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3월25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찰에 송치되는 종로경찰서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3월24일 ‘박사’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된 날, 인터넷 세계의 반응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조씨의 행각에 경악하고 분노한 다수, 조씨의 실제 모습에 놀라며 가슴 졸인 공범, 그리고 그를 멍청하다고 여기며 비웃은 이들이다.

세 반응은 각기 다른 세계, 다른 집단에서 나왔다. 반응이 갈린 이유는 인터넷 세계가 크게 세 층위로 나뉘기 때문이다. 각 층위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고 디지털 성범죄 역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번져간다. 온라인에서 반복되는 디지털 성범죄 전반을 파헤치려면 이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분절된 생태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단순히 한 채널의 주도자와 가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디지털 성범죄가 이루어지는 첫 번째 공간은 우리 다수가 사는 세계다. 우리가 매일 검색하고 정보를 얻는 인터넷 공간이다. ‘면웹(Surface Web)’이라 불린다. 구글에서 검색 가능한 인터넷 공간이다. 얼마 전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대부분 면웹에서 확대 재생산됐다. 소라넷이나 텀블러 등이 면웹에서 성범죄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작은 섬이 하나 있다고 하자.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감시탑을 세워두면, 섬 구석구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수사기관도 면웹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쉽게 찾아내거나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해외에 거점을 둔 사이트라 하더라도 수사 공조로 적발할 수 있다. 급한 대로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관계 당국이 한국에서 해당 사이트 접속을 차단할 수도 있다.

면웹은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기 때문에 윤리적 비난과 불매운동, 여론의 맹공이 뒤따른다. 대중을 상대로 돈을 벌어야 하는 플랫폼 서비스일수록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다. 성범죄 영상이 다수 올라와 지탄을 받은 블로그 서비스 텀블러도 결국 관련 영상을 삭제했다.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고 유통하는 이들,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구매하려는 이들 모두 그래서 육지 대신 수면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새로운 법칙이 적용되는 두 번째 온라인 공간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두 번째 온라인 공간이 수면 아래의 웹, ‘딥웹(Deep Web)’이다. 딥웹 생태계는 원래 구글 검색으로 찾을 수 없는 온라인 공간을 통칭하는 의미다. 가령 논문을 찾기 위해 도서관 단말기로 학술 DB에 접속하는 것 역시 일종의 딥웹 탐색이다. ‘고독한 ○○○’처럼 오픈 채팅방에 접속해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공유하는 것도 개념상 딥웹에 해당한다.

딥웹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 가령 회원제로 운영되는 카페나 커뮤니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딥웹 생태계다. 하지만 카페나 커뮤니티는 수사기관이 서버를 수색하면 쉽게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딥웹 생태계에서도 서버를 경찰이 찾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통용되는 공간이 바로 텔레그램이었다. 이곳에서 조주빈의 범죄에 가담한 관전자들이 그의 구속에 마음 졸이는 이들에 해당한다.

그런데 마지막 유형, 조씨가 멍청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심해’에 머문다. 이른바 ‘다크웹(Dark Web)’이다. 딥웹이 익명성에 기댄 일종의 가면무도회라면, 다크웹은 홀로그램으로 참석하는 가면무도회에 가깝다. 실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온라인 접속 방식이다. 접속하는 개인은 물론이고 다크웹에서 운영되는 사이트 서버까지 3중, 4중 우회로를 통해 위치를 감춘다. 2018년 적발된 세계 최대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가 다크웹에 있었다. 운영자인 손정우는 1년6개월 형을 받고 올해 4월 출소 예정이다.

다크웹은 비교적 사용하기 어렵다. 기술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편의성이 떨어지며 접속 속도도 느리다. 이 생태계에서 이용자 대부분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완전무결한 익명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조주빈 등이 암호화폐로 금전 거래를 시도하고, 그 돈을 한국 내 코인 거래소에서 인출하는 등 실제 세계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을 미숙한 행동으로 평가한다.

조주빈이 체포된 뒤에도 일부 딥웹·다크웹 이용자들은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의 글을 올렸다.

조주빈이 다크웹까지 내려가지 않은 까닭

3월24일 다크웹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어 커뮤니티 ‘코챈(Kor Chan)’에는 “박사가 사용한 텔레그램이나 위커보다 L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박사가 잡힌 건 진짜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라는 반응이 올라왔다. 조씨를 비롯해 경찰에 덜미를 잡힌 범죄자들이 부주의했기 때문에 사건이 커졌다는 것이다. 조씨의 신상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에도 다크웹 커뮤니티에서는 “협박만 했어야지 왜 돈을 받냐” “취재한 기자 가족사진 있는 사람 올려라” “영상 찾는 놈들아, 불구경 좀 하다 몇 달 뒤 와라”라는 글이 올라왔다. 익명성이 제대로 보장된다고 믿는 생태계일수록, 윤리적 감각은 사라져 있었다.

심해가 있다고 한들 대다수 사람들은 얕은 물에 잠수한다. 조주빈씨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자가 다크웹까지 내려가지 않고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 생태계에 머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싸고, 편하고, 잠재적 수요층을 끌어들이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면웹과 딥웹 사이에는 쉽게 통로를 만들 수 있다. 텔레그램 대화방 링크만 공유하면 된다. 별도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네트워크를 우회해야 하는 다크웹에 비해 텔레그램 메신저에 진입하는 것은 훨씬 쉽다. 사이트를 새로 구축할 필요도, 서버 비용을 낼 필요도 없다. 특별한 프로그래밍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면웹의 윤리적 잣대는 현실세계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러나 딥웹은 다르다. 거추장스러운 윤리적 틀을 벗어던진 딥웹 진입자들은 설령 ‘n번방’ ‘박사방’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 유통 채팅방에 들어 있지 않더라도 고삐 풀린 발언을 이어나간다. 3월25일, 한 걸그룹 멤버의 사진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채팅창에는 그녀에 대한 성추행 발언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이곳에는 2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470여 명이 모여든 다른 토론방에서는 ‘텔레그램 집단 탈퇴 운동’을 비하하며 “전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얼마나 많은데 코미디다” “이번 사건으로 텔레그램의 보안성이 더욱 입증되었다” 따위 반응을 보였다.

텔레그램에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해진 시기는 2018년 하반기부터다. 텀블러가 디지털 성범죄 영상과 사진을 삭제하면서 이용자 규모가 늘어났다. 텔레그램이라는 딥웹 세계에는 포털이 없다. 관련 대화방이 얼마나 개설되었는지 외부에서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길잡이’ 구실을 하는 대화방이 생겼다. 이게 링크 공유방이다. 이들 링크 공유방을 운영하는 이들의 권한이 점점 막강해졌다. 수원지검이 기소한 ‘와치맨’도 링크 공유방을 운영한 인물 중 하나다. 성범죄물을 전파하는 방장도 채팅창 내에서 절대 권력을 쥐기 시작했다. 텔레그램 딥웹 사용자들은 이들을 흔히 ‘완장’이라고 불렀는데, 경찰에 붙잡힌 ‘박사’ ‘태평양’ ‘로리대장 태범’ 등 성범죄 사진과 영상을 유포한 이들이 모두 완장이었다.

텔레그램 딥웹 세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

텔레그램 내 각종 토론방(자료 공유 대신 채팅에 집중하는 방)에서 이들 완장은 ‘네임드’(유명인사)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강퇴시키거나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새로운 채팅창에 초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반목과 비난도 뒤따른다. 이때 가장 강력한 공격은 상대방의 신상 정보를 캐내는 것이다. 성범죄에 활용한 방식을 본인들끼리 다툴 때에도 활용한 셈이다.

이른바 ‘자경단’도 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용자가 2900여 명에 이르는 한 자경단 채팅창에는 성범죄 영상을 구매하려다 신상이 드러난 이들을 공개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방식은 이렇다.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있다는 낚시용 링크를 뿌리고, 이 링크를 클릭해 들어온 사람이 대화를 걸어오면 “당신 지인 여성의 사진을 내놓으면 채팅방에 초대해주겠다”라는 조건을 건다. 시키는 대로 지인 여성의 사진을 보내면 그 장면을 캡처하고, 상대방의 번호를 추적해 신상을 터는 방식이다. 주로 텔레그램 이용에 미숙한 이들, 본인 전화번호가 텔레그램 프로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인물이 ‘박제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이들 자경단이 특별히 도덕적 우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낚시’ 과정에서 희생된 여성의 사진 역시 자경단 텔레그램 채팅창에 그대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자경단 역시 성희롱 발언을 여과 없이 남긴다. 텔레그램 딥웹 세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가깝다. 이곳에서 ‘텔레그램은 안전하다’고 믿는 이들은 그저 “태평양이 열여섯 살이라는 게 놀랍다” “조주빈(박사)은 어떻게 저렇게 돈을 번 거냐”라는 반응을 보일 뿐, 여전히 익명에 기대 노골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3월24일 암호화폐 거래소가 경찰에 협조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는 텔레그램 딥웹에서도 “돈을 낸 사람들이 멍청한 것”이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면, 거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안전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인터넷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면웹 세계에 있는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텔레그램 딥웹 세계에서도, 다크웹 커뮤니티에서도 “사진과 영상을 보낸 여성에게 잘못이 있다”라고 말하는 2차 가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익명성에 안심하는 딥웹·다크웹 이용자들의 표현이 좀 더 노골적일 뿐이다.

‘접속하기 조금 귀찮지만 더 안전한 공간이 있다’고 믿는 한 디지털 성범죄는 사라지기 어렵다. 텔레그램 채팅창에 잔존해 있는 많은 이들은 경찰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어차피 텔레그램 본사가 서버 자료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가 단순히 텔레그램 내에서 금전 거래를 한 이들(증거를 남긴 이들)에 그친다면 제2, 제3의 ‘박사’를 막기 어려울 수 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가해자와 가담자가 대거 다크웹 세계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더 깊숙한 곳에서, 더 노골적으로, 더 잔혹하게 피해자를 옥죌 수도 있다. ‘박사’는 한 명이 아니다. 아직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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