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3일 월요일 오전 8시. 〈680 뉴스〉를 들으려고 라디오를 켰다. 운전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듣는 뉴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캐나다에 침투한 지 열흘이 넘었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뜨거운 관심사이니 첫 번째 뉴스는 당연히 그것이겠거니 했다. 더구나 캐나다 연방정부가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보내 캐나다 국민 300명을 태워오겠다고 언급한 직후였다.

그런데 첫 번째 소식은 뜻밖에도 바로 전날 미국 슈퍼볼에 관한 것이었다. 그 소식은 5분 넘게 이어졌다. 스포츠 뉴스도 아니고 청취율이 가장 높은 평일 출근 시간 정규 뉴스인데도, 이웃 나라 슈퍼볼 이야기를 할 만큼 다 한 다음에야 중국에 전세기를 보낸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요즘 캐나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1월 말 중국의 구체적인 상황이 알려지고 토론토에 확진 환자가 있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만 해도 도시 전체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확진 환자가 치료받는 서니브룩 병원 주변은 물론 오타와에서도 마스크 구하기가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스크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도 시민들의 불안감은 그렇게 표출되었다.

옷 가게를 14년째 운영하고 있는 나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 사나흘 이어졌다. 가게 매출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식당이나 커피숍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었다. 중국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질 기미가 보이자 중국 커뮤니티 대표가 토론토 시장과 함께 나서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멈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처음 사나흘 동안은 이렇게 정신적 공황 상태가 이어졌다. 정보가 부족한 데서 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포감은 신기하게도 사나흘 만에 진정되었다. 연방정부와 온타리오 주정부, 토론토시 방역 당국이 신종코로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부터였다. 언론은 냉정하고 건조하게 사실만을 전달했다. 언론이 앞장서서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보도는 일절 하지 않았다. 지금 중국에서 사망자가 몇 명이고, 몇 명이 확진 환자인지 뉴스 첫머리에서 밝히고 캐나다 환자(2월5일 현재 4명. 그중 1명은 완치 후 귀가)와 방역에 관한 내용을 이어서 보도하는 식이었다. 토론토 보건 당국은 시내 공중화장실에 세균 확산을 막기 위한  ‘손 씻는 방법’ ‘기침하는 방법’ 등 포스터를 붙였다. 평소 이곳 사람들의 습관을 강조했을 뿐 특별히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AFP PHOTO1월26일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입국장으로 마스크를 쓴 여행객들이 들어오고 있다.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대처도 두드러지게 새로울 것은 없다. 온타리오 주정부 재무부에서 수석 홍보담당관으로 일하는 한인 2세 마이클 손 씨는 “보건부 동료에게 알아보니 평소 하던 대로 할 뿐 특별한 비상 상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해마다 겨울이면 독감이 유행해서 주정부는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말하자면 신종코로나가 생겨났다고 해서 특별한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평소 겨울철 독감처럼 대처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은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방역 대책을 매우 신뢰하는 편이다. 사스 파동 때도 그랬다. 정부 당국의 조처를 비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태가 진행 중일 때 정부는 시민들이 지겨워할 정도로 자세히 발표하고 언론은 그것을 받아 보도한다. 정치권이나 언론은 사태를 수습하는 데 힘을 모을 뿐,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공포 마케팅’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신종코로나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발표되고,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이어지며, 그런 과정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하고, 그것을 믿고 시민들이 안정을 찾아가는 프로세스. 이번에도 캐나다에서는 예의 그런 과정을 통해 신종코로나를 차분하게 진압해가고 있다.

유행병과 관련한 가짜 뉴스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바로 소멸된다. 1월 말 토론토 한인 사회에서는 어느 식품점에 확진 환자가 다녀갔다는 루머가 카카오톡을 타고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다음 날 그 내용을 보낸 사람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일부러 전해왔다. 가짜 뉴스로 확인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추후 책임 추궁이 두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가짜 뉴스 피해자가 소송을 걸 경우,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고 믿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도 확진 환자가 여럿 생겨났으나 한국 언론 매체가 보도하듯 “방역 참사”라느니 “무방비”라느니 “뚫렸다”느니 하는 자극적인 비난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평소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닌 매체라 해도, 이런 사태를 앞에 두고 방역 당국이 하는 일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신종코로나에 신경을 쓰기는 해도 모임이나 바깥출입을 꺼려하지는 않는다. 공포에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 정치권, 언론 모두 차분히 자기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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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토론토·성우제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sungwo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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