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퀴어 페미니즘 댄스 그거 어떻게 해?” 김유진 대표(29)가 댄스 스튜디오 ‘루땐’을 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이름 앞에 붙어 있는 ‘퀴어 페미니즘 댄스 공간’이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그거 엄청 PC(정치적으로 올바름)해야 되는 거 아냐?” “타이틀이 부담스럽지 않아?”

정작 김 대표가 그 문구를 처음 써넣을 땐 별 고민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퀴어 페미니즘은 딱 정해진 답이 아니었다. “자신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면서도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함께 고민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만들어진 개념을 수행한다기보다 함께 공간을 꾸려가는 데 의미를 두었다. 그러다 보니 수강생들은 서로의 춤에 대해 ‘평가’하기보다는 ‘느낌’을 묻고 답한다. 단순히 기존 통념에 따라 잘한다, 못한다 나누기보다 ‘저는 이 춤에서 이런 감정을 받았는데 어떤가요?’라며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식이다. “춤이 표현이라면 그 표현을 받는 사람도 있잖아요. 내가 정말 자유롭게 춤출 수 있으려면 그 춤을 내 의도대로 읽어줄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해요.”

루땐에서는 흔히 ‘여성적인 춤’이라고 여겨지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안무도 소화한다. ‘페미니스트라면 그런 춤은 안 출 것 같다’는 편견과 달리 다양한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이돌 안무를 추며 즐거워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읽어주는 공간에서 그런 춤을 춘다는 게 굉장히 큰 해방이기도 하거든요.” 평소 골반 쓰는 춤동작이 불편했던 사람도 루땐에서는 마음껏 춤을 춘다. 이곳에는 ‘너, 보기와 달리 여성적이구나’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움츠러들 일이 없다. “저분은 저렇게 춤을 추고 싶었구나, 저렇게 추고 있구나, 그럼 그걸로 충분한 거죠. 사회가 정한 규칙과 권력구도 안에서 내 춤이 해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이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거니까 안 돼’라며 경직되고 싶진 않아요. 선을 긋거나 벽을 치려고 ‘퀴어 페미니즘’을 붙인 게 아니에요.”

김유진 대표는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 대학생 때부터 알음알음 요청이 들어오는 대로 부업 삼아 춤을 가르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해방구’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8년 5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한 건물 지하에 20평 남짓한 공간을 얻었다. 자신의 활동명 ‘루시아’를 딴 루시아의 댄스교실, ‘루땐’은 그렇게 탄생했다. 2년 만에 수강생은 80~100명으로 늘었다. 요즘 수강생들은 김유진 대표에게 “수영장도 내주세요” “헬스장도 내주세요”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적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내 몸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이 너무 외로운 싸움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선가 춤추고 있을 누군가에게 김유진 대표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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