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중 2명이 ‘산별교섭 법제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해 7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산별교섭 법제화를 주장했다. 지금은 기업마다 있는 노동조합이 각 기업 사용자 측과 만나 ‘우리 회사 임금’을 논의한다(기업별 교섭). 회사의 지불능력과 노조의 힘에 따라 회사마다 임금이 달라진다. 하지만 특정 산업의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노조가 해당 산업 고용주 단체와 협상을 벌인다면(산업별 교섭), 어떤 기업 노동자든 같은 일을 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란 논리다.

지금도 산업별 노조가 있고 산별교섭이 진행되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업 처지에서는 산별교섭을 하더라도 기업별 교섭에 또 나가서 임금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협상을 두 번 해야 해 메리트가 없다. 노조도 임금이 이토록 차이 나는 상황에서 기업별 교섭을 포기하기란 어렵다. 산별교섭 법제화는, 기업 울타리를 넘어 조직된 산별노조가 협상을 요구하면 고용주 단체가 응할 것을 법으로 강제하라는 요구로 이해된다.

그런데 정말 산별교섭 법제화가 안 되는 게 문제일까?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응할 의무까지는 부과할 수 있지만(한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교섭을 어떤 형태로 해야 한다고까지 법으로 강제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노동계 싱크탱크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이사장도 “법제화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적어도 교섭 형태 강제는 현실에서 쉽지 않다는 것을 관찰자들은 안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돌아보면서 ‘산별교섭 촉진과 직무급(근속연수가 아니라 하는 일에 따라 임금을 받는 제도) 확산에는 미흡했다’고 썼다가 최근 인터뷰한 〈장제우의 세금수업〉 저자로부터 혹평을 들었다. “직무급은 맞벌이가 당연한 사회에서 가능하다. 그러려면 복지가 받쳐줘야 한다.” ‘맞벌이해서 버는 돈’과 ‘복지로 돌려받는 세금’을 합해 살 만한 사회라야 임금의 연공성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어쩌면 나는, 혹은 진보는, 이 이슈에 개인적 이해관계가 별로 없기에 ‘고장 난 레코드’를 틀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