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취재하러 간 고성 산불 현장에서 봤던, 아직도 잊히지 않는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목이 줄에 묶여 도망칠 수 없었던 개가 불에 탄 뒤 남은 사체이다. 살아남은 개들은 그 와중에도 사람이 반가운지 담벼락에 뚫려 있는 구멍 사이로 코를 내밀었다. 콧잔등에 불티가 튀어 군데군데 벌건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어디를 쓰다듬어야 할지 난감해하던 차에 갑자기 개들이 고개를 돌려 짖기 시작했다. 연기를 많이 들이마셨는지 허파에 구멍이 뚫린 듯한 쇳소리가 났다.
택배 차였다. 불에 타서 주저앉은 집 앞으로 택배 차가 왔다. 아직 잔불이 꺼지지 않아 마당에서 소방차가 물을 뿜고 있는 모습을 망연자실 지켜보던 집주인이 택배를 받으러 나갔다. 짐 하나 못 챙기고 빠져나와 모텔에서 밤을 꼴딱 새웠다는 그의 얼굴이 그 순간만은 풀어졌다. 택배 상자는 단순한 배달물이 아니었다. 집주인에게는 이 난리통에 처음으로 다시 느껴보는 일상이자 불에 타지 않은 유일한 재산이었다. 수첩과 펜을 쥐고 집주인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멈춰 섰다. 연기를 들이마신 개들이 짖는 소리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을 방해할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터지고 한국은 전 세계로부터 ‘사재기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칭송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건 ‘정부’나 ‘국민’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택배’였다. 정확하게는 단어보다 이미지, 1년 전 강원도 고성에서 그을음을 뒤집어쓰고 진창이 된 흙 위로 액셀을 밟아가며 달리던 택배 차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사재기를 하지 않은 건 딱히 정부나 동료 시민을 믿어서라기보다 한 도시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된 이튿날에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배달 온 택배 기사를 믿기 때문이었다. 구매 완료 버튼을 눌렀는데 다음 날 택배가 오지 않는다? 사재기 풍경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3월12일 쿠팡맨 김 아무개씨가 새벽배송을 하다 숨졌다.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김씨는 두 아이가 기다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실 이번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명절마다 연말연시마다, 해마다 끝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택배 기사들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일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택배가 하루 늦어져도 우리의 일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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