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민폐’인 시절이다. 평소보다 더 꼼꼼히 위치 기반 애플리케이션 스웜(swarm)에 방문 장소를 체크인하고, 만난 사람과 시간을 메모해둔다. 소액결제도 되도록 신용카드로 쓴다. 기억력을 믿기보다 기록을 남겨놓으면 역학조사관의 수고를 덜 수 있지 않을까. 홀로 조심한다고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만에 하나 발생할 상황에 대비하는 마음이다.
지난해부터 4월을 기다렸다. 〈시사IN〉에도 2018년 안식월 제도가 도입됐다. 10년을 꼬박 일하면 한 달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항공권과 비자, 한 달간 지낼 숙소를 마련했다. 가이드북을 비롯해 ‘뉴욕’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이면 무조건 사들였다. 발병 초기 코로나19를 취재하면서도 이 신종 바이러스가 내 일정을 흔들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가겠다고 버텼지만 기저질환이 발목을 잡았다. 이번에도 만에 하나였다. 나는 만성 호흡기 질환자다.
여행 계획이 취소되며 여기저기 앓는 소리를 해댔지만 이 얼마나 한가한 소리인가. 한 직장에서 10년을, 심지어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큰 ‘특권’인지 요즘처럼 매일 깨닫는 때도 없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일상이 무너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엄마는 하루 6시간 파트타이머에서 ‘제로 아워(zero hour)’ 노동자가 됐다. 고용주가 원하는 시간에 나가서 원하는 시간 동안만 일한다. 당일이나마 정확한 근무시간을 알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근무시간이 0시간인 날이 점차 늘어간다. 월급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택배 포장 일을 하는 올케는 두 아이의 학교와 학원,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아예 일을 그만둬야 했다. 30인 미만 사업장이라 가족돌봄휴가 제도를 쓸 수 없었다.
지역사회 집단감염이 시작되며 코로나19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불안정 노동이 키운 감염병 폭탄의 씨앗은 ‘코리아’와 ‘한마음’ 속에서 자랐다. 얼굴 모르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의 동선을 볼 때마다 손끝이 저릿하다. 해외여행 이력이 없고 출퇴근으로 반복된 단순한 동선마다 계급이 선명했다. ‘재택근무’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얼마나 멀고 또 사치스러웠을까. 한국 사회의 취약함이 폭로된 장소에 질문이 남았다. 우리가 이 질문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코로나19가 지나간 후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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