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해 8월17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국민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들에게 세상은 ‘1%(재벌 가족 및 서울 강남 부자) 대 99%’의 각축전이다. 그 밑의 ‘외부자’들이 보는 세상은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뉘어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연금은, 일단 가입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혜택을 보장받는 제도다. 그러나 능력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일정한 보험료를 상당 기간에 걸쳐 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자들의 눈에는 지금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 역시 가진 자들이 더 가지기 위한 잔치판에 불과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매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낸다. 은퇴 이후에는 가입 기간의 월평균 소득 중 40%(소득대체율)를 연금급여로 받는다. 이른바 ‘9%(보험료)-40%(소득대체율)’ 체제. 월 100만원을 버는 가입자라면 청장년기의 40년 동안 매월 9만원(9%)씩 모두 4320만원을 보험료로 낸다. 은퇴한 뒤 사망할 때까지의 20년 동안에는 매월 40만원씩 모두 9600만원을 연금급여로 받는다. ‘낸 돈’의 2배 이상을 돌려받는 금융상품이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가입자의 수익비(보험료에 대한 연금 급여의 비율)는 2배 정도다. 특히 직장 가입자는 4배다. 보험료 중 절반(4.5%)을 회사 측에서 내기 때문이다. 민간 보험사들이 운영하는 연금 상품의 경우 수익비가 1배 내외에 불과하다. 안전성(보험료를 냈는데도 연금을 받지 못할 위험성이 낮을수록 좋다)으로 따져도, 국민연금은 민간 보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 국가가 ‘연금 지급’이라는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는 문자 그대로 나라가 망할 때뿐이다. 그런 사태가 닥친다면, 연금을 받고 못 받고는 큰 문제가 아닐 터이다.

그러나 가입자에게 유리하다고 반드시 ‘좋은’ 국민연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재정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로 운영된다. 현재 한국에서 다른 세금이 국민연금에 투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입자들이 저금통에 돈을 넣고 빼는 과정을 상상해보면 된다. 보험료를 내는 사람들이 많고 그 액수가 크면(높은 보험료율), 저금통에 돈이 쌓인다(적립금 축적). 반대로 연금급여를 받는 사람들(은퇴자)이 늘어나고 그 액수가 많아지면(소득대체율 인상), 저금통의 돈이 줄어든다. 한국의 국민연금이라는 저금통(9%-40%)은 기본적으로 ‘넣는 돈’보다 ‘빼는 돈’이 2배 이상 많게 설계되어 있다. 더욱이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보험료 납부자는 줄어드는데 수령자는 증가할 전망이다. 저금통 안의 돈(적립금)은 어느 순간 줄어들다가 사라지게 될 운명이다. 적립금 고갈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민연금공단이 자금을 잘못 운영해서 벌어지는 사고도 아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입자에게 유리한 상품’인 국민연금의 장기적 운명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연금 적립금이 고갈되는 수십 년 뒤부터는, 해당 시기의 보험료 납부자들이 ‘저금통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소득에서 은퇴자들의 연금급여를 갹출해야 한다(부과 방식). 보험료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현 시대의 사람들은 미래의 납부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떻게? 일단 적립금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또한 고갈 다음 해부터 시행될 부과 방식에서 미래 납부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더 내고 더 받자’파 대 ‘재정안정’파

이런 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발전위)’다. 2003년부터 5년마다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왔다. 적립금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어떻게 변화될지 추정한다(장기재정추계). 이 추정에 기반해서 ‘적어도 70년 동안에는 적립금을 바닥내지 않을 방안(제도개선 방향)’을 찾는다. 70년 뒤 국민연금 재정까지 추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정 시점에 국민연금으로 갓 들어온 젊은 가입자에게 ‘당신이 국민연금을 40년 동안 착실하게 낸다면 나머지 30년 동안엔 반드시 연금을 받게 될 거야’라고 말해주기 위해서다. 20세에 가입한 젊은이가 보험료를 내고 은퇴하고 급여를 받다가 사망하는 전체 기간을 대충 70년으로 보기 때문이다.

발전위가 재정추계를 완료하고 개선 방안을 낼 때마다 어김없이 사회적 논란이 발생해왔다. 거의 어김없이 ‘더 내고(보험료율 인상) 덜 받자(소득대체율 인하)’고 하니 가입자들이 분노한 것이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1988년 출범 당시의 국민연금은 ‘3%(보험료율)-70%(소득대체율)’ 체제였다. 100만원 소득자가 매월 3만원씩 내면 은퇴 뒤에는 70만원씩 받는다는 것이니, 지금의 9%-40% 체제에 비교해보면 턱도 없을 정도로 후하다. 이후 정부들이 ‘더 내고 덜 받자’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다만 가입자들의 반발이 두려워서 크게 조정하진 못했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8년 발전위의 장기재정추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국민연금이 9%-40% 체제로 계속 갈 경우, 적립금이 2041년 1778조원으로 정점에 도달한 뒤 차츰 줄어들어 2057년에는 고갈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금(2020년)부터 37년 뒤다. 다음 해인 2058년부터 국민연금이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면, 그때 가입자들은 소득의 24~28%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지금(9%)의 3배다. 즉, 2058년부터 연금급여를 받는 지금 20대 중반 이하의 연령대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후세대)이 소득의 4분의 1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반면 현재 20대 중반 이상의 가입자들은 9%의 보험료로 비교적 후한 연금급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후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70년 동안(즉, 2088년까지) 적립금을 고갈시키지 않는 동시에 소득의 40%를 연금으로 받으려면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그 인상폭이 꽤 크다. 16.02%(2020년 시행하는 경우)로 지금(9%)보다 7.02%나 올려야 한다.

진퇴양난이다. 현세대가 웃으면 미래세대가 울고 미래세대가 웃으면 현세대가 운다. 발전위 위원들도 크게 두 파로 나눠 충돌했다. 하나는 ‘더 내고 더 받자’였다. 소득대체율을 45%로 높이자고 주장했다. 대신 보험료도 2019년에 2%포인트(보험료율 9%→11%), 2034년에 1.31%포인트(11%→12.31%) 높이는 방안이다. 언뜻 보기엔 납득할 수 없다. 40%의 소득대체율을 9%의 보험료율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소득대체율을 5%포인트나 높이면서 보험료율은 15년의 간극을 두고 각각 2%, 1.31%포인트밖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 방안으로 갈 때 적립금이 2088년까지 유지되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더 내고 더 받자’에는 나름의 철학이 깔려 있다. ‘70년에 걸친 예측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0년(한국전쟁 발발)의 한국인들이 ‘우리나라’가 장차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발전할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현재 가입자들에게 불리한 개혁으로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면 국민연금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차라리 일단 소득대체율을 높여 신뢰를 굳히면서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연금 가입자가 많아지고 소득 상승으로 보험료도 늘어나 적립금이 증가한다) 노력하는 쪽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내고 더 받자’파 중에서는 재정추계의 시한을 70년이 아니라 30년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온다. ‘30년 동안만 적립금을 고갈시키지 않으면 되’니, 어렵잖게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자고 주장할 수 있다. 2018년으로부터 30년 뒤인 2048년에는 적립금이 여전히 쌓여 있는 상태다.

다른 하나는 ‘재정안정’파다. ‘70년 동안 적립금 유지’ 원칙을 고수했다.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는 대신 보험료율을 10년간 4.5%포인트 더 올리자(9%→ 13.5%)고 주장했다. 연금 수령 개시 나이(1969년생은 65세)도 2033년부터 10년에 걸쳐 2세 더 올리면(67세), 보험료율을 간접적으로 3.7%포인트 인상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재정안정파에 따르면, ‘더 내고 더 받자’파는 장기재정추계를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현세대 가입자들이 갓 들어온 가입자와 미래세대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국민연금제도 자체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래의 출산율과 성장률은 개선될 수도 있지만 악화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연합뉴스장지연 전 경사노위 연금특위 위원장(아래)은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발전위는 2018년 10월 두 의견을 모두 정부(보건복지부)로 넘기게 된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재정추계를 토대로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연금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국회 논의를 거쳐 개혁안의 법제화가 완료된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12월 연금개혁안(‘제4차 국민연금종합개혁안’)을 발표했다. 모두 4개다. ‘현행 9%-40% 유지’ ‘현행 유지+기초연금 40만원(당시 20만원)’과 함께 소득대체율을 45%(보험료율 12%)나 50%(보험료율 13%)로 올리는 방안들.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으나 공통점은 하나다. 재정안정 문제를 비켜갔다. 현행 유지는 물론이고 보험료율 인상 방안들 역시 소득대체율을 45%나 50%로 올리기 위한 추가 비용을 산정했을 뿐이다. 적립금 고갈 시기를 크게 늦추거나 후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체로 발전위에서 ‘더 내고 더 받자’고 주장한 전문가들의 손을 들어줬다고 할 수 있다.

국회는 정부 개혁안을 논의하기가 매우 부담스러웠을 터이다. 어떤 정당이든 현재 가입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된다. 선거 시즌이 다가오고 있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합의안 도출을 맡았다. 경사노위란 정부, 기업, 노동자, 소상공인,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 등이 사회·경제 정책을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다.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정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기업, 한국노총 외에 소상공인연합회 등 지역 가입자 단체 대표자 4명, 청년위원 2명, 공익위원 3명 등으로 구성되었다. 연금특위에서 합의안이 나오면 그것을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연금특위는 지난해 4월 논의를 마쳤지만 합의안을 내지는 못했다. 이번엔 개혁안이 3개 나왔다. 기업 측인 경총과 대한상의는 현행 유지를 선택했다. 노동자와 시민운동의 대표자들(특위 위원 중 가장 다수)은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는 대신 보험료율을 12%로 인상하는 ‘더 내고 더 받자’를 선택했다. 소상공인연합회 대표는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되 보험료율을 1%포인트 인상(10%)하는 안을 제시했다. 연금특위에서 유일한 ‘연금재정 안정화’ 쪽의 의견이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정말 진보적인가?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언제부터 연금개혁을 본격적으로 논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복잡한 정치적 세력 관계 속에서 국회의 개혁안 역시 ‘더 내고 더 받자’, 즉 ‘소득대체율 인상’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국민연금이 출범한 이후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높은 소득대체율’을 진보적 방향이라고 인식해왔다. 그동안 소득대체율 인상 운동을 주도해온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물론이고 참여연대 등 상당수의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들을 포괄한 연대 조직이다.

그런데 소득대체율 인상은 정말 진보적인가? 한국 사회를 더욱 ‘평등’한 쪽으로 개선할 수 있는가? 우선 국민연금이 사회보험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일정 소득 이하의 모든 노인에게 거의 균등한 액수를 지급하는 ‘기초연금(2020년 1월 현재 25만~30만원으로 65세 이상 70%에게 지급)’과 다르다. 기초연금의 재원은 세금이며, 수령자들이 보험료를 낼 필요가 없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운영된다. 일정한 보험료를 상당 기간 정기적으로 납부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현재 18~59세 인구 3263만명 가운데 공적연금에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이 1442만명으로 44.2%에 달한다. 그만큼 국민연금으로 노후 보장을 받을 수 없는 인구가 광범위하다. 2018년 현재 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93.7%이지만 비정규직은 63.1%에 그친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시간제 노동자와 일일 노동자는 절반 이상이 미가입자다.

택배 배달원 등 특수고용 노동자(사용자에 종속되면서도 비교적 자율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성격이 섞여 있는)는 국민연금제도에서는 자영업자로 간주된다. 국민연금에 가입하려면 직장 가입자(보험료의 50% 납부)와 달리 보험료 전액을 내야 한다. 대다수가 저소득자인 특수고용 노동자들로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영세 자영업자도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9년 말 현재 도시 지역 가입자 725만여 명 중 330만여 명(47%)이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보험료를 내고 있는 가입자 중에서도 불안한 계층이 많다. 저소득 계층은 보험료를 조금 내기 때문에 연급급여가 터무니없이 적을 수 있다. 고용 상태가 불안하거나 정부 지원 덕분에 가까스로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들은 언제든 미가입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당초부터 ‘모든 이’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는 아니다.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제도적 시도(저소득층이나 불안정 노동자, 출산이나 병역 때문에 일시적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사람 등에게 보험료 일부를 세금으로 대납)가 이뤄지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장지연 전 경사노위 산하 연금특위 위원장은 〈시사IN〉과 인터뷰에서 이런 점을 지적한다. “소득이 아주 낮거나 서른 전에 안정적 일자리를 갖지 못한 젊은이 중에는 국민연금에 가입조차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출산이나 병역 때문에 일시적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기존 가입자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예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신경을 너무 안 쓰는 것 같다.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한다면) 미가입자들을 가입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

장지연 전 위원장은 보험료율을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에 못 들어간 사람들에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라고 단언한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내는 돈의 4배 이상을 받아갈 수 있는 이 제도에 가난한 사람들은 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

ⓒ시사IN 조남진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저소득층의 노후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소득대체율 인상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이 2018년 말 국민연금공단의 자료를 받아 다시 계산한 국민연금 수익비는 무려 2.6배에 이른다. 앞으로 한국인들의 수명이 더 길어질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연금급여 역시 더 오래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사람들은 안정적 일자리에서 오랫동안 근무 가능한 고소득자다.

‘소득대체율 40%, 가입 기간 40년’인 온전한 조건에서 저소득층인 월 100만원 소득자는 매월 65만원, 최고 소득층인 월 468만원 소득자는 139만원을 연금급여로 받게 된다. 그러나 월 100만원 소득자 중 상당수는 불안정 노동자로 가입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월 100만원 소득자는 15년, 300만원 소득자 30년, 468만원 소득자 40년으로 추정해봤더니, 계층별로 월 연금급여가 25만원, 79만원, 139만원으로 나왔다.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면 어떻게 될까? 15년 가입한 100만원 소득자는 40% 때보다 3만원 늘어난 월 28만원을 받는다. 30년 가입한 300만원 소득자는 10만원 증가한 월 89만원, 40년 가입한 최고 소득자는 17만원 늘어난 월 156만원을 받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소득대체율을 인상했을 때 고소득자의 급여가 크게 오르고 저소득자의 인상분이 적다면, 국민연금의 소득분배 기능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소득대체율 인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높은 소득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등 고소득 계층인 것이다.

지금의 개혁 기조라면 2058년부터 소득의 4분의 1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 할 미래세대도 피해자로 전락한다. 20대 중반 이하부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그 짐을 짊어지게 된다. 그 이후 세대는 국민연금에 가입하기만 하면, 소득과 상관없이, 내는 돈보다는 많이 받는다. 그래서 장지연 전 특위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재분배 기능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세대 내’가 아니라 ‘세대 간’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재분배라는 것은 어떤 집단의 이익을 다른 집단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세대 중에서는 누구도 보험료로 낸 것보다 적게 받아가는 사람이 없다. 이게 어떻게 ‘세대 내 재분배’일 수 있는가.”

더욱이 미래세대는 연금개혁을 논의하는 테이블에 나와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지도 못한다. 아직 어리거나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미래세대’ ‘국민연금 미가입자’ ‘가입자 중 저소득자’ 등이 연금개혁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사노위 산하 연금특위의 구성만 봐도 그렇다. “(연금특위 위원에서 위원장과 정부위원을 제외하면) 사회적 대표성을 지닌 위원이 13명인데, 이 중 8명이 연금개혁 논의에서 ‘소득대체율 인상’ 운동을 벌이는 특정 연대 기구(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에 속한 단체의 대표자 혹은 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다.”

국민연금이라는 저금통은 돈을 넣어놓기만 하면 그 액수가 무한정 불어나는 요술 모자가 아니다. 보험료율을 유지하거나 조금만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은 높이고, 후세대의 부담까지 최소화할 수 있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방안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세대의 가입자들은 좀처럼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유사시엔 국가재정을 투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까지 존재한다. 설사 세금을 투입할 필요가 있더라도, 그 대상이 ‘소득이 높고 오래 일할수록 많이 받는 국민연금’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스러운데도 말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개혁을 논의하는 테이블에 외부자들을 앉혀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이종태·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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