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기모란 비상대책위원장(위)은 “감염병을 우습게 여기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종 감염병 앞에서 모두가 ‘처음’을 겪고 있다. 중국 우한과 같은 아비규환도, 일본 크루즈선과 같은 난맥상도, 확진자가 속출하는 대구에서의 비상 상황 모두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사건 사고처럼 우리 앞에 갑자기 들이닥쳤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때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해둔 대비책도 또 다른 ‘처음’ 앞에서는 100% 차단하지 못한다. 처음 겪는 혼란과 불안 앞에서 우리는 또 다른 교훈을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의 악몽 역시 하나의 경험이 되고 말 ‘원헬스(One Health:전 세계 사람·동물·환경의 건강이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개념)’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가 가면 또 다른 무엇이 올 것이다. 계속 ‘처음’을 맞이하리란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세계에서 우리가 지금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는 무엇일까? 대표 역학 전문가 중 한 사람인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비상대책위원장(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학과 교수)은 먼저 그 불확실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에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직접 역학조사관으로 현장을 뛰었던 기 위원장은 정부나 국민이 “계속 예의주시하며 최선을 다해 대처하지만 내일 달라질 수 있다”라는 말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비난하거나 절망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그것이 ‘더 나은 처음’을 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확진 환자가 계속 추가되고 있다.

2009년 신종플루 때도 처음엔 열심히 역학조사하고 접촉자를 자가 격리시키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안 했다. 이렇듯 감염병 초기에는 봉쇄(containment) 전략을 쓴다. 봉쇄의 목적은 질병을 종식시킨다기보다, 확산 시점을 연기시키는 것이다. 시간을 벌어서 그동안 백신을 만들고 의료체계를 점검하며 준비한다. 확산이 확인되면 그때는 완화(mitigation) 전략을 쓴다. 감염을 조기 발견하고 조기 치료해 사망자를 줄이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봉쇄에서 완화로 전략이 넘어가야 하는 시기이다.

완화 전략이 필요한 이 국면에서 개인은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 일상을 유지해도 되나?

두 가지 공포가 있다. ‘내가 걸릴지도 모른다’와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 메르스 때는 두 가지가 다 존재했다. 치사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후자에 대한 두려움은 비교적 크지 않다. 중국 우한을 보면 많이 죽는 것 같지만 그 외 지역을 보면 그렇지 않다. 우한의 사망자도 60세 이상 기저질환 있던 사람의 비율이 높다.

다만 ‘나도 걸릴 수 있다’는 공포가 좀 더 커졌다. 주변에서 나타나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일본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아직까지 길 가다 감염되는 경우는 없었다. 택시 안이라든지 꽤 밀접한 접촉이 있어야 감염된다. 일상을 유지하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필요하다.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이 많은 모임을 자제하고, 행사를 한다면 ‘열이 있는 사람 오지 마라’ ‘마스크 쓰고 와라’ 안내하고, 발열감지기 두고, 손세정제 비치하고, 행사 공간은 환기가 잘 되는지 확인하고, 사람들 다닥다닥 앉지 않도록 자리를 배치한다. 이렇게 기본 원칙을 지켜서 확산되지 않도록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국민 수준이 높아져서 시민사회가 서로 보듬어주지 않으면 이런 위기를 못 이겨낸다. 감염자를 배척하면 매우 위험하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데 밀어내기 식으로 대하면 환자가 숨는다. 그러면 바이러스를 없앨 수가 없다. 환자가 빨리 나와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해줘야 한다.

ⓒ시사IN 신선영서울시립대가 개학을 앞두고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생활관 입구에 붙여놓은 안내문.

유학생이 많은 대학은 준비가 잘 돼 있을까?

기숙사 등에서 2주간 자가 격리를 시킨다고 하는데, 이게 보건소에서 명령하는 법적 자가 격리가 아니다. 대학에서 권고하는 자율적 자가 격리다. 보건소에서 명령하면 먹던 약도 주고 필요 물품도 넣어주고 쓰레기 버리는 것까지 해주지만, 대학들이 그 많은 유학생들을 기숙사에 넣어놓고 행정직원 몇 명이 어떻게 수발을 다 들 수가 있겠나. 단순히 유학생들이 자가 격리 거부한다, 말 안 듣는다가 아니라 따르기 어려운 문제가 뭔지를 봐야 한다.

국내 유학생들의 건강보험 의무가입이 내년 3월로 미뤄진 것도 우려스럽다. 원래 지난해 7월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보험 지출액이 늘어난 유학생들의 반발로 유예됐다. 돈이 없는 유학생들 처지에서는 증상이 나타나도 의료기관을 찾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다. 코르나19 양성이 나오면 검사와 치료비용이 무료지만 음성이면 다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도 이들이 조기 진단받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 감염에 대비한 병상과 방역 물품은 충분한가?

메르스 때는 정말 중국 같은 상황이었다. 의료진이 레벨 D 보호구 없이 마스크만 끼고 치료하고 일선 병원에 물품이 전달이 안 돼 난리였다. 지금은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병상 같은 경우 현재 전국 198개 음압병상이 있고 이후 민간 지정 의료기관까지 1000여 곳을 확보하고, 이후에도 부족하면 공공병원 하나를 통째로 비운다는 시나리오가 짜여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또 그곳 환자를 어딘가에서 받아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예전 국립중앙의료원을 메르스 전담 병원으로 바꿀 때 원래 있던 결핵, 에이즈 환자들 내보내려니 갈 데가 없었다. 평택성모병원 폐쇄 때도 마지막까지 기존 환자를 못 보내서 질병관리본부(질본) 직원이 여기저기 병원에 일일이 다 전화해서 찾고 부탁하고 그랬다. 결국 받아준 병원은 환자가 급감했다. 병원 경영자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국가 보상이 다 되는 것도 아니고 혹여 의료진 감염이 일어나면 책임져야 하고, 환자 치료하다가 사망하면 또 비난받고. 메르스 때 환자가 1차 의원에 들러 의사도 감염되고 의원들 다 문 닫고 하는 일이 벌어지자 1차 의원 쪽에서는 ‘이럴 때는 미리 문 닫아서 환자를 아예 안 보는 게 좋은 방법이다’라는 분위기도 있었다. 결국 평소 병을 앓고 있던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위험에 놓인다.

ⓒ연합뉴스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2015년 6월22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한국에 파견한 조사단.

의료 인력은 충분한가?

인력 문제는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역학조사관 수가 적다 어쩐다 하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부족하다. 인구가 고령화되고 의료이용률 높아지고 커뮤니티 케어의 국가 책임도 커지는 등 수요를 늘리는 외부 요인이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지난 20년간 의대생 입학정원은 그대로였다. 어떻게 되겠나? 큰 병원에서 서로 월급 더 주고 의사를 빼간다. 제일 피해 보는 데가 지방 병원, 감염내과 이런 곳이다. 기득권 의사들은 자기 인건비가 높아지니 나쁠 게 없다. 그 상태에서 병원 전체 수익은 보험수가가 그대로이니 중간 간호사, 간호조무사, 청소노동자는 임금이 안 오르거나 더 줄었다. 간호조무사는 아직까지 월급이 100만원 수준이다. 국가가 나서야 하는데 의약분업 때 의사들 잘못 건드렸다가 당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아무도 안 한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지역사회 감염이 더 빨리 찾아왔는데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완화정책을 쓰려면 일단 진단 역량이 충분해서 감염을 조기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하루 최대 가능한 코로나19 진단검사 건수가 우리나라보다 매우 적다(현재 우리나라는 하루 최대 5000명, 일본은 하루 최대 300건으로 알려져 있다). 왜 그렇게 느리냐고 묻는데, 사실 우리가 엄청 빠른 것이다. 진단키트 만들어 배포하려면 개발, 승인, 훈련 등에 보통 몇 달이 걸리는데 2015년 메르스를 겪으면서 신속 트랙을 만들었다.

메르스가 준 교훈이 작지 않다.

메르스 때는 응급실이 감염병의 온상이었다. 전 세계가 지금 일본을 보듯 ‘한국 왜 저래, 저 정도 수준이었어?’ 했다. 중동 말고 발생한 나라가 없었으니까. 후진국도 아닌데 환자가 응급실에서 2박3일씩 기다리고 의자에 앉아서 밤새우고 그런 우리나라 의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때 비용을 많이 들여 배웠다. 지금은 적어도 응급실 시설이나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다른 나라 문제를 타산지석 삼는 자세도 중요하다. 우리가 메르스로 한창 고생할 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한국에 조사단을 보냈다. 우리는 안 받고 싶었는데 돌아가는 비행기표도 안 끊고 밀고 들어와선 삼성병원 보여달라 등 요구가 많았다. 둘러보더니 바로 자기네 가이드라인을 바꾸더라. 병원 내 간병 문화로 감염병 예방이 취약하다, 환자 보호자도 교육 훈련시켜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배우려고 온 것이다. 뭘 실수했는지 봐서 그럴 위험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도 차후에 해외 대사관에 보건 전문가를 파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 교민 보호뿐 아니라 해외 전염병 동향 등 질병 정보를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더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문 앞만 지켜서는 안 된다.

역학자로서 어떤 상황이 가장 두렵나?

어떤 감염병이든 우습게 여기면 안 되지만,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두려워하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과학자와 역학자는 역할이 다르다. 과학자는 정확한 팩트가 나올 때까지 말을 못한다. 사실이 뒤집어지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역학자는 그러면 안 된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근거로 대책을 세우고 다음 날 새로 나오면 뒤집어야 한다. 내가 어제 한 말이 거짓말인 것처럼 뒤집고 유연하게 감당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2015년 메르스 때는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개미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장담했는데, 모르는 감염병에 대해 확정적인 약속을 하면 안 된다. 정부나 질본도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인데 계속 달라질 수 있다’ ‘계속 예의주시하며 최선을 다해 알아가겠지만 내일 달라질 수 있다’고 얘기해야 한다. 그때그때 상황과 정보에 따라 변화하고 한두 발짝 정도 빠르게 움직여나가는 것이 방역이고 보건 대처다.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면 사회는 무엇부터 논의해야 할까?

솔직히 유행이 끝나고 나면 순식간에 잊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위기가 발생하면 일종의 ‘정책의 창’이 열려 여러 가지 제안을 하면 들어줄 것 같은데, 위가가 지나고 나면 ‘정책의 창’이 닫힌다. ‘아, 이제 소강 국면이네’ 하고 출구전략을 찾는다. 더 이상 이 이야기는 논의조차 하지 말자, 이야기하는 게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 메르스 끝나고 그랬듯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럼에도 제안을 하면 감염병 등 보건·건강 정책을 평가하는 ‘드라이랩(Dry Laboratory)’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등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시행한 여러 정책의 효과와 사회적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 KDI(한국개발연구원)나 국방연구소같이 가칭 ‘건강정책평가연구원’을 두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감염병이 돌 때 많은 학교가 문을 닫는데 지금 나오는 기준은 ‘확진자 발생지 반경 1㎞ 내’ 이렇게 과학적 근거 없이 주먹구구식이다. 어떨 때 얼마만큼 학교 문을 닫는 게 과학적으로 효과적인지 원칙을 세울 수 있는 기관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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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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