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각국도생(各國圖生)’의 시대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판단에 따라 특정 국가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격리하거나 출입국을 제한하고, 마스크 등 의료용·방역 물자에 대한 수출을 금지한다. 각기 다른 기준과 방식으로 확진자를 진단하고, 격리하고, 이동경로를 추적한다. 공유되는 정보도 제각각이다.

각국도생의 길은 필연적으로 국가 간 경쟁을 유발한다. 한 나라가 담을 높이면 다른 나라의 담도 잇따라 높아진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빗장을 걸어 잠그면 상대국도 맞불을 놓는다. 일본이 지난 3월5일 한국에 입국 제한, 검역 강화, 비자 효력 정지, 비자 면제 조치 중단 따위의 조치를 하겠다고 하자, 우리 정부는 바로 다음 날 일본에 유사한 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각국도생은 국수주의자가 활약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우리 정부가 중국 국경을 선제적으로 봉쇄하지 않은 것은 방역 정책의 관점에서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시사IN〉 제651호 “중국 봉쇄 카드는 애초부터 답이 아니었다” 기사 참조). 그러나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중국을 비난하는 방법으로 정부·여당을 공격했다. 바이러스는 국적도 국경도 고려하지 않건만, 그들은 마치 바이러스의 국적이 중국인 것처럼 굴었다.

ⓒAFP

3월11일(현지 시각)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을 선언했다. 이쯤 되면 WHO 주도로 세계정상회담이나 보건장관급 회의 따위가 열릴 법한데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수십 년간 예산 부족에 시달리며 조직의 생존에 매달리던 WHO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은 자국의 방역에 정신이 없다.

각국도생식 접근법은 방역의 차원을 넘어 경제·금융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 이탈리아, 한국 등에서의 감염병 확산은 글로벌 공급망의 심각한 단절로 세계경제에 크고 깊은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수차례의 ‘금융위기 전염’을 겪으며 경제·금융 분야에서만은 즉각적인 공조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았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코로나19에 대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조 노력이 아직까지는 느슨해 보인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파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국제공조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결과적으로는 국제공조의 효과를 내리라 본다). 경쟁적으로 각국도생하는 상황이 되면, 방역 문제를 떼어놓고 경제·금융 분야에서만 협력하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기후위기 대처하듯 세계적 공공보건 협력 모색해야

지난 20세기 초반, 세계는 각국이 경쟁적으로 담을 쌓으면 다 같이 힘들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당시의 경쟁적 보호무역과 대공황, 그 결과 중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고통을 겪으며 지금의 국제통상 규범과 자유무역 질서의 기반이 형성되었다. 다만 자유무역 체제는 물적·인적 이동의 광범위한 확대를 낳으므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필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즉, 자유무역 체제는 현재의 위기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는 아직 글로벌 리더십도 국제공조의 틀도 보이지 않는다. 방역 문제를 좀 더 규범력 있는 국제통상의 틀 안에 포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이유다.

이미 국제통상의 범위는 환경과 노동, 문화주권, 지방자치, 천연자원 등 이른바 ‘신(新)통상’ 분야로 확대되는 중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대응하는 다자주의적 접근과 자유무역협정(FTA)·지역무역협정(RTA)에 대응하는 양자·지역주의적 접근이 모두 유효할 것이다. 비록 갈 길은 멀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도전에 대응해 기후변화협약 같은 다자 간 체제를 만들어냈다. 한·중·일 FTA를 꿈꾼다면 한·중·일이 공공보건 협력을 함께 모색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개방과 협력이다. “코로나19 방역 선진국”으로 칭송받는 한국이 앞장서 중국·일본과 함께 동북아시아에서, 세계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면, 지나친 몽상일까.

기자명 노주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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