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매일 저녁 8시 수백만이 박수를 친다
  • 마드리드·호세 마리아 이루호 기자 (<엘파이스> 탐사보도팀장)
  • 호수 655
  • 승인 2020.03.3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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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8시 정각. 스페인 시민들은 의료진에 대한 감사와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박수를 친다. 하지만 의료진은 한계에 부딪쳤고,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음식점 25만 곳도 휴업했다.
ⓒEPA스페인 마드리드 한 병원 앞에서 3월24일 시민들이 보내는 박수에 의료진이 화답하고 있다.

3월26일 현재 스페인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만6188명에 이른다. 사망자는 유럽에서 이탈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파이스〉 호세 마리아 이루호 탐사보도팀장이 특별 기고를 보내왔다. 1976년 창간한 〈엘파이스〉는 스페인 국내뿐 아니라 중남미 지역까지 취재 대상과 독자층을 넓힌 스페인어권 대표 언론사다. 이루호 팀장은 스페인 국제저널리즘상 대상을 받는 등 유럽 언론계에서 명망 높은 탐사보도 전문기자다. 2017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2017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국 독자들에게 〈엘파이스〉의 탐사보도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저녁 8시 정각, 시민 수백만 명이 창문을 열거나 발코니로 나와 의료진에 대한 감사와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박수를 친다. 스페인 인구 4700만명의 삶은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로 마비되었다. 텅 빈 도시와 마을이 생기를 잃었지만, 시민들은 매일 정시에 애타는 마음으로 몇 분간 창가로 나와 자신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전국 병원 344곳에서 일하는 의료진 35만여 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마르타 데 코데스 씨(60)와 그녀의 두 딸 마리아(26)·크리스티나(24) 씨는 매일 밤 마드리드 살라망카에 위치한 자택의 발코니에 모인다. 약 600만 인구가 거주하는 마드리드의 중심지 살라망카에서는 800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이 집계된 지역이다. 이들은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스페인 전역에 외출금지령을 내린 이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박수 의식에 참여했다. 몇몇 가정에서 32년간 잊혔던 두오 디나미코의 히트곡 ‘레시스티레(나는 견딜 것이다)’가 들려온다.

두 젊은이의 컴퓨터는 꺼질 줄 모른다. 그들은 2주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못한 채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일자리를 잃진 않았다. 마리아 씨는 디지털 마케팅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크리스티나 씨는 유명 국제 컨설팅 회사인 KPMG에서 근무한다. 주변에는 해고 통지를 받은 친구들 소식이 들려온다. 어머니 마르타 씨가 운영하는 13㎡(약 4평)짜리 육아용품점은 2주간 휴업에 들어갔다. 매장에는 납품업체의 고지서가 쌓이고 있다.

ⓒReuter집에서 의료진에게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 모습.

뛰어난 공중보건 시스템도 위기

하지만 두 딸이 계속 월급을 받고 있는 그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스페인 회사들은 이미 직원 수만명에게 임시 해고를 통지했다. 스페인 중앙은행(방코 데 에스파냐)은 얼마 전 스페인이 전례 없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며 암담한 입장을 표했다. 유럽연합(EU)은 국경을 봉쇄하고, 회원국들의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이하로 제한하는 ‘안정성장협약’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 팬데믹의 진원지가 되었다. 3월26일 현재 전국 사망자 4089명 중 2090명이 스페인에서 가장 풍요롭고 국제적인 도시인 마드리드에서 나왔다. 마드리드 내 확진자 규모만 따져도 1만5000명이 넘는다. 장례식장이 마비되어 시청의 지시로 아이스링크 ‘팔라시오 델 이엘로(Palacio del Hielo)’를 임시 영안실로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맹공격을 당한 이탈리아의 경우 가장 아름답고 발달한 도시 롬바르디아에서 세계 최다 사망자가 발생했다. 3월25일 기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사망자 수는 중국을 넘어섰다.

ⓒAFP PHOTO3월24일 영안실로 변한 마드리드의 아이스링크 시설로 구급차가 들어가고 있다.

스페인은 마드리드 노령인구 사이에서 코로나19가 대거 확산되었다. 매일 환자 수백 명이 포화 상태에 이른 국립병원에서 사립병원으로 이송된다. 코로나19의 비극으로 인해 현재 스페인 의료계는 완전히 통합된 상태로 운영된다. 스페인 사립병원회장 카를로스 루스는 “전적인 협조를 약속한다”라고 단언했다.

보건 분야는 3월14일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국가 통제하에 들어갔다. 최근 발생한 전대미문의 사태에 따라 모든 병원은 임시로 국가가 관할한다. 국립 의료계 8인, 사립 의료계 2인으로 구성된 ‘위기관리위원회’가 단독 지휘권을 가지고 환자들의 이송을 결정한다.

스페인 사립병원 460곳에는 의료진 26만7000명, 침상 5만1377개(공급 가능한 전체 침상의 32%)가 있다. 사립 집중치료실은 1172개에 달하며, 국립병원은 집중치료실 4627개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마드리드를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중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할 집중치료실이 거의 포화상태에 달했다. 현재 확진자 1만여 명이 집중치료실로 이송될 예정이다.

마드리드의 한 사립병원장은 “집중치료실로 사용될 공간을 마련했다. 수술과 일반 진료를 축소하고 병석을 확보해 국립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이송될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완료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치료비 감당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위기관리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은 “지금은 생명을 구할 때이지 돈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뛰어난 제도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스페인의 공중보건 시스템은 최근 몇 주간 사상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아무도 이 전투의 결과를 낙관하지 못한다. 2012년 우익 성향의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72억6000만 유로를 절약한다는 명분 아래 예산을 삭감했다. 의약품 부담금이 늘어나고, 불법 이민자들이 의료 시스템에서 배제됐으며, 약 2만명이 해고됐지만 스페인에서는 여전히 의료 서비스가 무료다.

10만 개 이상 병상을 갖춘 이 거대한 공룡을 먹이려면 국내총생산(GDP)의 7%인 800억 유로가 필요하다. 보건 시스템은 스페인의 자랑이자 국민 70%가 긍정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 거인의 걸음은 간혹 느리다. 몇몇 진료 과목의 대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탓에 약 1100만명이 사립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매일 밤 스페인 시민들의 따뜻한 박수를 받는 35만 의료인들은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은퇴한 의사 5만명과 새로 발령받은 인력이 당국의 부름에 응했지만, 수용능력이 부족해 사립병원의 협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국립병원 근처에 위치한 호텔 두 곳의 침실을 치료시설로 사용 중이다. 군 또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컨벤션센터에 침상 5500개 규모 임시 병동을 설치해두었다. 이곳에서는 추후 경증 환자를 수용할 예정이다.

백의의 영웅들에게도 바이러스가 손을 뻗치고 있다. 스페인 북부의 파이스바스코에서 간호사 한 명이 숨졌으며, 마드리드의 대형병원 ‘라파스 병원(Hospital de La Paz)’에서 128명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결과 52%가 양성으로 판정됐다. 현재 6000명이 넘는 의사·간호사·직원이 감염된 상태다.

사망자 중 다수가 80세 이상인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또한 노년층이 바이러스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코로나19는 조용한 유령처럼 양로원에 숨어들어 그들의 침실과 지하실을 임시 영안실로 바꿔놓았다. 가족들은 추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기나긴 관의 행렬을 지켜보고만 있다. 양로원 방역을 담당하는 군부대가 침상에서 사망한 노인들의 시신을 다수 발견하는 사례도 있었다.

노인 100여 명이 양로원에서 숨졌는데, 그중 절반은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몇몇은 구급차와 병원 이송을 간절하게 요청했는데도 병원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욜란다 씨는 “80세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헤수스 씨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으니 집으로 모셔가라고 들었지만, 양로원이 가장 안전한 곳일 것 같아 그곳에서 지내시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둘은 결국 부모를 잃었다. 현재 마드리드에는 노인 약 27만명이 살고 있으며 그중 30%는 홀로 사는 가구이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130명 중 25명이 숨진 ‘몬테 에르모소(Monte Hermoso)’ 양로원이다. 직원과 거주 노인 중 75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확진 판정을 받은 노인 중 그 누구도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다. 검찰은 부주의로 인한 과실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환자변호인협회(Asociaciónde Defensa al Paciente)’의 회장 카르멘 플로레스 씨는 “안전·청결·직원·자원이 부족한 극단적인 사례다”라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중인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 마드리드 주지사는 마드리드 중심부에도 의료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발표에 따르면 상당수의 양로원에 진단 키트가 없으며 직원들은 마스크 없이 근무하고 있다.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뉴스에서는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 노인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일부 지방 당국이 가장 취약하고 질병에 노출된 이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스페인 정부는 대한민국의 모범적인 코로나19 대처 방식을 참고 대상으로 삼았다. 양국의 인구, 평균연령, 기대수명(82~83세)은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바이러스와의 사투 결과는 사뭇 다르다. 스페인 정부의 강력대응 방침은 한국 정부에 비해 11일 늦게 선포되었다. 수십만 명을 진단한 한국의 방식은 위중한 환자에 한해 검사를 실시한 스페인 보건부의 대책과 상반된다. 스페인은 검사 키트가 부족했다. 현재 보건부가 실수를 인정하고 검사 키트 65만 개를 수입했지만 이마저 도착이 늦어지고 있다. 결국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은 인구 100만명당 약 5000회 검진했다. 같은 기준 스페인은 겨우 600회 검진했을 뿐이다.

2주간 외출 금지, 호텔에 휴업령

시민들은 비슷한 확진자 수치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사망자 수가 현저히 낮은 이유를 궁금해하지만, 이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유럽 국가 간 공동대책을 합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영국의 경우 공동대응에 합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한국에서 대구시장은 확진자 수가 50명을 넘어서자 “전례 없는 위기”라며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호소했다. 반면 스페인 정부는 지난 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마드리드를 비롯한 스페인 각지에서 12만명이 모이는 시위를 허가한 바 있다. 유럽 질병관리센터(ECDC)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날 여러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진행됐다. 같은 주말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VOX)’ 또한 마드리드 투우장에서 지지자 6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행사를 진행했다. 당 대표와 사무총장은 양성 판정을 받은 후 공식 사과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긴급 국회에서 “오늘 알고 있는 것을 어제 알았더라면 다르게 대처했을 것이다”라고 시인했다. 이날 2주간 외출을 금지하는 안이 통과됐다. 국회는 의석이 거의 빈 상태로 진행됐으며, 의회를 이루는 16개 정당에서 당 대표 한 사람씩만 참석했다. 의회에서 근무하는 발렌티나 세페다 씨가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의원들의 모니터를 소독하는 동안, 사회당 사무총장이 위기를 극복하자며 단결을 촉구했다.

ⓒEPA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3월14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스페인 전역에 있는 음식점 25만여 곳 역시 휴업에 들어갔다. 스페인은 인구 대비 주점 수가 175대 1일 정도로 외출을 즐기는 나라지만 길거리는 여전히 한산하다. 정부는 호텔에 휴업령을 내렸고 시민들 역시 질서 있게 이를 따르고 있다. 외출금지령은 ‘성주간(Semana Santa, 부활절 직전 일주일)’ 이후까지 15일 추가 연장되었다. 스페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나라다. 관광업계에 미칠 영향이 크리라 보인다.

3월26일 기준 확진자 수가 5만6000여 명으로 매일 증가하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해 우리 능력이 한계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매일 밤 발코니에 나가 박수를 치며 이 전투가 언제 종결될지 묻고 있다. 국영방송에서 참모총장인 미겔 앙헬 비야로야 중장이 “전시 상황 같은 지금 우리 모두 ‘군인’과 같은 자세로 바이러스에 대항해야 한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를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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