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나는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산재 신청을 대리하는 노무사로부터 그의 자살이 산재에 해당하는지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사건은 언론을 통해서 먼저 알았다.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 중 한 곳에서, 갓 입사한 스물다섯 살 간호사가 ‘태움’과 관련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였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생명과 관계된 일에 실수가 있으면 안 되기에 엄격한 교육훈련 과정에서 가르침과 괴롭힘이 함께 나타나게 된다. 자살은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선배 간호사들은 가해자일까

수백 쪽에 달하는 기록의 상당 부분은 고인이 지인과 나눈 메시지 내용이었다. 우리 과 전공의의 도움을 받고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을 받아 사망 전 수개월간 ‘불안성 디스트레스가 동반된 주요우울장애’라는 진단명에 부합하는 증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있었고, 이러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근무기록표와 메신저 대화 내용 등으로 확인한 초과근무시간은 점점 증가하다가 사망 전달에는 월 96시간에 달했다. 선배 간호사의 교육방식에 어려움을 자주 호소했고, 업무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어 걱정과 부담이 많았다고 한다. 교육기간이 끝나고 독립하여 혼자 업무를 맡게 되면서 업무 내용과 업무량의 변화가 생기며 부담은 가중되었다. 여기까지는 업무상 정신질환의 위험요인으로,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주요 언론에서는 ‘태움 알린 고 박선욱 간호사, 1년 만에 산재 인정’과 같은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물론 그의 노트북과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증거분석에서 확인된 검색 기록을 보면 ‘태움’이 의심된다. 하지만 병원의 사정을 좀 아는 사람들은 ‘태우는 자’로 지목된 선배 간호사들이 가해자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 선배들은 자신의 업무량도 감당이 안 되는데, 신규 간호사의 교육훈련을 맡아서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후배 간호사에게 자기 자신도 받아보지 못한 제대로 된 교육을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 원인은 병원의 구조적인 문제다. 제대로 수련받고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는 현실과 신규든 경력이든 간호사들이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병원의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나는 건강검진 업무를 하면서 여러 병원의 다양한 간호사들을 만난다. 신규 간호사들은 본격적으로 병동 야간근무에 배치되기 전에 면담을 한다. 공부하면서 일하느라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다니는 그들은 선배 간호사도 무섭지만 환자가 더 무섭다고 한다. 길어야 두세 달, 그보다 짧은 기간에 독립을 하기 때문에 업무에 자신이 없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오는 경력직 간호사들의 대부분은 몸과 마음의 피로를 심각하게 호소한다. 신규 간호사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해서 자신의 책임이 더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수간호사들은 보통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블과 DC코믹스에 나오는 영웅들보다 더 놀라운 괴력을 발휘하며 병동을 운영하고 있지만 태움을 예방하고 관리 감독할 여력은 없어 보인다. 태움을 당하는 이도, 태우는 자도, 태움을 감독하지 못하는 자도 모두 피해자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이렇게 모두가 과로에 시달리는 병원을 찾아와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병원 내 인력 부족은 장시간 노동과 노동강도의 증가를 낳고, 이는 질병·퇴사·사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발생한 인력 부족은 노동강도를 더 강화시킨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깰 수 있을까?

기자명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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