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깜짝 등장이 심상치 않은 이유
  • 남문희 기자
  • 호수 649
  • 승인 2020.02.2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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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전 비서가 남편인 장성택의 권력 찬탈 음모로부터 가문을 수호했다는 분석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백두혈통의 어른’인 그가 다시 나섰나?
ⓒ평양 조선중앙통신1월25일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왼쪽 세 번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와 함께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했다.

‘2329일 만의 등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고모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가 6년 만에 공식행사에 등장하자,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의 언론 논평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던 2013년 9·9절 행사부터 따져 계산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김경희 전 비서는 남쪽의 시각과 북쪽의 시각이 엇갈리는 인물이다. 남쪽에서 볼 때 그는 북한 체제 반역자로 낙인찍혀 처형된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부인이다. 둘 사이 관계가 어떠했든 그 역시 남편의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리라는 게 남쪽의 시각이다. 장성택 전 행정부장은 2013년 12월12일 처형되었다. 이후 김경희 전 비서 역시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시시때때로 국내외 언론에 등장한 ‘김경희 사망설’ ‘김정은 위원장에 의한 독살설’ 등은 ‘반역자의 부인’이라는 꼬리표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권력의 내밀한 속내로 들어가면 정반대의 평가가 가능하다. 특히 김일성 가문의 시각에서 보면 김 전 비서는 장성택 전 행정부장의 권력 찬탈 음모로부터 가문을 수호한 원로일 수 있다.

‘반역자의 부인’이 김경희 전 비서 재등장 이후 남쪽 언론에 차용된 관점이라면, ‘가문 수호 원로’는 북한 권력에 밝은 고위급 탈북 인사들의 시각이다. 고위급 탈북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장성택과 김경희의 부부관계는 2004년 장성택 전 행정부장이 후계 체제에 도전한다는 의심을 받고 지방으로 보내졌을 때 이미 파탄 상태였다. 김 전 비서는 당시 오빠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장성택과 이혼하겠다’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혼을 좋게 보지 않는 북한의 관습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밖에도 부부 사이에는 큰일이 있었다. 2006년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외동딸 장금송이 자살한 것이다. 이로써 부부를 이어주던 마지막 인연도 끝났다.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2008년 8월부터 10월까지 두 달간 김경희 전 비서는 김일성 가문의 수호자로 남편과 맞섰다. 두 사람의 첫 번째 충돌이다. 그는 장성택 전 행정부장이 김정남을 앞세워 김정일 위원장 유고 때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고 의심했다. 이에 따라 조카들인 김정은, 김설송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마지막 부인 김옥 등과 손잡고 병실을 사수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당시 북한 권력 내에서는 ‘혈통 승계냐, 혁명 승계냐’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혈통 승계’는 곧 김일성 일가 내에서의 승계를 의미한다. ‘혁명 승계’는 혈통과 무관하게 혁명의 대의만 승계하면 문제없다는 의미다. ‘김씨’가 아니라 ‘장씨’라고 해도 수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김씨 가문의 적통을 자처하는 김경희 전 비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였을 터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2008년 충돌이 재연됐다. 그것이 바로  장성택 처형 사건이다. 당시 누가 처형을 주도했는가를 둘러싸고 여러 얘기가 나왔다. 최근 고위급 탈북자는 김경희 전 비서가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후계자로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권력 장악력이 떨어졌고, 실질적인 권력은 김경희 전 비서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1년 뒤인 2012년 12월23일 열린 당 중앙위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김경희가 당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 자리에 올랐다는 주장도 있다. 고위급 탈북자 역시 “2012~2013년 당시 김경희 왼쪽에는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김경옥 제1부부장이 있었다. 장성택 처형의 중대 결단은 당시의 최고 권력자 김경희가 주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 있을 때는 장성택 전 행정부장의 권력 확대를 제어할 수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장성택 전 행정부장 쪽 세력이 통제받지 않은 상태로 무한정 확장되는 것을 김일성 일가로서는 방치할 수 없었을 터이다. 김경희 전 비서로서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고, 건강이 허락하는 시기 내에 장성택이라는 화근거리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김일성 일가의 최대 걱정은 ‘김정은의 건강’

ⓒ노동신문2013년 12월12일 포승줄에 묶인 채 특별군사재판정에 선 장성택 전 행정부장(가운데).

장성택 전 행정부장 처형 이후 김경희 전 비서는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 병 치료에 전념했다. 2014년 초 그가 원로들의 도움을 받아 권력 일선에 다시 복귀하려 시도했으나 무산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은 위원장이나 김설송 등 조카들이 김경희 전 비서를 무시하거나 심지어 살해를 도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김경희 전 비서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김정일 위원장의 유언에 따라 김일성 일가의 최고 어른으로서 가문을 돌보는 소임이 주어져 있다. 비자금 관리인으로서의 역할도 아직 남아 있다.

그렇다면 김경희 전 비서의 공식석상 등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난해부터 부쩍 북한에서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연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 회담 실패로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이 크게 손상됐다. 북·미 비핵화 회담에 제동을 거는 당과 군의 목소리도 커졌다. 급기야 주체파로 불리는 세력은 지난해 말 외무성의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무산시켰다. 그뿐 아니라 주체파는 당 전원회의에서 외무성 인사들의 물갈이까지 밀어붙이고 조건부 핵 보유론을 관철하기까지 했다. 한편 김경희 전 비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선군정치를 표방하던 시절 반제 반미 노선을 주장한 강경파로 분류된다. 미국은 결국 북한을 압살하려 할 것이므로 ‘미국과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그의 등장은 북한 권력 내부의 주체파를 안심시키는 측면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일성 일가의 어른을 앞세움으로써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차단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고위급 탈북 인사 중에는 김일성 가문이 현재 안고 있는 말 못할 고민과 김경희 전 비서의 재등장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하는 이도 있다. 김경희 전 비서는 수령의 유고 시 권력 승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금 김일성 일가의 최대 걱정거리는 바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상태이다. 몇 년 사이 몸집이 비정상적으로 불어나는 것을 보면 가족력인 심장병 증상이 의심된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을 둘러싸고 혹시라도 돌발적 상황이 일어날 경우 교통정리를 해줄 어른이 존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권력의 안정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김경희 전 비서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심상치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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