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가 정말 났다. 영화 시작 부분이었다. ‘봉테일’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임지영 기자가 쓴 기사를 읽은 뒤라 그 의미를 간파했다(〈시사IN〉 제612호 ‘황금종려상 수상 빨리 잊혔으면…’ 기사 참조). 봉준호 감독은 극장 음향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기생충〉에 종소리를 삽입했다. 작게 들리거나 끊기면 극장 음향 시설에 이상이 있다는 걸 관객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새벽부터 직접 상영관을 돌며 소리와 화질을 점검했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봉준호 감독만의 쾌거는 아니다. 한국 영화 ‘축적의 시간’의 성과이다. 한편으론 ‘억압의 시간’에도 좌절하지 않았던 영화인들의 저항이기도 하다. 한때 한국 영화는 방화로 불렸다. 해외 영화가 아닌 국내에서 만든 영화라는 뜻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영화법을 개정해 방화를 의무 제작하게 했다. 방화를 만든 영화사에만 돈이 되는 외화 수입권을 허가했다. 한국 영화는 극장주들에게 외화를 수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의무 편수를 채우기 위한 날림 제작도 허다했다. 군사정권은 ‘가위질’로 검열만 한 게 아니다. 한국 영화를 외화 수입용 방화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그런 시절에도 이만희, 김기영, 하길종 그리고 임권택 감독 등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작품을 찍으며 다음 세대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영화는 정부의 문화정책과 무관치 않다. 군사정권을 지나 김대중 정부 때 한국 영화 중흥기 토대를 마련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 대통령의 철학이 빛을 발했다. 그는 영화뿐 아니라 문화를 사랑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인의 발자취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더 조명받았다. 〈시사IN〉이 보도한 ‘안종범 수첩’에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선별 지원하며 간섭한다.’ 예를 들면 박 전 대통령은 〈태양의 후예〉 주인공 송중기씨를 꼭 집어, ‘송중기 발자취 프로그램’ ‘태후 홍보자료 보완’ ‘입간판이 없어 불편’ 등 깨알 지시한다. 박정희 시대를 다룬 영화인 〈국제시장〉을 두고 ‘투자 애로. 건전한 애국영화 독려’라고 지시한다. 〈국제시장〉의 투자사는 CJ E&M이었다. 영화 개봉 전까지만 해도 CJ그룹은 박근혜 정부에 ‘좌편향’ 기업으로 눈 밖에 났다.
선별 지원하며 간섭했던 박근혜 정부를 잇는 자유한국당은 봉준호 쾌거에 숟가락을 얹기 바빴다. 이번 호에 임지영 기자가 봉준호 감독론을 담았다. 천관율 기자는 봉 감독 특유의 사회 메시지를 포착해 〈기생충〉에서 혐오 관련 은유를 읽어냈다. ‘국뽕’이라 해도 기분 좋은 수상이다. 흑백영화로 재개봉되는 〈기생충〉에서 종소리를 한번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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