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탔다. 습관처럼 ‘닫힘’ 버튼에 손이 갔다. 멈칫했다. 접촉을 피하고 싶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 코로나19가 바꾼 작은 변화다. 전에는 저절로 문이 닫히는 6초를 못 기다렸다. 타자마자 닫힘 버튼에 손이 갔다. 빨리빨리 강박이 몸에 뱄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코로나19의 단기간 소멸은 어렵다고 했다.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파도 나온다’는 문화를 ‘아프면 쉰다’로 개선해야 한다.” 그의 말이 두고두고 떠올랐다. 우리는 아파도 직장에 나갔고, 아파도 학교에 보냈다. 나도 최근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쉬어야 하는데, 아파도 출근했다. 미련한 짓이었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달라져야 생존한다. 코로나19가 나와 너가 아닌, ‘우리’와 ‘공동체’에 눈뜨게 했다. 나아가 ‘전 지구적 삶’을 절감시켰다. 한국만 잘한다고 ‘코로나19 제로’ 시대가 되지 않는다. 일본,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전 세계가 함께 대처해야 팬데믹을 끝낼 수 있다. 암울하게도 ‘주간 코로나19’ 코너의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1~2년 지속될 거라고 예상한다.
길게 보며 새로운 일상을 실천하자. ‘잠시 멈춤’을 일상화하자.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자본주의 최전선 뉴욕시 횡단보도 보행 작동 신호기는 러시아워 때 작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현대인의 강박을 달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브루스 데이즐리, 〈조이 오브 워크〉).’
몇 초도 기다리지 못하고, 나만 보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 빨리빨리 증후군에서 이번 참에 벗어나자.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자. 잠시 멈춤이 어려운 이들이 많다. 임금이 깎이고, 일자리를 잃고, 가게 문을 닫는 이들이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으로 ‘빈곤 확진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방역은 한국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경제 대책은 한참 뒤처져 있다.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전 방식으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을 구할 수 없다. ‘재난기본소득’이든, ‘긴급재난소득’이든 이름이야 어떻든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동아줄이 되어야 한다.
엘리베이터 앞, 올라가기 버튼을 누르려다 말았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느리게 걸어 올라가며 ‘주간 코로나19’ 게스트로 나온 박한선 박사(인류학)의 말을 곱씹는다. “언론이 취약계층을 계속 강조해 얘기를 해줘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기 전에 살펴야 한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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