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서울에서 정유회사에 잘 다니다가 전북 군산으로 내려가 마트를 창업한 김경욱씨가 쓴 책을 읽었다(〈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 김경욱, 왓어북 펴냄). 그는 ‘안정적인 김 과장의 삶을 즐기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 있는 삶’을 살고 싶어 마트를 창업했다고 한다. 스타트업 창업을 하고 투자를 받는 화려함 대신, 성과를 직접 볼 수 있고 확실히 프로페셔널로 성장하여 돈을 벌 수 있는 소도시 마트 사장이 되기로 한 그의 결심이 무척 진지해 보였다.

이 책의 주요 독자는 아마도 퇴사를 고민하는 예비 창업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왜 대기업을 그만두었는지, 하필이면 마트 창업을 했는지, 그리고 마트를 실제 창업하고 운영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옆에 앉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말해준다.

그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한국의 수많은 소상공인들의 높은 폐업률이나 낮은 소득수준에 관한 뉴스를 보아온 독자들은, 그의 결단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다녔던 정유회사는 ‘워라밸’도 괜찮은 직장일 텐데, 굳이 지방으로 내려가 어려운 마트 창업을 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자영업자와 관련된 숫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저자의 선택은 좀 이상하게 보일 지경이다.

망해도 내 결정으로 망하고 싶다

그는, 누구나 쉽게 인정하는 ‘적당히 좋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적당히 좋은 삶이 사회로부터 강요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모범답안처럼 제시하고 옳다고 주입한 ‘회사 인생’을 중단하고, 어차피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 망해도 내 결정으로 망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 판단의 중심에 있다. 결국 저자가 굳이 높은 소득과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보장해주는 대기업 사원을 스스로 집어던지고, 불안정 노동과 더 심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는 지방 마트 창업으로 뛰어든 것은, 말하자면 ‘실존적 결단’이라 하겠다.

그의 이런 결단에 대해 경제적 이익 차원에서, 혹은 사회적 명예 측면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일인지 모른다. 저자가 몇 년간 회사 생활을 버티며 이미 회사에 대한 판단을 확고하게 했을 수도 있다. 그 누구도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회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직접 임금노동을 해보기 전에는 어떤 노동이 자신에게 맞는지 알지 못하며, 회사 밖에 나와서 무슨 일이든 직접 해봐야만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다.

이 모든 진지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마트에서 일하고 돌아와 한밤중 밥을 먹다 속에서 뭔가 터져 나오듯 울음을 쏟아내며 어려움을 내비치는 장면에서는 그의 괴로움과 삶의 무게가 직접 전해지는 듯하다. 장사가 말처럼 쉬운가? 마트를 시작하고 마케팅 지식으로 무장된 자신을 마구 뒤흔드는 현장의 문제는 그를 무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마트 출근길에 ‘사고인 것처럼 차에 살짝 치이면 잠시나마 편해질 수 있을까’ 하고 못된 생각을 했다고 하니, 사장의 길도 노동자의 그것만큼 힘든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실은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일의 내용인 노동 자체를 선택하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을 둘러싼 ‘조건’ 역시 함께 선택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가 창업할 때, 대기업에서 매일같이 하는 추상적인 보고서 작성 대신 마트에서 직접 몸을 쓰며 일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고, 동시에 상사에게 보고하며 자신의 책임을 미루는 게 아니라 사장으로서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선택에 정답이 있을까? 정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적당한 답조차 없다고, 저자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자명 양지훈 (변호사·회사 그만두는 법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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