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제공2018년 11월 전국 공공실버주택 1호인 성남 위례실버주택 입주민들이 텃밭을 가꾸고 있다.

혼자 살면 둘이서 살 때보다 주거비, 식료품비, 냉난방비, 전기 및 인터넷 비용 등 돈이 훨씬 많이 든다. 게다가 돈을 많이 들여도 별로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 단칸방에서 ‘다이소’ 물건만 사는데 왜 그렇게 돈 쓸 일이 많은지.

혼자 사나 둘이 사나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 시설은 갖춰야 한다. 화장실, 부엌, 현관은 있어야 하고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도 필요하다.

사회 초년생 시절, SH공사가 1인 가구를 위해 만든 원룸형 임대주택에 거주한 적이 있다. 반지하 원룸에서 수해도 입고 구옥에서 곰팡이와 씨름도 했던 나로서는 새 원룸에 들어가게 되어 무척 기뻤다. SH가 지은 첫 원룸이었는데, 테라스·세탁실·화장실이 따로 있고 싱크대와 신발장도 큼지막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문제는 정작 시설을 잔뜩 설치하니 내가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딱 더블침대 사이즈만큼 남았다는 것이다. 자려고 이불을 깔면 과장 없이 공간이 한 뼘쯤 남았다. 이불을 개지 않고 밥을 차려먹는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잠을 자든 밥을 먹든 공부를 하든 엉덩이는 항상 같은 위치에 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기존 다인 가구 임대주택의 관례에 따라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기본적인 옵션이 없었다. 80여 세대 원룸 건물에 2교대 경비원을 배치한 결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관리비가 부과되었다. 그 결과 아주 어렵게 당첨되고도 거주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점차 개선해 나가기는 했지만, SH 첫 원룸 주택은 한정된 예산, 인간다운 주거조건을 제공해야 할 의무, 1인 가구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충돌해 만들어낸 블랙코미디 같은 집이었다.

현금 지원으로 메울 수 없는 ‘돌봄 공백’

공공이 제공하는 주거복지는 어느 정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고 1인 가구라도 갖출 건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는 2016년부터 저소득 노인 1인 가구를 위한 임대주택 ‘공공실버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23㎡(7평) 원룸이라 ‘방’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많이 답답해하는데도 이마저도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개별 1인 가구에게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인간다운 주택을 공급하는 일은 정부와 지자체로서도 힘에 부친다.

주거복지만이 아니다. 1인 가구에게는 통상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기초생활보장, 기초연금 등에 드는 비용을 따져볼 때 1인 가구의 폭증은 정부의 사회복지 재정에 위협적이다. 연령이 높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1인 가구 비율이 높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들에 대한 현금 지원이 늘어난다고 빈부 격차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제조업 위기, 자영업 재편,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데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필요한 돌봄을 어떤 방식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지가 우리 사회에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직접 현금을 지급하고 예산을 들여 1인 가구에게 임대주택을 주어도 ‘돌봄 공백’을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 1인 가구는 고독사를 비롯한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만큼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부분은 인건비다. 사회복지 현장 노동자는 한정된 인력으로 늘어나는 독거 가구에 대응하고자 진땀을 뺀다. 지자체는 독거노인 가구의 고독사를 예방하고, 하다못해 돌아가셨을 때 한시라도 빨리 발견하려고 한다.

공무원, 통반장, 노인케어센터 종사자가 자주 방문하는 건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최근에는 독거노인 가정에 IoT 센서를 부착해 일정 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119와 주민센터에 바로 신호가 가도록 조치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급성질환, 자살 시도 등을 제때 발견하지 못하는 사례는 여전히 너무 많다. 고독사에 이르지 않더라도 몸과 마음이 아파지고,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는 현실을 모두 막을 수 없다.

이에 따라 ‘함께 사는’ 수준의 돌봄 관계를 복원해보려는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경북 영주시는 2014년부터 시장 역점사업으로 ‘노인 공동거주의 집’을 운영한다. 2019년 8월 현재 한 채당 5명 내외가 함께 사는 집 10개소가 있다. 이러한 공동주거 형식의 임대주택은 경남 남해군, 충북 음성군, 경북 상주시, 경남 의령군 등 농어촌 중심에서 수도권 도시로 확산 중이다. 부산광역시, 경상북도 등 광역 지자체에서도 움직임을 보인다. 노인 1인 가구뿐 아니라 청년 1인 가구의 문제도 심각한 서울시는 2016년 노인 가구가 남는 방을 저소득 대학생에게 임대하면 지원금을 주는 ‘홈셰어링’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민관 협력형 셰어하우스 청년 임대주택을 내놓기도 했다.

지자체의 공동주거 실험이 지닌 함정

그러나 이런 지자체들의 노력은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자체가 정해준 사람과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불편해서다. 누구든 집에서는 샤워 후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고 싶다. 현재 공동주거 임대주택 실험은 사생활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지자체 처지에서는 사회복지 대상이 모여 살면 덜 찾아가고 관리하기도 쉬우니 편할 것이다. 거주자 처지에서는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낯선 사람이 남긴 화장실의 대변 냄새, 수챗구멍에 낀 머리카락, 설거지 안 된 그릇을 일상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지금의 공동주거 실험은 대체로 행정적 편의를 위할 뿐이다.

양질의 돌봄, 즉 자발적이고 상시적인 돌봄은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이들 사이에서 나온다. 사람을 무작정 모아둘 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림을 합치도록 장려해야 한다. 서로를 돌보겠다는 자발적인 마음을 조직화하고, 그런 마음을 키워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이를 위한 하나의 큰 디딤돌이다.

생활동반자법을 기반으로 함께 사는 가구가 늘어나면 일단 정부는 돈을 아낄 수 있다. 가령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상 2019년 최저 생계비용의 기준을 1인 가구 51만2102원, 2인 가구 87만1958원으로 잡고 있다. 단순 계산해 수입이 전혀 없는 두 명에게 생계급여를 지급할 때, 혼자 사는 두 명에게는 102만4204원을, 둘이 같이 살면 87만1958원을 지원해야 하므로 재정을 약 17%가량 절약할 수 있다. 게다가 둘이 같이 살면 최저 생계비용 이상의 소득을 가질 가능성이 커지므로 실제로 더 많은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충분한 돌봄은 노동자가 다시 일터에 나와 일할 수 있게 한다. 고독을 방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늘어난다. 기초생활보장 등 공적 지원과 건강보험의 부담도 커진다. 살아가는 재미를 잃으면 새로 태어나는 아기도 줄어든다. 저출산을 경제 논리로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저출산이 국가경제에 위협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모두가 안개 낀 마음으로 살아가면 사회의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고독은 그저 개개인이 소주 한잔 털어먹고 잊으면 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외롭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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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을 권리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시사IN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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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두영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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