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8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자회견. ‘도쿄의 모치즈키입니다.’ 마이크를 붙잡은 모치즈키 이소코 〈도쿄 신문〉 사회부 기자는 40분 동안 23회에 걸쳐 질문을 퍼부었다. 가케 학원 스캔들(수의대 신설을 두고 아베 정부가 가케 학원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과 이토 시오리 씨의 미투(Me too) 폭로 관련 질문이었다. 관방장관 정례 브리핑은 10분 정도로 마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모치즈키 기자는 이 ‘무언의 룰’을 공개적으로 깨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시사IN〉 제583호, ‘현직 기자가 말하는 일본 저널리즘의 현실’ 기사 인용).”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기자의 투지에 크게 감명받은 영화 프로듀서가 있었다. 모치즈키가 쓴 자전적 에세이를 바탕으로 당장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가케 학원 스캔들’을 모티프로 지어낸 일본 정부의 사학 비리, 그리고 그걸 추적하는 신문기자 요시오카(심은경)의 이야기. 1986년생 영화감독 후지이 미치히토를 설득하며 프로듀서는 말했다. “신문을 읽지 않는 세대, 정치에 흥미가 없는 자네 같은 젊은 세대가 이걸 만들어야 또래 관객들에게 더 와닿는 영화가 되지 않겠나.”

감독이 합류한 뒤 내각정보조사실 관료 스기하라(마쓰자카 도리)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추가됐다. “집단의 압력과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내부고발자 캐릭터를 만들어낸 건 “나 자신의 반영”이라고 감독이 말했다. 극중 나이도 감독과 동갑, 일본에서 흔히 ‘사토리 세대’라고 부르는 연령대. “자기 주관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데 익숙해진 세대”이면서 “투표 한번 해보지 않고 아버지가 된 사람들”이 잠시나마 스기하라가 되어 고민해주길 바랐다.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 등 휩쓸어

그렇게 완성된 영화 〈신문기자〉가 지난해 가을 한국에서 개봉했다. 일본 영화답지 않게 에두르거나 주저하지 않으면서 모처럼 관객 가슴 한복판에 힘센 직구를 꽂아 넣는 멋진 영화였지만,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때 이 영화에 눈길을 주는 관객은 턱없이 적었다. 그런데 지난 3월6일,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일본 아카데미 역사상 한국 배우가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심은경 배우가 처음이다. 아베 정권의 치부를 건드린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예상 밖의 일이다. 여세를 몰아 국내 재개봉이 결정됐다. 지금 IPTV와 VOD로 볼 수 있는 이 영화를 당분간 극장에서도 볼 길이 열렸다.

나는 〈신문기자〉를 〈더 포스트〉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꼭 챙겨 보아야 할 언론 이야기” 세 편으로 꼽는다. 댓글 부대와 가짜 뉴스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 영화는 세 편 가운데 ‘가장 지금의 이야기’면서, 일본 얘기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은 ‘바로 여기의 이야기’다. 집요한 물음표 대신 경박한 느낌표만 쏟아내기 바쁜 한국 기자들에겐 특히 남 얘기가 아닐 것이다. “정자와 기자가 사람 될 확률은 수천만 분의 일”이라는 댓글에 크게 웃은 뒤 이내 서글퍼지는 한국 관객에게야 말할 것도 없고.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