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에서 보내는 안전안내문자가 ‘폭주’하고 있다.

경기도 과천시청이 보낸 긴급재난 문자메시지가 서울 강남역에서 울려 퍼진다.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쏘아올린 메시지가 서대문구에 있는 스마트폰에 도착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수도권 거주민이라면 흔히 겪는 일이다. LTE 전파 전달 범위가 최대 15㎞에 이르러 행정경계 너머까지 전달된다. 2월19일 신천지 교인 집단감염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면서 이런 사례가 늘었다.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따르면 2월20일 하루 동안 전국에서 발송된 긴급재난문자는 36회였다. 다음 날 108회까지 급증했던 문자는 2월29일 356회 발송되며 정점을 찍었다.

이 중에는 ‘긴급’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내용도 섞여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는 3월11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방역소독을 더욱 철저히 하는 등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인근 정읍시는 3월2일 “시민 여러분! 코로나19 감염병은 사람 간 접촉으로 이루어집니다. 최소한의 이동이 최선의 예방입니다”라는 내용을 보냈다.

감염병 사회재난에 대비한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권한과 기능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기점으로 확대됐다. 보건복지부가 펴낸 〈2015 메르스 백서〉(2016)는 메르스 사태 당시 지방정부의 역량에 대해 “감염병 관련 지방자치단체 내 조직 구성과 운영, 대응 인력의 전문성 및 대응 역량 강화와 교육·훈련 방안에 대한 논의 부족”을 지적한다. 이에 따라 실무 매뉴얼 보강, 관련 인력 확충, 광역 단위 감염병관리지원단 설치(지역거점병원 위탁운영) 등 지난 5년간 감염병 예방 프로세스는 개선되어왔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서 각 지자체장은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감염병 ‘방역’과 ‘예방’을 위해 집회를 제한·금지하거나 감염병 의심자를 입원·격리시킬 수 있다. 강제처분 등 행정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자체장의 이러한 권한은 신천지예수교라는 특수집단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주목받았다.

대표적인 장면이 2월25일 경기도의 신천지 과천총회본부 ‘긴급 강제역학조사’다. 이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도내 신천지 신자 명단을 확보하겠다며 과천총회본부를 직접 찾아 명단을 확보했다. 경기도가 확보한 명단과 신천지가 사전에 질병관리본부에 제출한 명단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경기도의 강경 대응이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때부터다. 당초 대구시는 신천지가 제출한 교인 명단과 대구시 자체 조사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도의 긴급 강제역학조사 이후 대구시에서도 재조사 요구가 거셌다. 결국 2월28일 대구시는 재조사 끝에 명단이 일부 잘못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날 권 시장은 “허위 진술로 감염병 관리 대책에 혼선을 준 이들의 고발을 검토하겠다”라며 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이전까지 지자체 역할이 질병관리본부의 방침을 잘 수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신천지 집단감염 사건 이후 여론이 지자체장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바뀐 셈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월1일 이만희 총회장을 비롯한 신천지 주요 지도부에 대해 ‘살인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도 특정 집단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원하는 여론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지자체장의 권한 확대 요구 잇따라

지자체장의 ‘권한’을 늘려달라는 요구도 뒤따랐다. 이전까지 역학조사관을 따로 둘 수 없었던 기초자치단체의 반발이 특히 컸다. 방역과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수원시나 용인시처럼 광역시급 인구를 가진 기초자치단체는 별도 역학조사관을 둘 법적 근거가 없었다. 결국 2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기초자치단체도 9월부터는 역학조사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공적 마스크 약국 유통이 당초 일정보다 늦어지면서 기초자치단체가 직접 마스크를 나누어주거나 물량을 확보하는 사례도 늘었다. 긴급재난문자를 통해 마스크를 구할 수 있는 경로를 안내하기도 했다. 또 2월23일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확진환자 이동경로 동선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가 질병관리본부에서 지자체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지자체별 확진자 정보공개는 당면 과제가 되었다.

과열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여기서 발생했다.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별로 동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이’ ‘더 자세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지역이 등장했다. 3월9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확진자 이동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내밀한 사생활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노출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한다”라는 성명서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연합뉴스3월1일 권영진 대구시장(가운데)이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코로나19 대응지침(지자체용)’ 매뉴얼에 따르면 확진환자 동선 공개 범위는 ‘시간적·공간적으로 감염을 우려할 만큼 확진환자로 인한 접촉자가 발생한 장소’로 제한되어야 한다. 시민 불안감을 이유로 지자체마다 각기 다른 기준으로 정보가 넘치는 것도 문제다.

확진자의 동선을 알아내는 방법은 크게 면접조사와 비면접조사로 나뉜다. 확진자 구술(면접조사) 외에 GPS,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카드 사용내역 등 비면접조사도 중요한 단서다. GPS 정보는 관할 경찰에 요청해 지자체가 정보를 바로 받아볼 수 있지만 DUR과 카드 사용내역 조회는 시·도 방역관이 질병관리본부에 요청해야 받아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초자치단체는 DUR과 카드 사용내역에도 지자체가 직접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과도하게 풀릴 경우 개인정보 침해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물론 감염 의심자가 방역망을 피해 숨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메르스 사태를 분석해 발표한 ‘중앙과 지방정부 및 의료기관에 대한 감염병 관리체계 강화 방안’ 연구보고서는 “휴대전화, 신용카드 거래, 실시간 의료 이용 기록에 대한 전자감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으며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조언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개인의 자유권 침해 문제는 공동체 내 감염병 예방이라는 원칙에 밀려 제대로 문제 제기조차 되지 못했다. 확산 속도와 범위가 더 빠르고 넓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개인 권리침해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이미 중앙정부에 요청하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속도전’을 강조하는 지자체의 요구가 다소 우려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정보공개 경쟁이 자칫 지자체가 해야 할 더 본질적인 일, 즉 보건소로 대표되는 ‘현장’을 소홀히 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진짜 중요한 일은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 법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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