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해 8월31일 인천시 부평역 인근에서 종교단체 회원들이 ‘2019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승섭, 너는 스스로를 정상적인(normal)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지난해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는 동안 인종차별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데이비드 윌리엄스 교수(하버드 대학)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민자이자 흑인인 그는 제 첫 박사논문을 지도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뜬금없이 던진 질문의 의미를 헤아리기 어려워서 한참 망설이다 “그런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그가 살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나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건 우리가 특권층이라는 뜻이야.”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같은 종에 속하는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인간을 임의적 범주로 나눠 서열화하고 불합리한 위계 관계를 기준으로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착취하는 역사를 반복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줄곧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충분하지 못한’ ‘무능력한’ 몸을 가진 존재로 비하하며 그들을 인간의 영역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그렇게 타인의 자리를 빼앗는 일을 통해 기득권은 유지되고 확대되었습니다.

흑인은 오랫동안 ‘인간’이 될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워싱턴 D.C.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박물관에서 성인 2명 정도가 간신히 서 있을 만한 작은 바위를 만났습니다. 별스러울 게 없는 이 바위의 이름은 경매터(Auction Block)였습니다. 노예로 붙잡힌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쇠사슬에 묶여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까지 이동해야 했습니다. 음식은 물론이고 물조차 제대로 주지 않던 항해에서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거나 병에 걸린 이들은 바다에 버려져 상어 떼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바다 위에서 사망했다고 신고하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이, ‘충분치 못한’ 몸을 가진 그들을 경매터에 판매해 얻을 수 있는 돈보다 컸기 때문이지요.

ⓒ김승섭 제공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박물관에 있는 ‘경매터’. 이 바위 위에서 흑인 노예들이 팔렸다.

여성의 몸은 고등교육을 감당할 수 없다?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이 바위 위에 서야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몸의 가격이 매겨졌지요. 갓난아이와 엄마를 구매하기 위한 비용을 사람들은 경쟁하듯 불렀고, 그들은 종종 따로 팔렸습니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이 바위 앞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이 경매터는 공포와 모욕의 자리였고, 사랑하는 이와 평생 헤어질 수 있는 불확실성의 자리였다.”

그 시절 흑인의 몸은 ‘자유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여겨졌습니다. 과학은 그 논리를 크게 거들었지요. 저명한 의학자였던 새뮤얼 카트라이트는 1851년 논문 〈니그로 인종의 질병과 신체적 특이성에 대한 보고서(Report on the Diseases and Physical Peculiarities of the Negro Race)〉를 출판합니다. 이후 노예제 찬성론자들이 인용했던 이 논문에는 흑인만 걸릴 수 있는 정신질환인 출분증(drapetomania)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출분증은 신체적·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백인이 감독하고 돌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인 흑인이 자유를 찾아 떠나면서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지칭하는 진단명입니다. 카트라이트에 따르면 흑인에게 자유는 흑인을 백치나 정신이상자로 만드는 나쁜, 멀리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여성의 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글쓰기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감정적인 존재’인 여성을 아프게 만든다고 여겨졌습니다. 1892년 발표된 단편소설 〈노란 벽지(The Yellow Wallpaper)〉는 아름다운 고택의 맨 위층에 갇혀 있는 한 여성이 불안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의사인 남편은 쓸데없는 공상과 계속되는 글쓰기가 아내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치료를 이유로 방에서만 지내야 했던 주인공은 벽지 뒤에 갇힌 채 나오지 못하는 또 다른 여성을 발견하지요. 그는 그 여성이 벽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벽지를 뜯어내고 벽을 기어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 기괴한 모습을 보고 기절한 남편을 주인공이 기어 넘어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납니다. 오늘날 초기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작 중 한 편으로 널리 알려진 이 소설은 저자인 샬럿 퍼킨스 길먼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길먼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자신에게 ‘글쓰기를 중지하고 집 밖 생활을 최대한 삼가야 한다’고 처방했던 남성 의사에게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소설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연합뉴스지난 1월23일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당한 변희수 부사관(위)이 기자회견을 했다.

〈노란 벽지〉에 나타난 여성의 몸과 질병에 대한 편견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몸은 고등교육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지요. 1873년 에드워드 해먼드 클라크 교수(하버드 의대)는 〈교육에서의 성(〈Sex in Education)〉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면 그것은 여성의 몸에 “생리학적 재난(physiological disaster)”을 초래할 것이며, 그런 교육이 지속된다면 국가의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 ‘미스 G’라는 한 여성의 몸을 언급했습니다. 미스 G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몸을 부검했더니 두뇌의 ‘노화’가 시작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클라크는 이를 근거로 “(백인) 인종의 번식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좋은 생식기”를 가진 여성이 좋은 두뇌까지 가질 수는 없으며, 고등교육을 받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의 역할은 여성의 몸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성이 정치 공간에서 배제되었던 논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성참정권 운동에 반대했던 남성들은 여성이 한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만큼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월경주기에 따라 감정이 변하기 때문에 일관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 과학의 탈을 쓰고 통용되곤 했지요. 자녀양육법의 권위자였던 윌리엄 리 하워드는 1909년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아침부터 ‘사회통계’를 토론하는 엄마들”이 “전쟁과 종교에 대한 질문을 두고 그것들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하는 현상을 언급하며, 그들을 “몸과 정신이 퇴화한 역겨운 반사회적 존재”라고 비하했습니다. 여성의 몸을 재생산을 위한 자궁을 가진 생명체로만 바라보는 가부장제의 시선으로는 ‘정치’하는 인간인 여성의 존재를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 중심의 이분법적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온전한 구성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구약성서 〈레위기〉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마다 동성애자를 희생양으로 ‘호출’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동성 간 성관계를 “가증한 일”이라 낙인찍고 당사자를 죽여야 할 범죄로 명시하며 동성애자를 고문하고 학살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동성애가 자연계의 법칙을 훼손하기 때문에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명시합니다. 동성애자의 몸은 이성애자로 바뀌거나 세상에서 지워져야 할 존재로 취급받았지요.

이러한 낙인은 질긴 생명력을 가졌습니다. 종교가 과거처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근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지요. 1952년 미국정신의학회가 정신질환 진단명에 대한 최초의 표준안(DSM-I)을 내놓으면서 동성애를 성도착증(paraphilia) 항목으로 등재합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결함’을 가진 동성애자의 몸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낙인을 부여한 것이었지요. 이 거대한 낙인은 동성애자를 온전한 인간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과학적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며 “동성애가 그 자체로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라는 단호하고도 명확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동성애자의 몸을 이성애자의 몸으로 바꾸고자 하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는 전환 치료로 인해 수많은 동성애자가 상처를 입고 죽어갔습니다. 2016년 한 근본주의 기독교 단체로부터 ‘치료’라는 이름하에 폭행을 당했던 김연희씨(가명)가 생각납니다. 동성애자를 ‘귀신 들린 성중독자’라고 부르던 그 단체는 치료 명목으로 눈앞에서 가위를 휘두르며 “네 성기는 필요 없으니 잘라버리겠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연희씨는 ‘살아야겠다’라는 생각 하나로 창문을 통해 탈출해 검푸른 멍이 든 모습으로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찾아왔습니다.

ⓒ김흥구숙명여대 게시판에 ‘이 사회에서 내가 여성임을 체감할 때’라는 질문에 답한 학생들의 메모가 붙어 있다.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들

흑인, 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아직도 유령처럼 우리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것이 부끄러운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소수자에게서 인간의 자리를 빼앗았던 배제의 역사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그들의 인간됨에 대한 무례한 질문과 낙인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1월22일 강제 전역을 당한 변희수 하사는 함께 복무했던 부대원뿐 아니라 군단장, 여단장의 지지를 받던 군인이었습니다. 출생 시 법적 성별이 남성이었던 그는 수술을 통해 법적 성별을 여성으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에 충실한 결정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직업군인으로 일하고자 했던 변 하사의 꿈은 끝내 좌절됐습니다. 군은 고환과 음경 상실로 인한 심신장애를 결격사유로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럼 이제 여군으로 다시 군 복무를 지원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묻지만, 대한민국에서 여군은 자궁과 난소가 없으면 결격사유가 되어 지원조차 불가능합니다.

변희수 하사를 보며 2017년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통해 알게 된 트랜스여성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출생 시 법적 성별이 남성이었던 그들은 고가의 성전환 수술비용, 사회적 낙인, 과도하게 엄격한 법적 성별 정정제도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해 군 복무를 해야 했습니다. 군대 관련 질문에 응답한 트랜스여성 70명 중 절반 가까이 관심사병으로 분류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본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폭로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군 복무 중 성희롱과 성폭력을 경험한 이가 17명(24.3%)이었고, 원하지 않은 강제 검진이나 입원을 요구받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전차 조종 보직을 담당했던 변희수 하사는 강제 전역을, 입대 이전에 법적 성별 정정을 하지 못했던 70명의 트랜스여성은 강제 복무를 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트랜스젠더의 몸을 ‘충분치 않다’고 규정했고, 그들은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었습니다.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한 트랜스여성 A씨가 입학을 포기한 것은 2월7일이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여성으로 법적인 성별 정정을 마친 A씨의 입학을 반대한 집단은 다름 아닌 숙명여대를 비롯한 여대 내 여러 단체들이었습니다. 20여 개 단체가 모여 만든 ‘트랜스젠더 입학반대 TF팀’은 A씨를 “본인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라 규정하고 “여자들의 공간과 기회를 빼앗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는 A씨가 대학에 입학한다 하더라도 과연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이 여과 없이 공유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 사건에서 저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과연 입학 반대를 외치던 여성이 주장하는 ‘생물학적 여성’은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명확하고 단단한 개념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Y 염색체의 존재로, 혹은 자궁이나 난소 같은 해부학 기관을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을 나눕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이러한 이분법이 과학적으로 엄밀히 적용될 수 없는 기준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XX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데도 남성인, 자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여성인 경우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모든 인간은 특정한 맥락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한국인이 한국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에게 인종차별의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남성이 권력을 가진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과의 관계에서 약자인 여성들이, 시스젠더만을 정상적인 몸으로 취급하는 성별 이분법의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와의 관계에서 기득권일 수 있습니다. A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이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상상할 수 없다는 이유로, 트랜스여성인 A씨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려 했습니다.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이들은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쓴, 흑인이자 여성이며 동성애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오드리 로드가 “나는 당신이 두려워하는 얼굴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꼭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얼굴을 인간의 범주에서 밀어내는 건 명백히 부조리한 비상식적인 폭력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 폭력은 어떤 몸을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치떨리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회’(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의 표현)만이 그렇게 할 수 있지요.

한 사회가 표준이라고 여기던 몸은 항상 기득권의 것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던 그들은 소수자의 몸을 두고 매번 인간의 자격을 따져 물었지요. 그렇게 백인은 흑인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물었고, 남성은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아도 되는지 따졌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의 존재가 질병인지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어쩌면 이것뿐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정상적인 사람인가요?’

기자명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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