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확실히 바뀐 것 ‘코 푼 휴지 즉각 버리기’
  • 런던·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 호수 654
  • 승인 2020.03.1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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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대하는 영국의 조치는 유럽 국가와 사뭇 다르다. 국가적 치료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중증 환자만 치료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정부의 공식 지침에도 강제는 없다.
ⓒReuter영국 런던의 한 펍에서 3월17일 시민들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코로나19 대응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그에 대한 유럽의 반응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통에 이 질병이 얼마나 오랜 기간,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퍼져나가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도무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제껏 당연하게 살아온 방식으로는 살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점은 명백한 듯하다.

그중 하나가 영국인들이 코 푼 휴지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일 텐데, 영국의 경우 여자들이 휴지로 코를 풀고 나서 그 휴지를 바로 버리지 않고 옷소매에 밀어넣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고는 또 끄집어내어 사용한다. 긴소매 옷을 입은 경우에만 그러는 게 아니라 반소매도 마찬가지인데, 겨드랑이 쪽이 아니라 팔 바깥쪽에 쑤셔넣는다. 소매의 모양이 불룩해져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남자들도 코 푼 휴지를 주로 주머니에 넣는다.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던 예전 시절에 하던 습관이 지속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볼 때마다 낯설다. 그런데 영국 보건 당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지침 중 하나로 내놓은 게 ‘휴지로 코를 풀고 나면 바로 버리라’는 것이었으니, 이 생활습관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보건 당국의 지침은 결국 개인위생에 신경 쓰고 사회적 접촉을 피하라는 것이다. 즉, 손을 자주 씻고(비누로 30초 이상), 사람과 사람 간 2m 이상 간격을 두며, 가능하면 재택근무를 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는 것. 고위험군은 더 조심해야 한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대상은 70세 이상 노인과 이미 질병이 있는 사람, 임산부이다. 영국 정부의 입장은 영국이 유럽에서 문제가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보다 3주가량 늦게 진도가 나갈 뿐이라는 것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심지어 “많은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다”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3월18일 현재까지 전면적 휴교 조치나 영업 제한이 없다. 조만간 조치가 취해지지 않겠나 하는 게 일반적 예상이지만 아직까지 축구 경기처럼 대중이 많이 모이는 행사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증상이 미약한 사람의 경우 코로나19 검사를 해주지도 않는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대략 거주지와 성별 및 연령, 기저질환이 있는지만 발표할 뿐 기타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니 확진자의 동선을 알 수 없다. 확진자가 발생한다고 해서 그가 다니던 직장 등을 폐쇄하지 않는다. 어떤 지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를 막거나 어디론가 여행 가는 것을 전면 금지하지도 않고 있다.

살아온 방식 고수하려는 영국인들

이와 같은 영국의 조치는 코로나19를 대하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는 사뭇 다르다. 거의 전 국민을 자가격리 내지 그에 준하는 상태로 두거나 몇몇 업종만 빼고 영업을 아예 중단시키거나 국가 간 출입국을 막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프랑스·이탈리아·독일 같은 유럽 대륙 국가들에 비하면 감염병을 대하는 태도가 의아하고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EPA3월15일 영국 런던의 한 슈퍼마켓을 찾은 고객들이 텅 빈 화장지 판매 코너를 지나는 모습.

이러한 태도는 사회에 미치는 급격한 충격을 피하면서 감염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적 치료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위급한 중증 환자들만 치료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공식 지침에 따르면 확진자 또는 코로나19 증상을 보이는 사람 및 그 가족은 일단 7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심하게 악화되거나 다른 병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으면 확진자라도 아무런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 7일을 버텼는데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거나 의학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때서야 국가보험기구(NHS)에 연락하되, 이 경우에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면 NHS에 전화를 걸지 말라는 것이 공식 지침이다. 전화는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지침을 내렸으되 강제는 없다. 이런 조치를 취해서 질병의 확산을 막고 국가의 치료 역량을 중증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을지는 사실 상당 부분 국민들이 정부 지침을 얼마나 충실히 따를 것인가에 달려 있다. 말하자면 시민의식이다. 영국 정부가 선택한 ‘유럽과는 상이한 방식’이 결국 영국 사회의 시민의식에 맞는 방법이었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적어도 영국인들이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을 꽤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들은 급격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먹는 것도 그러하다. 직장인 여섯 명 중 한 명은 지난 2년간 같은 메뉴로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늘 똑같이 살아가는 듯 보이는 영국인들의 삶에서, 특히 서민의 낙은 스포츠와 펍(pub, 영국식 선술집), 그리고 1년에 한두 차례 가는 여행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영국인들의 사는 모습을 바꾸라고 강요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가 중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펍에는 가능하면 출입하지 말라고 한다. 여행은커녕 출장도 가기 어려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2016년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가 브렉시트 찬성으로 나타났을 때 영국인들이 가장 우려한 바는 그동안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서 누리던 EU 내 여행 등 이동의 자유가 계속 보장될 수 있는지였다. 이미 유럽의 각 나라들은 국경을 통제하고 불가결한 사유가 아니면 여행을 금지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니, 브렉시트가 완결되기도 전에 바이러스가 여행의 자유를 막아버린 셈이다.

게다가 영국인들이 소비하는 과일이나 채소, 치즈, 와인 등 많은 식료품들은 유럽에서 수입한다. 당장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이지만, 영국은 지난 1월31일 공식적으로 EU에서 탈퇴한 데 이어, 올해 12월31일에 종료되는 이행기(Transition period) 안에 유럽 여러 나라들과 무역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영국 및 유럽 각 나라들이 한동안 무역협상을 진행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늘 먹던 것들을 먹고, 휴가 때는 유럽 대륙의 어딘가 날씨 좋고 물가 싼 곳으로 여행을 가고, 일과 후나 주말이면 펍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수다를 떨고, 늘 하던 대로 사는 것. 가뜩이나 브렉시트로 불안정해진 영국인들의 일상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더 불투명해져버렸다. 물론 영국인들만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시절은 아닌 듯하고, 거의 전 세계인들이 마찬가지로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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