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감기약을 들이마시다시피 했다. 코로나19가 확산 조짐을 보였던 1월부터였다. 발달장애 아들 장민수씨(21·가명)를 둔 김진경씨(45·가명)는 “병원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먹었어요”라고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이었다. 아이를 혼자 남겨둘지도 모른다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몹시 두려웠다.
2월 말 대구 지역에서 장애인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생활치료센터에는 장애인 이용시설도, 24시간 돌볼 인력도 없었다. 김씨는 차라리 아들이 먼저 걸려 본인이 보호자로 같이 입소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들 민수씨가 ‘자가격리 대상자’ 통보를 받은 건 지난 3월16일이었다. 그가 다니는 경기도 성남시 한 복지관에서 같은 수업을 듣던 발달장애인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해당 장애인은 어머니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의 보호자로 함께 입원했던 아버지는 이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김씨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검사 결과 다행히 음성이 나왔지만, 가족 모두가 꼼짝없이 격리에 들어갔다. “발달장애 자녀와 엄마는 거의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셔야 해요.” 이웃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익숙한 자책을 하는 와중에도 김씨는 “그래도 내가 걸리지 않아 다행이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돌봄 공백을 온몸으로 막아야 하는 가족에게는 그 자체가 재난이고, 준전시 상황이다. 2주 동안 온 가족이 집안에 꼼짝없이 갇혔다. 활동지원사 없이 24시간 내내 민수씨를 돌본 지 열흘째 되던 3월25일, 김씨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자녀 돌봄이 어느 정도 부모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더 이상 버티기가 너무 힘드네요.” 민수씨는 격리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소리를 지르는 등 돌발행동을 많이 보였다. 검체 채취를 하러 보건소 직원들이 방문한 날도 ‘탠트럼(tantrum, 자폐아동이 보이는 분노 발작)’이 나서 결국 검사를 하지 못했다. “코로나에 안 걸려도 코로나에 걸린 것과 똑같은 상황 같아요.”
민수씨와 가족들이 자가격리에 들어섰던 직후인 3월17일, 제주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제주 서귀포시에서 발달장애 자녀와 어머니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는 ‘삶 자체가 너무 힘들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코로나19로 특수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계속 가정에서 자녀를 돌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장애인 복지시설도 모두 문을 닫은 상황이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잠시도 못 쓰는데···”
중증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 엄마의 선택을 이해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대구에 사는 오은희씨(57·가명)는 이 사건을 보며 같은 감염병이라도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왜 늘 아픈 사람들이 더 아플까요.” 오씨의 자녀 역시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성인이 된 자녀를 보살피기 위해 그는 직장도 그만뒀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 유독 그에게 버겁게 다가온다. 확진자와 접촉한 이력이 없지만 현재 한 달 넘게 아들과 집에서 자체 격리를 하고 있다. 침 흘리는 아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밖에 나가기 어려운 이유는 많았어요. 코로나19로 인해서 우리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오씨처럼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대부분이 짧으면 한 달, 길게는 두 달 가까이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잠시도 못 버텨서” “길에서 갑자기 돌발행동을 할까 봐” “청도대남병원 같은 시설 내 집단감염을 우려해” 본인이 24시간 돌봄을 감수하고라도 집에 머무르기를 택했다. 특수학교 내 긴급 돌봄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서울시의 경우 이용률이 25%로 낮은 이유였다.
끝이 어딜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을 가장 지치게 한다. 개학이 예정된 4월6일이 지나더라도, 자가격리 기간이 해제되더라도, 집 밖을 나설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중증 지체장애인 박기철씨(36·가명)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도 해제됐지만 ‘손발’이 되어주던 활동보조사를 벌써 한 달 가까이 구하지 못했다. 무릎과 팔 통증도 계속된다. 기어 다니느라 무릎과 팔을 많이 쓴 탓이다. 박씨는 2월24일부터 3월4일까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원래는 집안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움직였지만 24시간 혼자일 때는 불가능했다. 당장 밥을 먹고 씻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대구시와 구청으로부터 쌀·라면·참치캔·배추 등 보급품을 받았지만 박씨가 해먹을 수 있는 식료품이 거의 없었다. “혼자 컵라면은 끓여 먹을 수 있는데, 냄비에 끓이는 라면은 어렵습니다.”
대구의 한 장애인 자립지원센터(지원센터)에서 일하던 박씨의 동료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2월23일이었다. 지원센터는 장애인이 탈시설 이후 자립을 준비하는 거주시설을 겸하고 있던 곳이다. 접촉자로 확인된 29명 중 박씨를 포함한 장애인이 13명이었다. 장애인을 보조하던 활동지원사들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대부분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다.
‘혹시 감염됐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만약 중증장애인 감염자를 위한 별도의 시설이 있는지, 그곳에 활동지원사 인력이 있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았다. 보건소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구에 확진 환자가 급증하면서 보건소에 과도한 업무 부하가 걸려 있던 때였다. 박씨가 검사를 받은 건 8일이 지난 3월1일이었다. 인터뷰 중 그의 대답은 자주 ‘답답하다’라는 말로 끝이 났다.
지원센터와 연계된 한 체험홈(탈시설 이후 자립을 준비하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머물던 중증장애인 3명은 아예 ‘동행 격리’에 들어갔다. 물론 비장애인 활동가 최우민씨(30·가명)가 결심했기에 가능했다. 2주 동안 식사, 빨래, 목욕부터 감염관리까지 그가 전담했다. 최씨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월21일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근무시간을 8시간에서 24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박씨처럼 방치되거나, 누군가의 ‘희생’으로 메워지거나 장애인들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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