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지난 3월4일,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한 해 나라 살림에 필요한 예산의 전체 규모와 용도는 그 전해(올해 예산의 경우라면 2019년) 말에 확정된다. 그 예산이 집행되는 도중에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정부 지출을 늘릴 필요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서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올해의 ‘예기치 못한 상황’은 코로나19의 엄습이다.

기획재정부 추경 방안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실제로 증가시키는 정부 지출(세출 확대)은 8조5000억원 정도다. 이 돈으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소비를 부양하며 감염병 환자 발생으로 손실을 입은 의료기관에 보상해야 한다. 정부는 3월17일까지 국회로부터 추경안을 승인받을 계획이다.

추경안은 나오자마자 거센 비판에 휩쓸렸다. 야당과 거대 언론은 총선을 앞둔 선심성 예산 아니냐며 걱정했다. 국가부채의 증가로 나라 살림이 거덜 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전혀 새롭지 않다.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주장이다. 정부·여당 쪽의 일부 인사들도 추경안을 비판했다. 예컨대 8조5000억원 정도의 세출 확대로는 전례 없을 정도로 마비되어버린 경제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정말 파격적인 비판은 ‘세출 확대의 방법’, 즉 ‘늘어난 정부 지출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제기되었다.

정부의 추경안이나 심지어 ‘명절 민생대책’ 등을 살펴보면, 거의 어김없이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 예산이 편성되어 있다. 그 돈은 마치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직접 ‘지급’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그 예산의 대부분은 대출이다. 예컨대 어떤 자영업자가 은행에서 1000만원을 정부 보증으로 빌린다면 그 액수 중 일부가 ‘정부 지원책’에 포함되어 발표되는 식이다. 이번 추경안도 그렇게 편성되어 있다.

소비를 부양하기 위한 예산도 3조원가량 책정되어 있으나 현금으로 주지는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통제 가능한 상품권으로 지급한다. 기획재정부는 ‘늘어난 정부 지출’을 현금으로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추경안이 나온 다음 날인 3월5일, 그가 반기를 들었다. ‘현금 직접지급’을 요구했다. 정부·여당의 중진이자 대통령 후보 물망까지 오르내리는 비중 있는 인사다.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갑). 그로부터 한국의 재정 운용 관행을 뒤엎는 ‘과격한’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코로나19의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 의원이라 그런 것일까? 3월10일, 한반도 동남권 교통 허브인 동대구역의 넓은 역사에 단 두 명의 승객이 돌아다니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면서 김부겸 의원 사무실이 있는 범어네거리로 향했다. 마스크를 쓰고 택시를 탔다.

이번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여당의 중진이, 그것도 대선 후보 물망까지 오르내리는 사람이 격하게 반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렇게 실망스러웠나?

오면서 보지 않았나? 대구·경북은 사실상 전면 휴업 상태다. 전국이 다 그렇지만 특히 격심하다.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인생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동안 근근이 움켜쥐고 있던 동아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횡액을 맞았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동네에 역병이 돌아서 경제활동이 멈춰버리는….
추경안을 처음 봤을 때 기획재정부 등 입안자들이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경 규모가 11조7000억원이라지만 (정부가 당초 계획에 비해 실제로 지출을 늘리는 규모, 즉 세출 확대는 8조5000억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 예산 중 대부분이 돈을 저금리로 빌려주거나(초저금리 대출), 빨리 빌려주거나(긴급융자), 빌리는 데 정부 보증을 서주는(특례보증 확대) 용도다. 횡액을 당한 사람들한테 ‘아, 예…. 저기 가면요, 금융기관 대출됩니다. 보증서 끊어 내시고요∼’, 이렇게 말하겠다는 거다. 순간적으로 열받았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을 돌아다니기가 힘들 것 같다.

한마디로 고통스럽다. 대구는 철시 상태다. 두 가게 건너 한 가게가 아예 문을 닫았다. 문 연 가게도 마찬가지다. 저녁 7시 넘어서 가령 테이블 열 개 중 서너 곳 정도엔 손님이 앉아 있어야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 것 아닌가. 지나가면서 보면 한두 테이블에도 고객이 있을까 말까 하다. 감히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 오늘 저녁 식사를 예약하려고 어떤 식당에 전화를 했는데, 이번 주에도 논다고 하더라. 지난주에도 그랬다.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쉬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 주인이 일하더라도 종업원을 2~3명은 둬야 한다. 주방장, 주방보조, 홀 서버 등. 인건비만 매월 700만원쯤 든다. 이 정도면 월세도 대부분 300만원쯤 된다. 매달 1000만원이 어떻게든 날아간다. 쉰다고 임차료를 깎아주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네가 자영업을 골랐으니 너 자신이 책임져’라고만 할 것인가. ‘착한 임대료’ 운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때는 ‘조물주 밑에 건물주’였는데, 요즘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다. 자영업자는 3~4개월 놀면, 목돈 3000만~4000만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쌓인다. 정부가 임대료를 깎아주는 건물주에 대해 ‘임대료 인하의 절반은 연말에 세금에서 까주겠다’고 했는데, 그런 식이라면 연말까지 어쩌란 말인가. 얼마나 한가한 소리냐? 시민들은 그전에 다 죽어버릴 텐데. 업주들을 만나면 ‘의원님은 그때그때 봉급 나오니까 몰라요’라고 한다. ‘너는 때 되면 돈 나오는 구석이 있잖아’라는 말이다. ‘코로나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말도 떠돈다. 이런 상황에서 ‘빌려서 해결하라’는 식의 추경안이 나오니까 울컥해버렸다.

ⓒ시사IN 신선영3월10일 저녁 다양한 식당과 상점이 모여 있어 붐비던 대구 동성로 거리(위)는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했다.

상공인에 대한 정부 지원은 대부분이 대출 형식으로 시행되어왔다. 이번 추경안이 놀라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어떤 경우엔 대출 역시 긴요한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소상공인 처지에서는 결국 빚이 늘게 된다. 수많은 분들이 이번 사태로 생업에 타격을 입으면서 당장 소득이 사라졌다. 그 소득은 나중에 회복되지도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빚이 늘어난다고 생각해보라.
더욱이 대출 역시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4대 보험 가입’ 등 일정한 자격과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골목상권에서는 4대 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주가 드물다. 영세 업주가 보험료의 50%를 내기 힘들 뿐 아니라 직원들 역시 원치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고용보험의 경우, 자영업자 중 가입률이 1%나 되는지 모르겠다. 상당수 자영업자들에겐 정부 지원 대출도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진짜 영세한 사업자와 직원들은 대출받기도 힘들다.

이번 추경의 경우, 주로 저소득층들에게 3조원 규모의 상품권(지역사랑상품권,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하는 예산을 포함하고 있다. 이 상품권이 돌면 소상공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품권을 안 주는 것보다는 주는 쪽이 좋다. 그러나 상품권이 유통되어 시장에 온기를 주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빨라도 서너 달은 지나야 한다. 소비자의 경우에도, 쿠폰으로 받았을 때 (현금으로 받는 경우에 비해) 바로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밥을 사먹지 않았다고 해도 (나중에 쿠폰을 받았을 때) 두 그릇을 먹는 것도 아니다(쿠폰은 모두 500만명에게 최대 22만원어치를 지급한다. 전통시장과 지역 상권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온라인 구매, 임차료, 병원비 등 현금성 지출 등엔 당연히 사용할 수 없다). 당장 소득이 사라져버린 가계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현금 지급’을 주장한 것인가? 이번 추경의 지출 방법보다 차라리 전국의 350만 중소 상인에게 임차료, 경영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현금 100만원씩 지급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번 추경에서 ‘소상공인·중소기업 회복’으로 책정된 예산이 2조4000억원(각종 대출 1조7000억원+피고용자 1인당 7만원인 인건비 지원, 임차료 인하, 전통시장 공동 마케팅 지원 등에 7000억원)이다. ‘지역경제, 상권 살리기’에도 8000억원(대출, 상품권 발행, 세금 중 일부 지원 등의 방안으로 구성)이 들어간다. 합치면 3조2000억원인데, 시민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에 비해 350만 중소 상인에게 100만원씩 현금으로 주면 모두 3조5000억원이다. 추경에서 내놓은 방식보다 몇 배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게 국가가 세금을 제대로 쓰는 방법이다.

국가 예산으로 시민 개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한다는 발상엔 좀 위화감이 든다. 전례가 있는가?

있다. 예전에 농민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부채 탕감은 ‘현금 직접지급’이나 마찬가지였다. 농민들이 진 빚을 없애준 것이니까. 최근에도 지난 포항 지진 당시 각 가구에 ‘전파’와 ‘반파’로 나눠 현금을 지급했다. 이런 식으로 해야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내가 어려울 때 국가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구나’ ‘나는 국민이고 이 공동체의 일원이구나’ 하는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오늘(3월10일) 이낙연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와서 홍의락 의원(대구 북을) 등과 함께 지역주민 간담회를 열었다. 거기서 주민들이 그러더라. 정부에서 돈 빌려준다고 해서 가보면 ‘아이고, 신용등급이 나쁘네요. 대출부터 갚으세요’ 이럴 거라고.

ⓒ시사IN 신선영대구의 대표 시장인 중구 서문시장(아래)의 노점 상인들은 대부분 휴점에 들어갔다.

3조2000억원(추가경정예산에서 ‘소상공인· 중소기업 회복’과 ‘지역경제, 상권 살리기’를 합친 금액)과 3조5000억원(350만 상인에게 100만원씩)을 비교하면서 후자가 낫다고 했다. 결국 세출 확대(8조5000억원) 자체를 더 늘릴 필요 없이 주어진 예산 내에서 항목만 조정하면 된다는 이야긴가?

추경에서 채택된 세출 확대 규모(8조5000억원)는 현안 해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행 법률 아래서는 국회가 정부 제출안의 총액을 늘릴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추경을 국회에서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덮어놓고 추경안 자체를 휙 던져버릴 수는 없다. 비록 총액 규모 내에서겠지만, 현장 상황과 요구를 반영해서 항목을 변경하고(예컨대 대출을 현금 지급으로), 신설하고, 부족하면 또 하고, 이미 그 용도가 정해진 예산 중에서 재난에 관련된 부분은 빨리 집행하고…. 현실에서는 이렇게 나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추경에서부터 직접적인 현금 지급 방안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하고 있는데.

일단 추경을 통과시켜 급한 불을 끈 다음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 세계경제가 당분간 침체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재난기본소득은 민생 구제와 경제 살리기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김경수 지사의 방안이 모든 시민에게 일률적인 금액을 지급하는 방향인 반면 김부겸 의원은 일단 자영업자와 일용직 등 불안정 노동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의견대로 추경 항목을 바꾸면 정부 지출이 불가피하게 늘어나지 않을까. 우리나라 재정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세입 내에서 정부 지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원칙)’을 대단히 중시한다. 지출 증가엔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국가 살림에서 재정건전성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원칙이다. 그러나 ‘재정건전성 자체를 위해 모든 것(예컨대 민생)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도그마(맹목적 신념·신앙)에 불과하다. 행자부 장관 시절 뼈저리게 느꼈는데, 기획재정부는 모든 국가 운영의 틀에서 재정건전성을 최우선으로 둔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예컨대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40%를 넘기면 안 된다고 고집한다. 그런데 이 ‘40%’라는 수치가 어디서 나왔나? 어떤 이론적 배경이 있나? 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200%를 훌쩍 넘어서는 일본 정부의 경우, 예산의 20~30%를 이자로 지급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당연히 안 된다. 선진국 가운데 한국만큼 재정이 건전한 나라가 또 있나? 2018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들의 국가부채비율(국가부채/GDP)을 찾아봤는데, 한국이 38.9%에 불과한 반면 일본 214.6%, 이탈리아 142.5%, 프랑스 110%, 미국 99.2%, 독일 66.1% 등이었다.

재정은 건전할수록 좋다. 국가의 빚이 너무 많으면 ‘진짜 어려울 때’ 필요한 공공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누가 빚 많은 자(혹은 국가)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려 하겠는가.

그 ‘진짜 어려운 시기’는 도대체 언제인가? 나는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에게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대출 지원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감염병이라는 도적떼가 온 국민의 살림을 거덜 내고 있다. 결국 소득이 사라져버린 시민 개개인들이 각자 빚을 내서 먹고살거나, 아니면 국가가 빚을 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재정건전성 원칙 때문에 빚을 낼 수 없습니다. 각자 알아서 빚을 내 해결하세요”라고 말해도 되는가? 국가와 국가 재정은 왜 존재하는가?

2017년 6월부터 2년여 동안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기획재정부의 ‘도그마’를 경험했다고 말했는데.

지방재정 자립 문제로 기획재정부와 지긋지긋하게 싸웠다. (전체 세금 가운데) 지방자치단체가 걷어서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지방세)이 얼마 되지 않는다. 국세(중앙정부의 세입)와 지방세 비율이 2018년 기준으로 78대 22쯤 될 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이 비율을 장기적으로 60(국세)대 40(지방세) 정도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렇게 지방에 돈을 주고, (그 돈을 사용할) 권한과 사무도 중앙에서 지방으로 옮겨 자치 권한을 강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끝까지 안 된다는 거다. ‘문재인 정권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통하지 않았다.

ⓒ시사IN 신선영3월11일 육군 50사단 육군현장지원팀이 대구 달성군 논공교회 인근 상점과 빌라 등에 대한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반대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으로 권한을 옮기면 돈을 방만하게 쓰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능력도 없고…. 지금도 국세 수입을 지방교부금 등으로 지역에 이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총조세수입(국세와 지방세를 합친 액수) 기준으로 따지면, 지방정부들이 60, 중앙정부는 40 정도를 쓴다. 그래도 한사코 (세금을 걷고 어디에 쓸지 정하는 권한을) 지방으로 넘겨주면 안 된다고 한다. 결국 타협하고 타협하고 또 타협해서, 대통령이 다시 관심을 표명하고 총리도 나선 덕분에, 겨우 해낸 것이 지방소비세율을 당시 11%에서 21%까지 높여가기로 하는 정도였다(지방소비세율은 부가가치세액의 일부로 책정된다. 예컨대 지방에서 부가가치세로 모두 100억원이 걷혔는데, 지방소비세율이 21%라면 21억원이 지방정부의 세입이 된다). 담배 가격에 포함된 개별소비세(국세) 중 일부를 지방 소방기관의 소방장비나 안전시설 재원으로 돌린 것도 어려운 타협의 결과였다.

보수 성향 언론과 야권은 이번 추경에 대해서도 ‘총선 대비 선심성 예산’이라고 비난한다. 그 방법을 대출에서 현금 지급 쪽으로 옮긴다면, 엄청난 공세가 퍼부어질 텐데?

추경 때문에 대구·경북 시민들의 태도가 싹 돌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대구·경북 지역은 야당의 텃밭이다. 그 텃밭이 초토화되어 절규하고 있다. ‘살려달라’고. 여기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야당이 ‘선심성 예산’ 같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도 ‘추경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에 대한 감사 성명을 내기도 했다. 야권이 선심성 예산이라며 국회 통과를 늦추면 오히려 국민적 항의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추경안이 더 빨리 처리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야가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루면, 코로나 재난에 대한 실질적 대응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생색내지 않겠다. 국회에서 우리의 진정성이 통하고, ‘여야가 같이 대구·경북과 이 나라를 살리려 했다’고 인식되면 좋겠다.

전국의 확진자 중 90% 가까이가 대구·경북에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엔 특별한 대책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확진자가 나온 곳과 다녀간 건물을 폐쇄하고, 공장 닫고, 식당 문 닫고, 외국 바이어들도 들어오지 못한다. 한마디로 초토화된 것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일용직 등 가장 가난하고 약하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대책이 없다.
지난번에 추경 예산안을 비판하고 난 뒤 큰 변화가 있었다. 처음엔 민주당 지지층들로부터도 비판받았는데, 며칠 사이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여러 지자체장이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해주었다. 시범적으로 지금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대구·경북 지역을 배려해달라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3월11일 추경 예산 돌입)에서 건의하려 한다. 진짜 꼭 해달라고.

건의 내용은?

영세 소상공인 18만명에 대해 3개월 동안 월 100만원씩 지급, 일용직 근로자 6만 세대에 3개월 동안 4인 가족 최저생계비 123만원 지원, 택시 종사자 1만5000명에게 월 100만~150만원 지급 등이다.

엄청난 재원이 들 것 같다.

(3개월 동안) 8400억원 정도다. 그런데 이번 추경 예산에 이미 ‘대구·경북 지역 특별지원’ 항목으로 6200억원이 편성되어 있다. 이에 2000억원 정도를 더 얹어달라는 요청이다.

ⓒ연합뉴스홍남기 경제부총리가 3월1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여당에 대한 대구·경북의 질타가 뜨겁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될 수 있다고 보나?

하늘에 달린 거다. 대구 시민들에게 달린 문제다. 시민들은 박근혜 전 정부로부터 상처받았고, 문재인 정부로부터 냉대받는다는 일종의 섭섭함과 오해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대구의 미래 산업, 즉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그림이 안 나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져버렸다. 시민들은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 만큼 화가 나 있다. 그러던 차에 ‘대구 봉쇄’ 같은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이 당 대변인으로부터 나오고, 심지어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이 ‘대구 손절’이니 ‘투표를 잘못해서 그렇다’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증오로 만들었다. 이낙연 선대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거친 소리가 많이 나왔다. ‘손절’이라니! 우리 당의 근본적 가치와 민주공화국 정체성에 대한 믿음에 반하는 발언이다.

정부·여당 지지자들과 대구의 정서가 많이 다를 텐데, 가끔 고래 싸움에 낀 새우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민주당 지지자들은 내가 대구에서 좀 화끈하게 행동하길 바란다. 대구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각을 세우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능력이 되든 안 되든 이 공동체와 국가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내 존재 이유다. 분노를 토해내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되고, 어떻게든 문제를 풀면서 밀고 나가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가 시민들이 ‘당신은 여기까지야’라고 하면, 그쳐야 한다. 양쪽에서 욕을 먹는 게 나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개인의 정치적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 대구에서 민주당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991년에 제도 정치권에 들어온 뒤 김대중, 노무현, 이기택 같은 선배들을 모셨다. 그들이 몸부림치는 것을 봐왔다. 내가 어떻게라도, 내 힘의 한계까지는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40대 중반, 50대 초반의 출마자인 내 후배들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대구·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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