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지난 3월20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객장 운영이 일시 중단된 뉴욕 증권거래소.

“부활절까지는 이 나라를 다시 열고 싶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회복론을 내세우며 외친 말이다. 미국 전역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코로나19 대처에 진력하는 와중에 대통령이 경제회복을 이유로 이를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논란이 거세다.

보건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주식시장의 폭락과 실업자 폭증, 기업 도산 등을 방치할 수 없다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완화할 태세다. 그는 구체적으로 완화 시점을 4월12일 부활절로 잡았다. 이때를 기해 공장과 가게 문을 열고, 외출 자제령도 풀어 경제 부활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3월 초 코로나19 검사 장비 및 진단시설 부족 등 현실적 이유로 기존 검사 강화 방침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3월 중순부터 15일 동안 집에 머물며 이동을 최소화하자고 했다. 개인 간에도 1.8m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10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는 식이다. 식료품과 약국 등 일부 필수적인 분야 외에 식당이나 극장, 술집, 호텔의 문도 닫게 했다. 옥내외 집회도 못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각 학교는 일찌감치 폐쇄하고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신했다. 이 지침에 따라 최소 1억3000만명 이상이 자택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뉴욕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도 수천 명씩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16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 중”이라고 우려하면서 “모든 사람이 지침(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르고 희생해야 우리가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회견할 당시 미국 내 확진자 수는 4000여 명, 사망자는 73명이었다. 3월24일 확진자 수가 5만2000여 명, 사망자도 700명을 훌쩍 넘겼다. 이 수치만 보면 방역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한 듯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의사들한테 맡기면 미국이 2년 정도는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다. 몇 달이 아닌 훨씬 더 짧은 시일 내에 다시 문을 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방역보다 경제 부활을 강조한 발언이다. 그는 3월24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늦어도 부활절까지는 문을 다시 열고 싶다”라고 밝혔다. 부활절인 4월12일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외출도 하고 직장에도 나가고, 가게 문도 열어 경제활동을 재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코로나19가 7~8월까지 확산될 수도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 역시 그때까지 유지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3월 들어 주가가 35% 가까이 대폭락하고, 경제활동이 사실상 마비돼 수백만 실업자가 양산될 기미가 보였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경우 올해 11월 대통령선거에 빨간불이 켜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쪽으로 급선회한 배경이다.

ⓒAP Photo트럼프 대통령(왼쪽)은 부활절인 4월12일까지 미국이 정상 가동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백악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지침 마련 중

다우존스지수는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2020년 2월 초까지 거의 1만 포인트나 치솟았다. 실업률도 3.5%까지 하락하는 등 경제 호황이 지속되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장담한 것도 이 같은 경제 치적 덕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그의 경제 부문 치적을 압도해버렸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은 CNBC 방송에서 “지금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경제 봉쇄가 득보다 실을 더 안기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의 기업인과 보수 언론, 보수적 경제학자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적극 주창한다.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파인 회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경제손실이 막대하다. 우선 저위험군에 있는 사람부터 수 주일 내에 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어느 나라도 경제 전반을 희생하면서 공중보건을 지킬 순 없다”라고 주장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뉴욕 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금융대출과 개인에 대한 현금 지급으로 도산과 부채를 피할 순 있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재화와 용역의 거래가 가로막힌 상황에서 경제가 회생할 순 없다”라고 지적했다. “당국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면서 사람들이 보호마스크를 착용한 채 25%가 향후 2개월 내, 75%가 4개월 내에 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선별적 접근책을 취해야 한다.”

대다수 보건 전문가들과 경제학자, 주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방침에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담과 달리 현재 상황에선 확산 기세를 억누를 수 있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검사를 받지 못한 잠재적 감염자도 아직 너무 많다. 어설프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다가는 확산 속도가 더욱 가팔라질지도 모른다. 경제적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의 핵심 멤버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앤서니 파우치 소장부터 ‘완화’에 부정적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려면 앞으로도 최소한 몇 주 이상 지금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하버드 대학 제이슨 퍼먼 교수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를 망치는 것이 코로나19인 것은 맞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이 실은 경제적 손실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경제 도약을 이루는 지름길이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 선회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현실적으로 미국이 한국처럼 코로나19 감염 의심자들을 추적해 성공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기회는 지났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에도 백악관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실무 관리들 가운데서 거론되고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다. 이를테면 대중교통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직장인들이 복귀할 수 있도록 하거나 코로나19 감염 고위험 지역이 아닌 지역부터 직장 복귀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먼저 40세 이하부터 특정일에 직장에 복귀하도록 하고 이어 40~50세로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또한 확진 판정을 받아도 상태가 경미한 경우 마스크를 쓴 채 선별적으로 직장에 복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데보라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TF 조정관은 “지역적으로, 연령적으로 세밀하게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해, 새 지침이 구체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결국 보건 전문가들과 보건 당국의 반대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회생 못지않게 자신의 재선 전략과도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방침을 양보하지 않을 것 같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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