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다
  • 김영화 기자
  • 호수 648
  • 승인 2020.02.1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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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페이스북이 띄운 ‘1년 전 오늘’ 덕분에 잊고 지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2019년 2월4일, 양지혜씨(23)는 스위스 제네바로 향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한국의 ‘스쿨미투’ 상황에 대해 직접 증언을 해달라며 그를 초청했다. 스쿨미투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자극적인 피해 사실이 부각되면서 고발자들은 지쳐갔다. “스쿨미투가 변화를 원하는 여성 청소년들의 정치적 운동이라는 점을 알려야 했어요.” 비행기에 오르던 무거운 발걸음이 양씨에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양지혜씨는 2018년부터 전국 학교의 고발자들을 연결해 대규모 스쿨미투 집회를 조직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인 주인공이다. 당시 유엔의 아동 인권 전문가들은 ‘어떻게 이런 운동이 지속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아동 청소년에 관한 성폭력은 전 세계에 만연한 문제지만, 당사자들이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로 남지 않았다는 것에 큰 힘을 얻었어요. 승리의 경험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마침내 2019년 10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스쿨미투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양씨는 ‘가만히 있으라’는 팻말을 들고 침묵 행진에 나섰다. 하지만 거리에서 그는 동료 시민이기보다 ‘기특한 학생’ ‘지켜야 할 청소년’으로 불렸다. “사회가 청소년을 꼭 꽃다발처럼 쓰고 있는 것 같았어요. 집회, 토론회 어딜 가든 청소년을 꼭 섭외하지만 마이크가 주어지는 상황은 피해 경험을 증언하는 데 그치거든요.” 대안을 말하는 자리는 늘 교수나 공무원에게 돌아갔다. 청소년의 참여를 달가워하지만 막상 변화를 만들겠다고 하면 ‘아직 어리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청소년 인권 운동에 관심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지난해 12월 CNN에서는 양씨를 ‘올해 아시아를 변화시킨 청년 운동가 5명’에 선정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페미니즘 운동가’가 그를 설명한 수식어였다.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청소년 위치를 벗어났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 청소년들이 정치적 권리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양씨는 2019년 6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를 조직했다. 스쿨미투 운동 이외에도 생리대 보편 지급을 위해 조례 개정 운동을 이어가거나, ‘콘돔 OR 반창고 물물교환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도 콘돔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순결한’ 혹은 ‘발랑 까진’으로만 통용되는 청소년 성 담론에서는 폭력을 막을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니까요.” 현재 전국 각지에 위티 회원 340여 명이 있다. 피해자로도, 미숙한 청소년으로도 남기를 거부한, 또 다른 양지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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