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사람들의 마음을 탐구하다
  • 임지영 기자
  • 호수 650
  • 승인 2020.03.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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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최종희씨가 대구·경북 사람들을 인터뷰해 〈대구경북의 사회학〉을 펴냈다. 그들은 왜 보수주의적 성향을 지니게 됐을까. 지금의 ‘습속’을 버려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상엽2016년 11월14일 경북 구미시의 박정희 생가 공원에서 열린 ‘박정희 탄신제’에 참가한 참석자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탄핵 심판 결정문을 듣는 순간, 아픔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어릴 적 고향 풍경이 떠오르고 ‘박정희·박근혜’에게 무조건 지지를 보내던 부모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헌재 결정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어딘가 간직해둔 향수가 와해되는 것 같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최종희씨(사회학자, 작가·57) 스스로 ‘박정희 토템’이 ‘마음의 습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최씨는 경북 지역의 한 집성촌에서 자랐다. 항렬과 촌수에 따라 위계가 엄격했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본인의 의사를 될 수 있으면 피력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50여 년을 경북에서 살아오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지인 대부분도 같은 지역 출신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침묵에 잠길 때가 많다. 혼자만 생각이 달라서다. 사회학을 접하면서부터 그랬다. 40대 후반, 둘째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내면에서 각축이 벌어졌다. ‘습속이 지배하는 생활 세계와 사회학적 사고를 지향하는 학문 세계가 충돌했다.’

시대가 변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최씨 부모 대에 쓰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의식이 생겼다. ‘나와 내 공동체의 마음의 습속에 대해 낯설게 하기’를 시도했다. 대구·경북에서 태어나 거주해온 토박이 10명(연구 참여자)을 인터뷰했다. 50~60대 중산층 남녀 각각 5명이다. 인터뷰를 통해 대구·경북 사람들의 자아와 언어, 삶의 지향에 대해 분석했다. 박사논문으로 쓴 〈대구경북의 마음의 습속〉을 바탕으로 단행본 〈대구경북의 사회학〉(오월의봄)도 출간했다. 연구 참여자들이 대구·경북, 일명 ‘TK’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일반화하기 위한 연구도 아니다. 정치적 접근은 지양했다. 참여자들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앞으로 나아질 수 있는가. 그걸 알고 싶어서 습속을 탐구했다.

2016년 최씨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 친구와 청와대를 찾았다. 몇 개월 전에 예약해둔 자리였다. 같은 지역 사람이 다가와 말했다. “대구 말 쓰지 마이소. 그라고 박근혜 불쌍하다고 카면 여기 사람들 싫어합니데이.” 탄핵 정국, 대구·경북을 향한 욕설이 난무했다. 소설가 이외수는 TK를 북한에 비유하며 ‘정치적 무인도’라고 비하했다. 대구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기사 밑에는 ‘그동안 작태를 보고도 자한당 뽑은 대구 시민의 잘못이다’ 따위 댓글이 달렸다. 안타깝고 화가 났다.

강력한 가부장제의 그늘

해방 전후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진보적인 지역이었다. 1960년 대구에서 시작된 2·28 민주운동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이젠 아니다. ‘익숙한 건 유지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가 대구·경북의 집합표상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 TK는 박정희·전두환· 노태우·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지역민 스스로 중앙권력의 산출지라는 자부심을 가진다. 이들은 왜 혁신보다 안정에 치중하려는 보수주의적 권력집단의 성향을 지니게 됐을까?

최씨는 뒤르켐주의 문화사회학으로 이 질문에 접근했다. 참여자 10명에게 ‘사회적 삶’의 의미를 물었다. 가정환경부터 시작했다. 여성 참여자들의 이야기에서 가부장제의 그늘이 강하게 읽힌다. 참여자 중 한 명인 여미순의 유년에는 ‘불쌍한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딸 넷을 낳은 뒤 아들을 낳지 못해 다른 여자, 일명 씨받이를 남편 방에 밀어넣은 뒤 보약을 지어 먹였다. 출산을 앞두고 뱃속 아이가 화장실에 빠져 죽게 되자 양자를 들였다. 여미순 본인도 성별 검사로 유산을 시켰다.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임신이 안 되는 큰딸과 딸 둘을 낳은 둘째 딸을 자신과 닮은꼴로 연결한다. 여미순뿐만 아니라 여성 참여자들은 유산으로 몇 번씩 죽을 고비를 넘긴다. 아들을 얻기 위해서다.

최종희씨 친구 중에도 7~8차례 임신중절수술을 한 이가 있다. 의사는 자궁막이 얇아져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친구는 딸이 나를 닮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렇게 살기를 강요한다. 그만큼 불행했으면 딸은 엄마가 살고 있는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해줘야 하는데 똑같이 살기를 원한다. 습속 때문이다.” 이 밖에도 여성들은 풍부하게 자신의 삶을 서사했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 오빠와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가부장을 탈피해 결혼한 뒤 또 다른 가부장을 만났다. ‘가부장이 구상한 여성의 최종 직장은 가정이었다.’

ⓒ연합뉴스2015년 9월7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시 서문시장을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탄핵 정국 당시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던 데 비해 대구·경북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여미순은 국정농단 사건이 일부는 맞을 수도 있겠지만 반은 조작이라고 봤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여경숙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일당을 받고 시위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남연철은 왕조시대 언어를 사용해 박근혜를 왕에 비유한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백성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인식했다.

촛불집회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시위가 힘없는 서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지만 집회에 참여할 생각까지는 없다. ‘가정주부인 데다가 진보 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집회는 ‘일반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서다. 최종희씨는 이러한 ‘대구·경북의 마음’을 시민사회와 고립된 상태라고 진단한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요즘은 또 분위기가 다르다. “현재의 리더(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사사건건 불만이 있다. 박근혜 탄핵 당시엔 왕을 구속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놓고 이제는 탄핵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대구·경북 사람에 대해 스스로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요약하면 이렇다. ‘한번 좋아하면 영원히 좋아한다. 배신하지 않고 의리가 있다.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며 순응적이고 긍정적인 스타일이다. 전라도는 빨갱이들이 많은 집단이다. 서울 사람은 간사하고 대구·경북에 서울보다 뛰어난 인물이 많은데도 대구·경북이 서울 뒤를 줄줄 따라다니기만 한다.’ ‘꼴통’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지조 있는 성격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지역에서 TK를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일 거라고 예측한다. 북한 주민 보듯 대구·경북을 볼 수도 있겠다고 자조한다. ‘대구·경북의 한남 스타일은 최악’이라 딸을 시집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자연환경과 지역민의 특성을 연결시킨 남현무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그는 지방에 따라 성향 차이가 나는 이유로 주변 환경을 꼽는다. ‘대구·경북은 산이 많고 전라도는 평야가 많다. 평야는 이집 저집 다 보여 서로 감출 게 없다. 대구·경북은 산골이라 약간 폐쇄적이다. 그런데 인물은 산골에서 많이 난다.’ 그에 따르면 크게 될 인물이 있어도 섞여버리면 더 크지 않는다. ‘너무 낑가 맞추는 느낌이 들지만’, 모여 있으면 비슷비슷해지고 떨어져 있으면 독창성이 생긴다.

TK는 보수의 텃밭이다. 연구 참여자들 대다수도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 대체로 정서적 이유였다. 여경숙은 옛날부터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계열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박정희와 박근혜가 좋았고 의리를 좇아 무조건 보수를 지지한다. 남연철은 보수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그 길로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 남두일도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데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경상도 사람이야”라는 말에 이런 정서가 요약되어 있다.

최종희씨는 현재 경북 지역에서 이주민 여성을 대상으로 다문화 교육을 하고 있다. 동료가 역사 교재에 나온 대로 ‘5·16 군사정변’에 대해 가르쳤는데 일부 여성들의 시댁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박정희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뤘다는 이유다. 관련 내용을 언급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이 경험에도 나오지만 대구·경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박정희’다. 아직도 박정희·육영수 사진을 걸어놓은 집이 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10명 모두 거의 일치했다. 스스로 성향을 중도나 진보로 규정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릿고개를 없앤 경제적 영웅,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불굴의 가부장이다. 최씨의 분석에 따르면 박정희는 TK의 토템이다. 박정희 이념을 계승한 당이 계속해서 권력을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주의는 정치적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개인적 기억을 집단의 기억으로 끌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적 가족주의’

계속 파고 들어가니 가족주의가 남았다. 책은 대구·경북 사람들의 공적 상징체계를 ‘보수주의적 가족주의’라고 진단한다. 이 지역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인터뷰한 10명 중 8명이 보수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 마음의 습속을 ‘박정희 토템’에서 찾았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 구조와 경제발전을 염원하는 성장 서사가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했고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가치관이 습속을 지배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연대의 언어로 박정희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냈다. 박정희는 신화적 존재가 되었고 대구·경북은 ‘문화적 섬’이 되었다.

참여자 10명을 인터뷰하는 동안 최씨는 혼란스러웠다. 거울로 반사된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가족적 자아’에 머무르고 있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책 출간을 앞두고 그의 가족들은 마음을 졸였다. 비판이 아닌 비난이 쏟아질까 봐서다. 최씨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 누군가 서평 링크를 걸어놓아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다행히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최씨는 사회학을 공부하기 전 수필작가였다. 2012년 평사리문학대상 수필 부문 수상자다. 지금 돌아보면 가족주의적 단상에 머문 글들이 많았다. 사회학을 접한 뒤로 살아온 과정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일상 곳곳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정치적 견해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SNS 상의 작은 친목 집단에서조차 소수 의견이 묵살당했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한 명이 다쳤다. 의논해서 안 갈 수도 있는데 총무가 일방적으로 모임을 취소해버린다. 총무도 나머지와 동등한 처지이지만 어쨌든 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는 건 따른다는 마인드다. 이의를 제기하면 까칠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반면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지인들이 인터뷰에 협조를 잘 해주었다. “네가 논문을 쓴다는데 해줘야 안 되겠나.”

지금의 습속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보수주의적 가족주의’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박정희 토템의 발원지였던 대구·경북에도 균열이 일었다.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일편단심’인 사람들도 있지만 이전의 선택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세대 분열도 진행 중이다. 최종희씨는 이번 책이 대구·경북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대구·경북을 일반화해서 보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번 작업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작은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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