 연대 경험이 공지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얘기한 ‘공지성(publicity)’이다. 다른 사람도 정의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게 알려지지 않으면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을 받는다. 연대의 경험도 단순히 따뜻한 사연 수준을 넘어 기록될 필요가 있다. 대구시가 잘한 것만 포장해서 남기지 말고 잘한 게 뭐고 잘못한 게 뭐고 그걸 메우기 위해 시민사회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기록으로 남겨놓아야 한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 100만명이 가서 기름을 닦았지만 사회운동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일종의 미담에서 끝나고 말았다. 대구에 구호품이 오고 따뜻한 시민들의 손길이 쏟아진 일을 ‘불쌍해서 보내줬다’를 넘어 시민들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헤쳐 나갔는지 꼼꼼히 기록을 남긴다면 그다음은 똑같지 않을 것이다. 대구 시민사회가 그런 작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김동은:전적으로 동감한다. 일반 시민들은 다른 지역이 혹은 스스로가 얼마나 어떻게 돕고 연대했는지 상세한 내용을 잘 모르기 쉽다. 기록을 남기는 게 정말 중요하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은, 대구동산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된 김에 대구시가 인수를 해서 아예 공공병원으로 꾸렸으면 좋겠다. 병원 이름을 살리면서 리모델링해 코로나19의 경험도 기억하고. 공간이 있어야 기억할 수 있다. 전국에서 보내준 손편지를 다 보관해서 작은 박물관도 만들고. 대구시 신청사 건립에 3000억원을 들이려고 하는데 그것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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