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대상을 수상한 경희대학교 대학의소리 방송국 구동혁, 김형구, 정시은, 김홍찬씨(왼쪽부터).

 

경희대학교에는 ‘밝은사회 장학금’이라는 교내 장학제도가 있다. 대학 홈페이지에는 이 장학제도가 ‘역량강화 장학’ 중 하나이며, 단과대학 학생회의 간부, 혹은 학년 대표 등에게 지급한다고 안내한다. 이 장학금의 지급 기준은 모호하다. 단과대마다 정해진 기준이 다르고, 누가 어떻게 지급받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이 제도는 학생회 간부에게 장학생 추천 권한을 일임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2018년 체육대학 학생회의 부당 수령 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경희대 대학의소리 방송국(VOU) 동기인 김홍찬(식물환경신소재공학과 18학번), 김형구(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19학번) 기자가 2019년 4월 머리를 맞댔다. 두 사람은 이 장학금이 운용되는 방식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전년도에 발생한 체육대학 사례를 바탕으로 취재에 나섰다. 정시은씨(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18학번)는 영상 제작으로 힘을 보탰다.

2019년 5월 첫 방송을 내보냈다. 제작팀은 밝은사회 장학제도의 구조적 맹점에 주목했다. 밝은사회 장학금은 규정상 ‘등록금 외 장학금’이다. 나중에 현금을 장학생 계좌에 환급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이 제도의 당초 취지는 단과대 공동체에 크게 기여했지만 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생을 격려하고 돕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학생회 간부가 개인 친분에 따라 누군가를 장학생으로 추천한 뒤 그 돈을 돌려받는 일이 가능했다. 일종의 ‘대리 수령’이다. 장학제도를 운영하는 학교 측에서는 제도를 개선할 권한이 없다며 제도 운용을 사실상 방관했다. 제작팀은 영상에서 단과대 장학심사위원인 교수들도 사실상 묵인하며 대리 수령이 관행처럼 이어져왔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에 대한 견제 장치가 마땅치 않았다.

첫 방송을 내보낸 직후 뜻밖의 제보자가 등장했다. 생명과학대 학생회에서 활동한 제보자는 자신이 방송에 소개된 방식으로 장학금을 대리 수령했다고 고백했다. 장학금을 받은 2019년 4월 당시에는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지만 VOU의 방송을 본 뒤 뒤늦게 잘못된 관행에 휘말렸음을 깨닫고 용기를 냈다. 제보자에게 대리 수령을 부탁한 인물은 생명과학대 전 학생회장인 최 아무개씨였다. 최씨는 제보자에게 밝은사회 장학금을 받은 뒤 이 돈을 당시 학생회장이던 김 아무개씨에게 보내라고 요구했다. 돈을 받기로 한 학생회장 김씨는 2019년 1학기 당시 휴학생 신분이라 원칙적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다.

제보자는 최씨와 김씨의 요구대로 장학금 430만원을 받은 뒤, 이 중 410만원을 김씨에게 입금했다. 김씨는 나머지 20만원을 “수수료 등이 들지도 모르니 가지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VOU 취재팀은 이 같은 돈의 흐름을 고발키 위해 구동혁씨(원자력공학과 19학번)와 함께 서둘러 후속편 제작에 나섰다. 메신저 대화 기록과 입출금 내역 등을 확보해 공개했다.

대학 사회에서 학교가 아닌, 같은 학생회를 고발하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방송국 내부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증거와 증언이 확실했고 관행은 무감각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 제작을 마무리한 후속편이 2019년 9월에 공개되었다. 실제 사례를 촘촘하게 취재한 보도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도를 접한 학생들이 학교 감사행정원에 각종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김씨가 우회 수령한 밝은사회 장학금은 환수되었다.

후속 제보도 뒤따랐다. 이번에는 단과대 학생회가 아닌 총학생회 내부에서 고발이 이어졌다. 정신없이 다음 편 제작에 착수했다. 2019학년도 2학기 내내 학내에서 대리 수령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제작팀 정시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오래된 악습인 장학금 대리 수령의 책임은 학생들에게만 있지 않았다. 사실상 묵인해온 학교와 학생 사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김형구씨는 “문제의 핵심은 학생회장에게 장학 예산에 대한 분배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장학 예산 집행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라며 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루기 힘든 소재 대학 언론답게 다뤄

대상 부문 심사평 -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대상으로 대학 내 장학금 대리 수령의 문제점을 다룬 경희대학교 대학의소리 방송국(VOU)의 ‘악(齷)동(動)들:악착스레 움직인다’로 결정했다. 대상 경쟁을 했던 〈서울대저널〉의 ‘경계선 지능’에 관한 기사나 〈중대신문〉의 약자·소수자를 조명한 일련의 기사들도 참 좋았다. 우리에게 새로운 관심을 촉발하거나(〈서울대저널〉), 깊이 있는 취재(〈중대신문〉)가 돋보였음에도 ‘악동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대학 언론만이 다룰 수 있는 소재를, 그럼에도 대학 언론이 다루기 힘든 소재를 선택했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했다.

ⓒ시사IN 조남진

대학 내에서 장학금 대리 수령이라는 비리가 ‘관행’처럼 있었다. 장학금 대리 수령은 분명히 정당하지 못하고 시정되어야 할 악습이다. 그런데 관행으로 잔존할 수 있었던 것은 악습을 드러내고 교정할 수 없도록 하는 무형의 권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학생회 일부는 그렇게 권력화되고 학생 사회 내에서 이를 문제 삼기 어려운 관계가 존재했다. ‘악동들’은 그런 어려움에도 권력을 비판했고, 그 비판이 학생들의 연이은 내부고발 용기를 북돋웠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단지 영상 제작 측면에서 약간이나마 안정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는 평도 있었다. 그 점에서 영상 부문의 경쟁 작품인 〈미디어눈〉과 비교되기도 했다. 장애 아동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있고 세련되게 다룬 수작이었다.

대학 언론의 최우선 기능은 ‘대학’ 내에서 ‘비판 감시’ 역할이다. 대학 당국의 행정은 물론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장학금 대리 수령은 학생회의 악습일 뿐만 아니라, 이를 확인하고 시정해야 할 대학 당국의 책임 방기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대학 내 비리를 과감히 드러낸 경희대 VOU팀에 격려를 보낸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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