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3월8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전 국민에게 1인당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자는 주장이 나온다. 코로나19의 경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다.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이 붙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진보적 시민단체나 소수 정당뿐만 아니라 유명 기업인, 여당 지방정부 수장도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한다. “비상 시기에는 급진적 정책이 필요하다”라는 게 이들의 공통 인식이다.

재난기본소득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때는 2월 마지막 주였다. 2월25일 기본소득당이 “대구·청도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설정하고, 일시적으로 기본소득 지급하라”는 논평을 냈다. 당시 나온 제안은 무게중심이 ‘방역’에 있었다.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사람들이 일을 나가지 않고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있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의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같은 제안을 하자 재난기본소득은 더 유명해졌다. 이 대표는 2월27일 페이스북에 “코로나 극복 정책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도 시급하게 필요하다”라며 재난기본소득을 언급했다. 비슷한 제안을 여러 차례 페이스북에 올린 그는, 2월29일 “코로나 경제위기에 재난기본소득 50만원을 어려운 국민들에게 지급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했다. 이 대표는 청원에서 “경계에 서 있는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1000만명”을 재난기본소득 수급 대상으로 들었다.

미래통합당에서도 이재웅 대표 제안에 대해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황교안 대표가 앞장섰다. 3월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대표는 “기존의 지원 대책, 기존의 보조금으로는 역부족이다. 한 기업인은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저는 이 정도 과감성이 있는 대책이어야 우리 경제에 특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3월8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기자회견을 열자 재난기본소득 논의는 새 국면을 맞았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가 정부와 국회에 한 제안은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을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총 51조원을 전 국민에게 나눠주되 고소득층에게 지급된 재난기본소득은 내년도 세금으로 환수하는 계획이다. 김경수 지사는 이렇게 환수할 금액과 “경제활성화로 늘어날 조세수입 추정치 8조~9조원”을 더하면 정부 재정 부담은 완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황교안 대표의 긍정적 언급 외에 별다른 반응이 없던 미래통합당은, 김경수 지사의 제안이 나오자 강하게 비판했다. 3월9일 이준석 최고위원은 “소득주도성장과 4대강을 짬뽕해서 나온 희한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심재철 원내대표는 “총선용 현금 살포”라며 비판했다. 김용태 미래통합당 의원은 초점을 액수가 아니라 지원 방식(돈 분배)과 대상(전 국민)에 맞춰 비판한다. 3월12일 페이스북에서 그는 “파급효과, 전달 속도, 경제 주체에 대한 시그널”을 봤을 때 감세가 돈 분배보다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그는 이 혜택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십조원을 국민에게 나눠줘도 지금은 그 돈을 쓰지 않는다. 그사이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은 망한다. 이들이 떨어져나가면 나중에 사태가 진정되고 돈을 쓰려 해도 쓸 데가 없어진다. 법인세, 부가가치세를 깎아줘서 이 사람들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달리 생각한다. “감세 효과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한 감세는 세금을 꽤 내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인데, 재난으로 생계 위협을 받는 사람들 중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가령 김용태 의원이 제안한 자영업자 중심 감세 정책은, 이재웅 대표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예로 든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을 즉각 구제하지는 못한다. 오건호 위원장은 이들이야말로 생계 위협을 받는 재난 피해자라고 본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포용국가비전위원회 김민석 위원장(왼쪽 여섯 번째)이 3월12일 ‘코로나19 재난극복소득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재난 복지 효과 내려면 선별 지원해야”

그런데 이런 이유에서 오 위원장은 김경수 지사가 제안한 재난기본소득에 비판적이다. 그는 “재난의 피해는 계층에 따라 다르다. 재난을 맞은 대상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 ‘재난 복지’의 정책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줄 경우 ‘상징성’도 떨어지고 ‘예산’도 아쉬워진다는 게 오 위원장 생각이다.

김용태 의원과 오건호 위원장이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보는 대상은 다르다. 하지만 ‘피해가 더 큰 쪽을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는 관점은 같다. 현재 구체적으로 제시된 재난기본소득 논의는 대체로 ‘선별형’이다. 지역이나 직군, 소득수준에 따라 나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3월9일 “재난기본소득을 일단 대구·경북 지역에 한정해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10일 “대구·경북의 소상공인과 일용직, 택시 종사자”들에게 실험적으로 적용하자고 제안했다(38~43쪽 기사 참조). 김민석 후보, 김영배 후보 등 원외 민주당 총선 출마자 52명이 결성한 ‘코로나19 재난극복소득 추진모임’도 선별 지원 형식을 선호한다. 이들이 제안하는 ‘재난극복소득’은 수급자가 ‘사회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6개월 내 자격을 잃었거나 체납 상태인 경제활동인구’로 정해져 있다. 김영배 후보는 “추후 (전 국민을 지원하는) 기본소득 형식을 도입할지도 논의 중이다. 우선 급히 지원할 사람을 돕자는 취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상을 선별하는 재난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정의에 맞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본소득이란 개별 국민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주는 것이다. 특정 지역이나 직군, 소득수준에 맞는 이들에게 지급하는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김경수 지사의 안 역시 엄밀히 말하면 기본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회성 지급이기 때문에 ‘정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인지 아닌지가 중요할까? 김경수 지사의 재난기본소득 논의 과정에 참여했던 경남연구원의 이관후 연구위원은 “(경남 제안도) 정확히는 ‘재난수당’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전 국민에게 다 준다’는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기본소득이라고 불렀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본소득의 여러 요건 가운데 핵심은 ‘보편성’이라고 봤다. 이관후 연구위원은 ‘보편적 재난기본소득’을 택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를 말했다. 우선 피해를 보는 대상이 광범위하다. “기초생활 수급자나 노인뿐만 아니라 장사하는 분들 거의 대부분이 피해를 본다.” 이들 중 어느 쪽이 피해를 많이 입었는지 선별하기 어렵다. 같은 자영업자라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매출이 70%가 줄었지만 생계에는 지장이 없는 사람과, 매출 30%가 줄어들어 끼니를 걱정하게 된 사람 중 누가 더 재난 피해자에 가까울까? 어떤 기준을 세워도 논란 여지가 있다. 이 연구위원은 “긴급한 상황에서 선별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떻게든 구멍이 생긴다. 다수 직군이나 직업이 빠지게 된다. 추후 사태가 진정된 후 기준을 세워 환수하는 방식으로 ‘정산’하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저축만 할 것이다’ ‘온라인 쇼핑만 돈을 번다’는 비판에 대해 그는 “절반은 기한이 있는 지역 화폐로 지급하고, 지역 상권과 연계해 할인 혜택을 주자”라고 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4인 가구 기준 400만원인데 부동산 투기는 어렵다. 주로 생활용품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제공3월7일 드라이브 스루 코로나19 선별검사센터를 방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운데).

김경수 지사의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를 대비한 정책이다. 밖에 나가 일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게 하는 방역 대책이 아니라, 돈을 쥐여줘서 쓰게 만드는 경기부양책이다. 3월10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김 지사는 ‘코로나19 이후’ 닥쳐올 수 있는 악순환을 이렇게 봤다. “지난 두 달 동안 경제가 얼어붙어 있었으니까 소득이 없지 않습니까? 특히 자영업자라든지 거기서 일하는 종사자들 같은 경우에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거예요. (…) 거리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쓸 수 있는 돈을 사람들에게 주지 않으면 경제는 살아나기 어렵다고 보는 거죠.” ‘세계경제’ 위기를 강조하기도 했다. 급한 불은 추경으로 끄더라도 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는 장기 불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남의 재난기본소득 논의에 참여한 이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그 결과 51조원 규모의 정책을 내놓았다.

“특정 업종만 지원하는 것은 불공정”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이 지사는 3월8일 페이스북에 “김경수 지사님의 100만원 재난기본소득을 응원하며 전 국민 기본소득의 길을 열어가는 데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재명 지사는 김 지사가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하기 이틀 전인 3월6일 학원 휴원 권고 브리핑 자리에서 비슷한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질의응답 막바지에 마이크를 잡은 이재명 지사는 갑자기 “오늘 아침 특정 교통수단 운영 주체에게 특별한 지원을 하자는, 수백억원 정도 지원을 하자는 보고가 올라와서 하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피해 입는 게 특정 업종만은 아니다. 거의 모든 도민이 피해를 본다. 특정 업종만 특별한 지원을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보편적 재난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이 말 뒤에 나왔다. 공정해야 하기 때문에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3월1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다. (…) 고소득층에도 동일하게 주는 것이 맞는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규모나 재원 조달 방법, 누구에게 줄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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