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쇼비니즘’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을 선동하려는 목적을 갖고 스포츠에 애국주의를 결합하는 것을 뜻한다. 김연아 선수(사진)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날인 3월30일 조선일보는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연아의 두 볼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라고 1면 톱기사 제목을 뽑았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김연아의 승리는 그 혼자만의 영예를 넘어 우리 국민의 강한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썼다.

정희준 한국스포츠사회학회 상임이사는 과거 운동선수에게는 분명 국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못사는 사람들이 운동했다. 선수 처지에서는 운동해서 고등학교 가고, 대학 다닌 것을 나라가 먹여주고 살려준 것이라 생각할 만하다.” ‘국가 시스템’이 키운 선수들이 출전하는 종목은 양궁·마라톤·탁구·쇼트트랙 등이었다. 스포츠 ‘틈새시장’을 노린 이러한 전략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고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김연아·박태환·박세리 등 이른바 ‘엘리트 종목’에서 탄생한 요즈음의 스포츠 스타는 ‘패밀리 비즈니스’가 낳은 성공작으로 봐야 한다. 김연아 선수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IB스포츠 관계자는 “김연아 선수의 옆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김 선수의 친구이자 코치이고, 후원자이자 매니저다”라고 말했다. 딸에게 담력 훈련을 시키기 위해 한밤중에 공동묘지에 데려갔다는 박세리 아버지 이야기는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다.

이렇게 자란 신세대 운동선수에게는 ‘애국’을 주문하는 것 자체가 계면쩍은 일일 수 있다. 나라가 이들을 위해 해준 게 없는 것처럼 이들 또한 국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정 이사는 “박세리나 박찬호가 애초에 돈 벌려고 미국에 간 것이지 국위 선양하려고 나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국가대표 피겨 선수 김현정양(17)은 “아직 성공해서 나라 이름을 드높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해보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가 애국가를 들으며 운 것은 그동안 고생한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서 그랬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올라도 눈물이 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들이 스포츠 선수로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애가 군대에 가야 할 나이가 되어서 걱정이다. 해외에 입양시킬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김연아 선수의 선전을 보는 것이 유일한 삶의 낙이라 말하는 ‘국민’이 살아가는 한쪽에서, ‘스포츠’와 ‘애국주의’는 어색한 동거를 이어간다.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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